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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환 Apr 03. 2022

[이방인] 16. 편견에 갇힌 시선들

<겟 아웃> - 조던 필 영화



감독 | 조던 필

출연 | 다니엘 칼루야, 앨리슨 윌리엄스

제작 연도 | 2017 년


우리는 얼마나 큰 프레임에 갇혀 살까요.

내 본연의 생각이 아닌 사회가 씌워 놓은 색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가 많다는 걸 우리는 스스로 잘 알고 있을까요. 세상이 만든 구조로부터 얼마나 자신을 엄격하게 분리해낼 수 있을까요. 프레임, 색안경, 구조. 이 모든 사회적 바탕은 우리가 ‘편견’이라는 굴레에 빠지도록 쉽게 종용하기도 합니다. 교육이라는 매체가 대표적인 수단이 되지요. 비단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뿐만에게는 아닙니다. 1947년, 케네스 클라크라는 미국의 한 심리학자가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가지 실험을 합니다. 흰 피부를 가진 인형과 검정 피부의 인형을 가져다 놓고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아이들에게 묻습니다.


"두 인형 중에 어느 인형을 갖고 놀고 싶니?"

"어떤 인형이 더 착해 보이니?"

"자신과 닮은 인형은 무엇이니?"


놀랍게도 흑인 아동들 대부분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 흰 피부의 인형을 고릅니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을 받고서는 흰 피부 인형을 고르거나, 갑자기 울어버리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클라크 인형 실험’이라는 이 유명한 연구는 당시 미국 사회에 만연하던 백인-유색 인종 간의 분리 교육에 따른 사상적 실태를 드러내어 사회문화적으로 의미 깊은 자료가 되었습니다. 위에서 말한 프레임, 색안경, 구조, 즉 외부 사회의 시스템이 어린아이들의 생각까지 길들여 버린 그 실태를 밝혀낸 것이지요.


<겟 아웃>은 조소와 풍자로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채워가는 명석한 감독, 조던 필이 처음으로 메가폰을 잡은 영화입니다. 주인공인 흑인 크리스가 백인 여자친구인 로즈네 집에 초대를 받고, 그곳에 찾아오는 백색 피부의 군중에게 곧 둘러싸이게 됩니다. 자신과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로만 채워진 공간 속의 크리스는 오묘한 긴장감을 표현하며 숨죽여오는 상황을 헤쳐나갑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인종 간 갈등을 불러일으키고자 하거나 인종차별주의 자체를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 아닙니다. 영화를 인종 간 대립이라는 구도로만 정의 짓고 판단하는 우리 관객들의 생각을 꼬집고 풍자하기 위함이지요. 클라크 인형 실험에서의 흑인 아이들처럼 어딘가에 길들여진 그 편견 속의 우리들 자신이, 영화의 큰 동인이 되는 것입니다. 영화는 관객들을 어떻게 꼬집어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요.




영화는 어느 정도 흑인이 백인 사회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전면에 드러내 보입니다.

여자친구의 부모님께서 흑인인 자신을 좋아할지 걱정이 되면서 가벼운 푸념이 초반부에서부터 등장합니다. 여자친구 집에 도착해서는 말할 것도 없지요. 수많은 백인 사람들이 여자친구네 집에 초대되어 등장하는데, 그 중심에서 비껴 나가려고만 하는 주인공 크리스의 멋쩍은 눈치가 카메라에 너무나도 뚜렷이 잡힙니다. 그런 크리스의 모습과 불안감은 보는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이됩니다. 나만 동떨어진 그 느낌, 나에게 관대한 척 시선을 던져두는 사람들 속내에 대한 두려운 호기심, 인종적인 다름에 대한 무질서한 질문들.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요소들이 마구 등장하면서 주인공의 심리를 쉽게 꿰뚫어 볼 수 있게 됩니다.


크리스를 불안하게 하는 장치들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여자친구 로즈네 집에서 직접 고용한 가정부, 그리고 정원사도 있습니다. 모두 흑인입니다. 가정부 조지나는 시종일관 소름 끼치는 미소만 짓고 있으며, 목수 일을 곁드는 정원사 월터는 한밤중 크리스에게 냅다 위협적으로 달려오기도 합니다. 이들은 계속해서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들과 말주변을 드러냅니다. 이상한 낌새를 챈 크리스는 점점 이 미지의 세계에 거부감을 강하게 느끼게 되며 영화의 서스펜스 구도가 확연히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이 불안감을 가장 극대화시키는 장면은 영화 제목이기도 한 ‘겟 아웃’을 외치는 어느 흑인 남자를 둘러싼 상황일 텝니다. 백인 손님들이 모이는 곳에 크리스는 자신과 같은 인종의 한 남자, 로건을 만나게 됩니다. 많은 손님들 중 같은 처지의 사람을 만나게 된 것 같아 잠시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 찰나, 이 흑인조차도 범상치 않은 말투와 행동을 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보통 흑인 문화권에서 통할 법한 주먹 인사를 받아주지 못한다거나, 크리스와 달리 백인이 모여든 공간에 전혀 동요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요. 사람들과 어울려 보고 싶은 크리스는 로건의 모습을 핸드폰 카메라에 담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핸드폰에서 플래시가 터질 때, 로건의 코에서 갑자기 피가 흘러내립니다. 온화하던 로건의 표정은 급작스럽게 험궂게 변하더니 크리스의 두 어깨를 강하게 밀어붙이며 ‘GET OUT’을 외칩니다.

‘여기서 얼른 나가!’


크리스가 터뜨린 플래시를 맞고 코피를 흘리면서 정색하는 로건.


이상한 사건들은 각기 상황에서 만들어진 변명들로 모두 일단락이 됩니다. 그러나, 자기가 속하면   곳에 와버렸다는 생각이 점점 크리스를 조여옵니다. 조던  감독은 크리스에게 자꾸만 불안한 감정을 포함해 속박하는 무언가들을 들이밀어버립니다. 여자친구 어머니인 미시가 시도하는 최면술, 여자친구의 사나운 남동생 제레미, 박제된 거대한 사슴 대가리. 하나하나 비상식적인 개체물들로써 크리스를 옥죄어 오다가 서로가 서로를 죽이려 하는 클라이맥스로까지 이어집니다.




크리스의 착잡한 고립기는 우리 곁의 실제 누군가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현실성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질적인 피부색, 성격, 성별뿐만 아니라 거대한 사회문화적 차이, 시스템 처리방식, 규제 환경과 교육 조건 등 수많은 사회적 특성들은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곤 합니다. 영화 <겟 아웃>은 사람을 구분 지을 수 있는 특성 중 하나인 인종을 가져왔을 뿐입니다. 그리고 인종주의의 문제점 자체만을 파고들기보다는 다양한 속성들을 잣대로 서로를 갈라놓는 편견의 무게를 내려놓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본토에 오래 살아가고 있는 외국인들, 이성애자들 속에 섞인 성소수자들, 복잡한 문명의 이기에 쉽게 접하지 못하는 세대층 등의 사람들은 절대다수의 힘과 숫자에 굴복하여, 다름이 아닌 틀림의 진단을 받고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영화 내 이들 소수자들과 그들에게 향한 편견이란 현실성을 은유하는 데엔 ‘TV’라는 소재가 큰 몫을 하고 있습니다.


영화 후반부 클라이맥스 신이 한창 진행되는 가운데, 크리스는 TV 앞에 앉혀진 채로 손발이 묶이게 됩니다. TV 속에는 ‘딘 아미티지’라는 죽어가는 노인 한 명이 등장합니다. 크리스가 갇힌 이 백인 혈통 집안의 가장이자, 여자친구 로즈의 할아버지입니다. TV 속에서 그가 하는 말을 들어 보니, 자신의 의식을 크리스 몸속에 저장해 두겠다는 내용입니다. 좀 전에 이상한 언행을 보인다고 했던 가정부 조지나와 정원사 월터도, 그리고 겟 아웃을 외쳤던 로건도 모두 육체가 소멸한 어느 백인들의 의식을 숨겨놓은 매개체로 작용했던 것입니다. 이 집안사람들은 크리스에게도 죽어가는 백인 노인의 의식을 담그려고 합니다.


크리스가 의자에 결박되어 ‘딘 아미티지’ 소개 TV 영상을 보고 있다.


조던 필 감독은 아무런 이유 없이 TV라는 소재를 크리스 앞에 가져다 놓진 않았을 텝니다. TV 화면을 카메라 프레임 정중앙에 위치시켜놓고 관객들은 크리스의 시선을 그대로 빌려 TV를 바라보게 됩니다. 크리스의 현재 상황과 관객의 자리를 그대로 일치시키려는 감독의 술수입니다. TV와 이를 보는 크리스의 역할은 분명히 드러납니다. 미디어 환경에 그대로 노출되어 정보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대중들의 모습을 비유해 내는 것이죠. 의식을 넘겨받은 흑인들은 미디어에서 흘러내린 정보를 수동적으로 전달받는 우리 스스로를 가리킵니다.


TV를 둘러싼 현세대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이자, 다소 우려되는 문제점은 ‘정보의 비대칭성’입니다. TV를 보는 시청자들은 미디어 창작자가 편집하고 정해진 틀에 끼워낸 정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창작자들은 정보 그대로를 전달하는 것이 아닌, 시청자들이 좀 더 쉽게 이해하고 설득될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만을, 효율적인 방식으로 전달하려고 합니다. 시청자들은 가공되고 걸러진 미디어 정보를 수집하게 됩니다. 자기네들 스스로를 우월한 인자로 생각하는 아미타지 집안의 백인들은 이러한 정보 비대칭성의 우위에 놓인 미디어 창작자들을 가리킵니다. 반면 결박되고 희생당한 영화 속 흑인들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과, 미디어를 체험하는 시청자들과, 더 나아가 사회의 테두리에 갇힌 대중들을 재현해 낸 것이죠. (영화 속 미시 아미티지에게 최면에 걸려 의식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침잠의 방에 빠질 때도, 통과하는 문은 TV 스크린 모양새를 닮아 있습니다.)


Now you’re in the sunken place.
크리스 당신은 이제 침장의 방 속으로 들어갑니다.





주인공 크리스는 가까스로 이 기괴하고 잔인한 상황으로부터 탈출하는 데 성공합니다.

말 그대로 ‘겟 아웃’을 실천하면서 말이죠. 앞서 말했듯이, 이러한 상황은 그대로 우리 현실에 접목이 되면서 ‘겟 아웃’이라는 그 외침도 결국 관객을 향해 던져진 것과 다름없습니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너희들이 갇혀있는 그곳, 프레임, 색안경, 구조, 시스템, 그리고 편견에서 벗어나라’고 소리친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고 사고하는 방식은 큰 단위에서 누군가가 만들어 낸 결과물일 수밖에 없습니다. TV로 대표되는 미디어 환경과 틀에서 우린 매일같이 길들여집니다. 조던 필 감독은 이 점을 겸허히 이해하고 우리 스스로가 직접 생각의 틀을 바꾸고 받아들인 정보를 비판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아미타지 집안을 탈출한 크리스처럼 관객들에게도 겟 아웃을 성공하기를 기대해 보는 것이죠.


그리고 비단 인종주의적 문제만이 아닌 그 모든 편견과 차별주의에 대해서 소리칩니다. 조던 필 감독의 차기작인 <어스 US>와 관련된 일화 또한 이러한 점을 꼬집어 냅니다. 이 <어스>라는 영화에서도 주인공들은 모두 흑인이지만, 그 어디에서도 인종을 두고 얘기하는 부분은 영화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일부 영화계 관계자들은 <어스>를 두고 인종 갈등 문제를 표현한 멋진 작품이라고 평했다가, ‘흑인이 나오는 영화는 인종 문제와 관련된다’는 식의 프레임에 갇혔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조던 필은 사회적 문제를 보다 큰 틀과 다양한 이슈들과 결합하여 표현해 내려고 하며, 관객의 시선이 한 군데에만 머물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본인이 만든 영화가 흑백 논리, 인종차별주의를 소재로 가져다 썼다고 해도, 이를 뛰어넘는 비판적 시선을 가지라는 메시지를 담아냅니다.


감독의 의도처럼 시선을 넓혀야 보이는 것들이 있을 겁니다. 흑인 사회에서 핍박받는 백인들도 그 사회에서는 소수자입니다. 백인하면 떠오르는 편견에 지쳐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모두가 한국어를 쓰고 교회, 성당, 그리고 절을 다닐 때 어눌한 한국어 말씨로 간이 이슬람 사원에 예배 기도를 드리러 가는 사람들이 주변에 살아갑니다. 혼자서 몸을 이끌어가기 불편한 사람들에게는 보행자 신호가 켜지고 있는 그 시간이 횡단보도를 건너기에 충분하지 않지만 열심히 팔과 다리를 움직입니다. 정상적이라고 생각했던 범주에 익숙해진 나머지 우리는 그 이외의 것들에 대해 올바르지 못하다는 편견, 그것들은 틀렸다는 편견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 <겟 아웃>은 곱씹어볼수록 개구리를 우물 밖으로 꺼내 주려는 작품처럼 다가옵니다. 단순히 표면적으로 드러난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아닌, 현실을 살아가는 익숙함과 그로 인한 편견에 대해 진지하고 독특한 고찰을 펴내려는 의도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여생을 다 살아도 전부를 경험할 수 없는 세상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도록 이야기꾼 조던 필 감독은 지금도 계속 고민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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