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트하우스> - 로버트 에거스 영화
수평선 너머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때마다 거대한 몸집 앞에 선 미물처럼 겸허해지는 순간이 오곤 합니다. 단념해야 할 것과 스스로 북돋워 줄 필요가 있는 것들을 얌전히 정리하기도, 어느 때는 수평선을 훑는 눈동자의 미세한 움직임만 허용한 채 생각과 의식을 잠시 가로막기도 합니다. 고요한 철학을 들려주는 듯한 바다는 한없이 포용적이지만 폭풍전야의 기다림 속엔 고성을 한가득 머금고 있어 보입니다. 언제라도 나를 매질할 수 있는 존경스러운 스승님 앞에 선 친밀함과 같기도 합니다.
거대한 바다 앞에 선 미물로서의 인간상을 다룬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브런치 피드를 처음 구성할 때 이미 ‘바다’라는 키워드를 다룬 바가 있습니다. 많은 작품에서 바다의 소재가 드넓게 사용되는 만큼 또다시 거룩한 이야기를 모을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더랍니다. 인물들에겐 항상 미지의 존재를 탐험할 욕구들이 쌓여있거니와 두려움을 아직 모르는 오만함이 동시에 배어 있기도 합니다. 고집스러운 인간에게 바다가 끊임없이 고함과 경계심을 드러내 보이는 것도 이 작은 오만함에서 비롯될 때가 많습니다. 소심한 제 자신을 대신해 바다 한가운데를 유영할 것을 선택하는 인물의 이야기를 접하고, 그들이 세워놓은 자만심 속에서 쓰러질 때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순간 바다가 주는 위대한 교훈적 자산들의 가치가 한껏 풍요로워집니다. 바다에 대한 작품을 읽고 기록하고 싶은 이유는 그렇게 성찰의 기회를 얻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전 피드에서 다룬 글보다 조금 더 무거운 플롯을 지닌 작품들을 기록하고자 합니다.
[바다] 감상문 리스트
# <라이트하우스> - 로버트 에거스 영화
# <모비딕> - 허먼 멜빌 소설
# <노인과 바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소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마태복음 18장 18절)
Should pale death with treble dread make the ocean caves our bed,
God who hear’st the surges roll, deign to save the suppliant soul.
죽음의 두려움이 우리를 해저에 묻으려 한다면
하나님이 해일을 들으시고 간절한 우리의 영혼을 구해주시길.
에프라임 윈슬로우는 빛의 구원이 있을 등대의 탑에 올라서고 싶어한다.
Why’d yer last keeper leave?
이전 등대지기는 왜 떠났나요?
Him? My second? Died.
Aye, went mad, he did. First a strangeness. A quietude.
Then wild fancies struck him. Ravin’ ‘bout sirens, merrolk, bad omens and the like.
In the end, no more sense left in him than a hen’s tooth.
He believed there were some enchantment in the light.
He notioned St. Elmo did cast his very fire into it. Salvation, said he.
두 번째 녀석 말이야? 죽었어.
미쳐버렸지.
사이렌이나 인어 불길한 징조 따위를 말했지.
결국에는, 완전히 머리가 돌아버렸어.
빛 속에 어떤 마법이 있다고 믿었지.
성 엘모가 직접 불을 붙였다고 생각했지. 구원이라고.
Tom, don’t be working to twist words out of my head.
토머스, 내 머릿속에서 얘기 좀 끄집어내지 마요.
영화 속 바다갈매기엔 죽은 자의 영혼이 깃들고 있다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