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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니 Jun 22. 2023

나는 가성비 충입니다

나는 가성비 충입니다.



가성비라는 가치관이

항상 내 삶에 중심을 잡고 있죠.



나는 가성비 쾌감 중독자였어요.



가성비라는 것은

다소 적은 돈, 시간과 노력으로

최대한 이익과 효율을 가져오는 것이니

아주 좋다고 생각했죠.



그 잣대를 남편에게도...





결혼하기 전 남편은

치킨가게 사장을

1년 좀 넘게 했었어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16 시간을 주방에서 홀에서

치킨을 준비하고 튀기고

서빙하고 배달하고

 손님을 기다리고 청소하면서

가게를 꾸려나갔죠.



그런데 수입이 별로 없었어요.



이전에 다닌 회사 월급과

비슷하다고 했어요.



같은 돈을 버는데

시간은 더 들어가고

가게를 차리기 위해서

인테리어도 하고

보증금과 월세도 내고

기타 유지 비용도 들어갔죠.



그리고 남편 노동력을

시급으로 계산해도

이건 너무 가성비가 떨어지는 겁니다. 



연애할 때 남편에게

조목조목 설명을 해줬죠.



"자기는 잘못된 선택을 한 거야.

왜냐하면 치킨집에서 일하는 시간

절반만 투자해서 회사를 다니면

똑같은 돈을 버는데

왜 그 고생을 하지?

게다가 가게에 들어간 투자비용도

다른 곳에 투자하면

더 수익이 날 텐데.

결과적으로 실패한 치킨집인 거지."



남편도 반론을 했죠.



"아니야,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그때 내가 일하면서 좋은 경험을 했고

돈도 생활비 나올 정도는 벌었고

직장 다니면서 받았던

스트레스가 없어서 좋았어.

난 실패한 치킨집이라고 생각 안 해.

그때 나는 만족했어.

오히려 그리운 게 더 많아."



하지만 실패한 장사를

합리화하는 것으로 치부해버렸어요.



결국 돈을 투자한 만큼 시간을 내서

노력한 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았으니

그것은 가성비에 위배되니

실패!

땅. 땅. 땅.

결론을 내렸죠.






그런데

어제 불현듯 그 생각이

너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내가 살아온 흔적을 돌이켜보니

가성비 때문에

너무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았던 거예요.



물건을 살 때도

내가 지불하는 가격보다는

품질이 더 좋은 것을

선택하려고 했죠.



만 원짜리 물건인데

마치 만 삼천 원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을 골랐어요.



우연히 맘에 드는 물건을 발견해도

그것이 오만 원짜리가 다른 곳에 가면

삼만 원으로 살수 있는 제품이라면

그것을 사지 않았어요.



그것이 내가 선호하는

디자인이라고 해도 안 샀죠.



그러다 보니

주로 중가나 저렴한 물건을

선호하게 되더라고요.



그런 물건일수록

가성비가 높거든요.



비싼 물건들은

가성비가 제일 떨어지거든요.



특히 명품 가방 같은 경우에는

같은 기능을 가진 가방 중에

가장 효율성이 떨어지는 제품인 거죠.



가방이라는 쓸모는

그냥 물건을 집어넣고 다니면 되고

어느 정도 무난한 디자인이면 되니까요.



오히려 명품을 사는 사람들을

이상하다고까지 생각했어요.



왜 저렇게 비싼 돈을 주고

명품을 사는지

저건 허세야 그렇게 치부했죠.



저 사람들은 합리적인

소비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그렇게 정의를 내려버렸죠.



그렇게 물건을 살 때도 가성비,

밥을 사 먹을 때도 가성비,

이 잣대를 수시로 들이밀면서

나는 똘똘한 소비자라고

스스로 자부심을 가졌어요.



그런데

이 가성비 가치관을

단순히 물건을 구입하고

외식할 때만 적용한 게 아니라

인간관계를 할 때도

가성비를 따졌어요.



내가 이만큼 해줬으면

이만큼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죠.



내가 돈과 노력으로

누군가에게 뭔가를 주었다면

그것이 꼭 물질적인 것으로

돌아오지 않더라도

칭찬이라든지 인정 같은 것을

바라고 해줬어요.



그것마저 없으면

내가 착한 사람이라는

우월감 같은 것을 만들어서

내 안에서 자체적으로

보상을 해주었던 거 같아요.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인간관계마저도 가성비가

너무 떨어지게 되고

결국 실망하게 되더라고요.



내가 해준만큼 돌아오지 않거나,

아니 해준 것에 비해서

너무 돌아오는 것이 적다는 생각이 들면

인간관계를 정리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폭넓은 인간관계는

점점 좁아져갔어요.

거의 외톨이 수준으로까지 가게 됩니다.



그리고 직업에 대해서도

그런 잣대를 내밀었어요.



하고 싶은 것보다는

돈이 더 되는 일을 선택한 거죠.




대학 전공을 선택할 때

취업이 잘 되는 전자계산학과를 선택했고

그래서 IT 개발자 세상으로 입문했죠.

그렇게 회사에서 일하며

돈을 벌고 모으는 사회생활을 했죠.



그러다가 30대 초반에

재미있는 드라마에 빠져서

나도 저런 드라마 한편 써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세상 물정을 모르는 애송이가

시나리오 한번 써보겠다고 했죠.



하지만 그냥 꿈으로만

뭐가 만들어지는 세상이 아니기에

그냥 시도만 조금 해보다가

바로 포기했죠.



책도 잘 안 읽고

문학에 문자도 모르고

사람이 접근할 동네가 아닌 거죠.



한마디로 가성비가

너무나도 떨어지는

헛바람 드는 곳이라는 걸 깨달았죠.



그때쯤 생활비도 떨어져서

다시 IT 개발자 일자리를 찾아

시간 대비 실용성 좋은 일을 하는

월급쟁이 생활로 복귀했죠.

가성비 라이프 세상으로.





그러다가 시간은 흘러 흘러

50살이 다가오는 중년에

IT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받았어요.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이었죠.



다른 곳에 일자리를

구하려고 해도 쉽지도 않고

자존감은 바닥을 찍다 보니

자발적 백수 생활로 들어가게 되었어요. 



회사도 안 가고

그 당시 인간관계도 거의 절단돼서

만날 사람도 없고 그러다 보니

정말 아무런 할 일이 없었어요.



일도 안 하고

흘러가는 시간에 멍을 때리면서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죠.



그러다가 우연히

예전에 구입했던 책

하지만 앞에만 조금 읽고

책장에 방치되었던

'아주 특별한 즐거움'

책 제목이 눈에 들어왔죠.



그 책을 펼쳐서 읽으니

기억 저 뒤편에서

예전에 포기했던

글쓰기에 대한 욕망이

아직도 있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그렇게 하다가

지금은 브런치 작가까지 하고 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글 쓰는 시간이

너무 금방 지나가고

게다가 재미까지 있는 거 아닙니까?



글을 쓰면서

내 마음을 청소하게 되고

나를 돌아보게도 하고

생각이 정리되기도 하고

새로운 생각이 일어나기도 하는

이런 많은 일들이 생겨났어요.



글쓰기가 가진 엄청난 마력에

놀라고 또 놀라고 있거든요.



글 쓰는 것은

은근히 보람도 있고

나를 성장시키는 좋은 도구가 되고

그렇게 좋은 점이 크게 다가왔어요.



아이러니하게도

이 글쓰기 세상이야말로

정말 가성비가 극도로

떨어지는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



글을 써도

돈이 전혀 되지 않아요.

거의 되지 않아요.

내가 엄청난 시간을 쏟아붓어서

결과는 거의 없다시피 하거든요.



제가 뭐 작가도 아니고

문학상 지망생도 아니고

그냥 내 일상을 적고 있는

일개 브런치 작가잖아요.



이곳에 글을 쓰는 시간을

돈 버는 직장 생활에 투자했으면

돈을 적잖이 벌었을 거 같아요.

그게 더 경제성 높겠죠.


하지만 거기에는

즐거움과 내 만족이라는

감성이 빠졌을 거 같아요.



대신에 시키는 대로 일하고 돈을 받는

마치 내가 노예 같은 마음이

자리 잡혀있으니까요.


물론 직장에서도

종이 아닌 주인처럼

일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바람직하지만

그것을 그때에는 몰랐던 거죠.






최근에 「쓰는 사람, 이은정」

에세이를 읽고

왜 감동을 받았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바로 작가는

가성비 정반대의 길을

걸어간 사람이라는 거죠.



글 쓰는 게 좋아서

가난하지만 묵묵히

자신에 길을 걸어갔죠.



그리고 결국

그 꿈이 실현되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그 부분이 아름답게 와닿았던 겁니다.



자신의 꿈을 위해서

가성비를 포기하고

나아가는 모습.



그 부분이 저의 눈물샘을 자극했어요.



뭔가 내면에서 울컥하면서

책을 읽게 되었죠.



가성비는 아니야.
그건 너의 꿈을 펼치고
실현시켜주는 길이 아니야

그런 목소리가 들린 거죠.



이 타이밍에 우연히 발견한

유튜브 영상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성공한 사람들에게 발견되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고 하네요.



그들은 중고등학교 시절에

수학 문제를 풀 때

어려워서 잘 풀리지 않을 때

바로 해설집을 보지 않는다고 해요.



대신 혼자 몇 분이든 몇 시간이든

끙끙대면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라고.



이 이야기에 요지는

해설집을 보고 효과적으로

빨리 공부한 사람보다는

비생산적이더라도

직접 자신의 두뇌를 이용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결국에는 성공하게 된다고 하네요.






최근에 꾸준히 글쓰기 하며

맛보는 이 기쁨은

가성비를 추구하는 방식으로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곳이라는 걸

이제서야 알아차린 거죠.



그래서 남편에게

예전 치킨집은 실패했다고 이야기한 것은

너무나도 어리석은 말이었구나 깨달았죠.



는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야 하는가 봅니다.



이제는 가성비 충에서 벗어나

비효율, 고비용, 비합리적인

길을 걸어가 보려 합니다.



그곳의 환희가 있다는 것을

이제는 살포시 알아버렸거든요.



그리고 가성비 이면에는

내가 손해 보고 싶지 않은

이기심이 깔려있다는 것도 알았어요.



그래서 가성비를 고집하는 순간

인간관계나 꿈까지 어그러지는 거였어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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