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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지유 Jul 11. 2022

없는 생활력도 깨워주는 유학생활 적응기

짠하기도 웃기기도 한 해외 자취 초보러의 시작

이번에는 유학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기본적인 의식주와 생활력의 관한 얘기를 해볼까 한다.


우선 필자는 살림의 제왕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집안에는 늘 먼지 한톨 없었고, 살림살이는 칼정리가 되어 있었고 집밥의 수준이 굉장히 높았다. 워낙 잘먹는 4인가족이었기에 늘 밥상은 풍성했고 고기반찬으로 넘쳤다. (참고로 내가 제일 잘 먹었다) 한창 베이킹에 빠졌을 때, 어머니는 집에서 애플파이부터 비스코티, 당근케익 등등을 만들었다. 어릴 적 사촌언니의 말을 빌리자면, 내 방에 차고 넘치는 장난감이 늘 크기별로 정돈되어 있는 걸 보고 놀랐다고. 이런 환경에서 자란 덕분인지, 나는 내 주변 정리는 늘 깔끔하게 하는 편이었지만 그 대신 요리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다. 늘 손이 야무지지 못해 글씨체는 예뻤어도 종이접기는 이래도 괜찮나 싶을 정도로 못했던 나. 손재주가 필요한 모든 부분에서는 그냥 꽝이었는데, 당장 외국에 가서 혼자 살게 되었는데도 혼자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


기본적인 의식주 이야기를 하기도 전, 고질적으로 프랑스의 집들은 꼭 그렇게 한번씩 어딘가 고장이 났다. 처음으로 살았던 아파트는 혼자 살기에 꽤나 넓고 월세도 굉장히 저렴했지만, 혹독한 동쪽 지방 추위를 견디기에 너무 추웠고 개인난방은 너무 비쌌다. 한창 추울 1-2월에는 한 달에 전기세만 30만원이 나오기도. 영하 10도를 웃돌던 1월에 난방기가 고장나기도 했다. 아무 일 없이 갑자기 두꺼비집이 내려간 적도 많았고, 뜨거운 물이 끊긴 적도 여러 번 있었다. 하루는 천장에서 물이 샌 적도 있는데, 뭘 어떻게 할 생각도 못하고 바가지에 떨어지는 물을 받고 젖은 바닥을 닦기만 했던 기억도 있다. (원래 이 정도면 윗층에 가서 따지고 집주인한테도 연락해야 한다. 충분한 이사 사유.)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친구들에게 물어보려 해도, 열여덟살을 겨우 넘긴 친구들도 못 겪어본 일이라 안타깝게도 도움을 크게 바랄 수는 없었다. 요령이 없던 나는 매번 임기응변으로, 얘기 한번 제대로 안해본 앞집 문을 어색하게 두드려보기도 했고, 가끔씩 얼굴을 내비치는 집주인 아저씨에게도 쭈뼛쭈뼛거리며 물어보거나 했었다.


밥솥 사용하는 법만 겨우 익힌 채 시작한 유학생활이었지만 어찌되었건 보고 자라온 게 있었으니, 방만큼은 늘 항상 깔끔하게 유지했다. 침대 정리는 대충이라도 꼭 했고, 옷장 속 옷들은 계절별/색깔별로 정돈되어 있었으며 책장과 책상 위 물건들은 항상 각이 살려서 정리해두었었다. 정리하는 건 오히려 좋아하는 일이었으니 크게 문제될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걸 아는가, "정리"와 "청소"는 사뭇 다르다는 사실을...


물건을 치우는 건 잘했지만, 쓸고 닦고 하는 데에는 영 귀찮았기에 작은 빗자루와 쓰레받기 하나만으로 그냥 버티고 살았다. 학업에 미뤄져서 자연스레 청소도 미뤄지는 일도 잦았지만, 그래도 집 상태는 늘 깔끔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빨래는 안타깝게도 세탁기가 없는 집이었기에, 2주에 한번씩 주말에 잔뜩 빨래감을 안고 근처 코인세탁실로 갔다. 집안에 세탁기가 없으니, 빨래를 하려면 한번에 몰아서 하는 게 습관이 되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빨래감을 세탁기 두개 정도에 넣고 돌리고, 그 후에 건조기까지 이용하다보면 그 당시에 10유로 정도가 들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다행히도 세탁기가 있지만, 아직도 그 당시 습관은 그대로라 한번에 세탁기를 3-4번 돌릴 정도로 몰아서 한다.


"미식의 나라 프랑스니, 맛있는 것 많이 먹겠다~"하는 말에 당시 필자는 먼 산만 바라봤던 것 같다. 갓 입학한 대학교 신입생이 무슨 여유가 있다고 맛있는 걸 먹고 다니겠느냐, 이거다. 물론 맛있는 게 없었던 건 아니지만,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와인과 달팽이요리, 스테이크, 치즈보드는 프랑스에 오고 나서 몇년은 지나서 먹었다는 사실. 매일 점심시간에 근처 마트에서 이것저것 사먹는 점심은 편의점에서 사먹는 것과 별 차이 없었고, 한국에서도 제대로 장본 적이 없던 자취 초보자가 무슨 수로 외국에서 식재료를 구해 요리를 하나. 그 때나 지금이나, 정말 최소한의 재료만 구비해서 만들기 쉬운 것들만 만들어 먹곤 했다. 만들어봤자 볶음밥 종류나 파스타 종류? 정말 귀찮고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땐 시리얼만 먹기도 했었다. 그러다 못 견딜 것 같으면 바게트에 햄 정도만 사두기도 했고. 정말이지, 짠해도 이렇게 짠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백지 상태였기에 지금의 필자의 모습이 된 게 아닐까 싶다. 여전히 요리는 귀찮지만 그래도 필요한 건 구해다 적당히 해먹을 줄은 아는 수준이 되었고, 청소와 정리는 완전히 취미 수준의 일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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