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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지유 Feb 01. 2022

프랑스 유학 3년차, 파리로 상경하다

얼레벌레 지방에서 수도로 올라와 대학 편입지원과 집 찾기, 이사까지

프랑스 유학. 누군가에게는 꿈만 같고 마냥 로맨틱하게 들릴 거라 예상한다. 그러나 필자는 중학교 때부터 프랑스식 교육을 받았었고, 인생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던 터라 프랑스에 대한 그 어떤 예상도 기대도 없었다.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지방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에 불만은 없었다. 그 때까지 파리에 대해 가장 선명한 기억은 중학교 시절 구정 연휴 때 간 가족여행이었는데, 짐이 분실되는 바람에 약 5-7일간의 일정 중 4일을 짐 없이 살았던 악몽이 생생했다. 2월 중순의 파리는 너무 춥고 비가 많이 왔으며, 항공사에서 준 응급키트는 4일을 지내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당연히 파리에 대한 첫인상이 안 좋을 수밖에.


본론으로 돌아와, 3학년 졸업전시에서 떨어진 나는 다른 학교로 편입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서둘러 알아봤다. 담당교수에게 '네가 무얼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네가 하는 작업은 예술이 아니다' 이런 처참한 평을 듣고 나니, 그렇지 않아도 힘겹게 작업을 이어나가던 차에 정말 그림에 진절머리가 났다. 또 문득 돌아보니 3년이나 미술 공부를 했음에도 미술사에 대한 지식이 바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프랑스로 미술 유학을 왔는데 프랑스 미술관을 루브르와 오르세밖에 몰랐다니, 미대생으로서 굉장히 부끄러웠다. 그리하여 졸업전시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날, 한차례 눈물폭풍이 지나고 난 후 부모님과 대책회의에 들어갔다.


미술 또는 미술사 계열의 전공으로 편입하는 것을 목표로 플랜 A는 파리의 국립대학,플랜 B는 응용미술학교 또는 실기 중심 학교. 그리고 플랜 C는 사립학교였다.


프랑스의 편입서류전형은 전공 불문하고 대체로 3-5월 사이에 이루어진다. 아마도 졸업전시 이전에 이미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이곳저곳에 지원을 해두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안타깝게도 플랜A인 국립학교들은 모두 낙방했다. 플랜B 학교들의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졸업전시가 지나갔다. 졸업전시에서 떨어지면서 3학년 진급도 좌절되자, Bac+3 (프랑스 학벌을 따질 때의 기준치. Bac은 수능, Bac+3는 수능 이후 3년 즉 학사. Bac+5는 학사에 2년을 더한 석사. 전공에 따라, 박사과정에 따라 Bac+8, Bac+11까지 있다)이 조건이었던 응용미술학교도 낙방하고 말았다. 졸업전시에 떨어진 것만으로도 망연자실인데, 꼼짝없이 3학년을 한번 더 다니거나 한국으로 돌아가게 생긴 것이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플랜 C로 생각해두었던 사립학교들을 지원해보기로 한 후, 지원할 학교들에 대해 좀더 알아보았다. 후보는 세 군데로, 모두 파리의 중심부에 위치한 학교들이었다. 이들은 국립학교들처럼 실기나 이론주의가 아닌 현장주의 - 즉, 미술경영과 미술시장이론 전공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떤 학교인지 제대로 알아보거나 이것이 내 장래에 정말 맞는 학교일까 고민할 새도 없이 입학시험 시즌이 다가왔다. 세 학교들의 입학시험/면접 날짜 일정은 모두 이틀/사흘 내에 몰려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미리 예약해두었던 한국행 비행편까지도 시간이 얼마 없었다. 이미 포화 상태인 일정에 뭘 더 했느냐, 집을 알아보기로 했다! 파리로 학교를 옮기기로 한 이상, 살 집을 알아봐야 할 것 아닌가.


그리하여 일주일 안에 나는 학교 세 군데의 입학시험(필기 + 면접)을 치렀으며, 이사할 집을 알아보고 다녔으며, 집 계약까지 했다는 어마어마한 성과(?)를 거두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던 건, 그 때 아직 많이 어렸고 이 유학생활을 그만두고 싶지 않다는 절박함이 정말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여길 꼭 붙지 않으면 안 돼", "집을 당장 구하지 않으면 안 돼", 정말 모 아니면 도였기에 어떻게든 발버둥쳤더랬다. 시험 한 곳이 끝나면 면접관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음 시험이 있어서 빨리 가야 한다며 뛰쳐나오고, 아직 익숙치 않았던 파리의 지하철을 타고 구글 맵에 의지하며 다음 학교를 찾아서 또 열심히 면접을 보고. 프랑스 한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매일같이 들여다보면서 내 조건에 맞는 집을 검색했고, 약속을 잡고 집을 보러 다니기도 하고 중간중간 부모님과 통화하면서 조건에 대해 얘기하고. 소개인과 집주인, 부동산 중개인들까지 만나가며 꼼꼼히 따져보고...


그래서 어떻게 됐느냐.


세 학교 중 가장 조건이 무난하고 괜찮았던 (학위, 그리고 학비 면에서) 한 학교에 합격했고, 정말 다행히도 내 예산과 조건에 들어맞는 집을 구해 바로 계약까지 할 수 있었다! 이 부분에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일주일 동안 내가 묵은 방을 내어주신 부모님의 지인 분들, 집을 보러 갔을 때 친절하게 대해주셨던 소개인, 부동산 계약할 때 보증인이 되어준 감사한 프랑스 지인, 내가 계약만 하고 덜컥 한국에 돌아간 사이 대신 열쇠를 받아준 부모님의 지인 분... 어느 한 분이라도 없었더라면 내가 그렇게까지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면서도 그 많은 일을 해낼 수 없었을 거다.


그렇게, 내 유학생활의 제2막: 파리 상경이 막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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