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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지유 Apr 28. 2020

프랑스 미술학교에 첫 발을 내딛다

낯설고 힘들었고 즐거웠던 미술유학의 시작

5살의 나는 엄마가 세일러문 녹화를 잊어버리면 집이 떠나가라 울던 아이였다. 좀더 커서는 동네 만화방을 매일같이 들르고 용돈을 조금씩 모아 만화책을 한두권씩 사 모으던 초등학생이었다. 몇년 후에는 처음 장만한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으로 꽉 채우고 애니메이션으로 일본어를 배운 중학생이었다. 고등학생 때는 애니메이션 자막의 수준, 제작사의 그림체와 성우의 연기 등을 다 볼 줄 알았고 유창한 일본어 대화가 가능해졌다. 이쯤이면 병이다 싶을 만큼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집착했다. 나의 유일하다고 해도 좋을 만한 취미생활이었다. 독서와 그림 그리기는 이 열병같은 취미생활의 연장선이었다. 독서는 그림없는 만화였고, 그림은 좋아하는 만화의 명장면들을 따라 그리는 것으로 입문했다.


그토록 사랑하는 만화로 시작했으니, 나에게 있어 그림은 하루라도 그리지 않으면 몸이 근질근질한 그런 것이었다. 집안의 모든 빈 다이어리나 공책은 내 그림들로 가득차서 내 방 책장에 쌓여갔다. 미술학교로 진학할 마음을 먹고 학원에 등록시켜달라 부모님께 말씀드렸을 때 두 분의 의아하다는 반응은 잊을 수 없다. 학원에 대해서는 아마 따로 시리즈를 만들어야 할 만큼 이야기거리가 많지만, 두어줄로 요약하자면 굉장히 낯선 감각이었다. 방 안에서만 끄적이던 그림을 평가해주는 선생님에게 제출한다는 건 완전히 새로운 느낌이었다. 여러 해 동안 만화를 필사하면서 늘어난 건 똑같이 그리는 능력, 디테일을 보는 능력 정도였나. 다행히 그곳은 입시미술처럼 "잘" 그리는 것을 목표로 트레이닝하기보다는 본인에게 맞는 주제를 찾는 것, 주제를 풀어나가는 것, 주제를 잘 표현하는 것을 강조하던 곳이라 나는 차근차근, 포트폴리오를 한장 한장씩 채워나갔다. 그 포트폴리오로 한 학교에 입학해, 나는 한국에서 프랑스로 날아가게 되었다.


모든 신입생이 그렇듯, 처음에는 이것저것 다 낯설었다. 프랑스라는 나라도 처음, 학교 구조도 처음, 친구들도 교수들도 초면. 기억하기를, 가장 의외로(?) 신기했던 것은 수업표였다. 고등학생도 아닌데 수업표? 그렇다. 학교에 따라, 프로그램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선 미술학교의 경우 전공이 나뉘지 않는 이상 수업을 학생이 정하는 시스템이 아니기에 신입생들은 모두 중학교/고등학교와 다름없는 수업표로 학교를 다녔다. 대학생이면 좀 널널한가? 아니다. 수업은 매일 9시부터 5시, 늦으면 6시까지 이어졌다. *눈 꿈뻑꿈뻑* 그리고 수업표를 가득 채운 특이한 과목들.


첫 두 문단에서 아마 살짝 드러났을 수도 있는데, 필자는 좋아하는 것만 하고 싫어하는 건 절대 안 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사회인이 되고 나니 매우 괴롭다 처음에는 그림으로 학교를 다닌다고 해서 얼씨구 좋구나하고 안일하게 생각하며 들어가보니,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신입생 당시 들었던 과목 중 몇몇을 나열해 보자면 Dessin (데셍/그림), Dessin anglais (영어 대셍 프랑스어 만렙 영국인 교수님들과 수업), Peinture (회화), Dessin construit (설계), Volume (조각 직역으로 부피인데 수업내용은 조각), Histoire de l'art (미술사), Photographie (사진), Amphithéâtre (시청각 수업) 등이었다. 어라, 그림만 있는 게 아니네? 이야기가 다르잖아?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생각이 짧은가 싶다. 특히 필자가 가장 젬병인 조각...지금 생각해도 필자는 평생이 걸려도 안 될 과목이 아닐까 싶다.


어찌되었건 아는 건 아는 대로, 모르는 건 모르는 대로 일단 해보자 정신으로 강의실에 들어간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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