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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틀란 May 05. 2023

비와 장미

@송현샘께 

생방송중에 자주 있는 일입니다.

내기를 했다며 30년도 넘은 노래에 관한 문자가 옵니다.      

“비오는 수요일인데 이 노래가 나갈 건가요? 아닌가요?”     

노래신청방법도 꽤 발전했습니다.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을 틀어달라는 이야기죠. 


다섯손가락이 80년대 중반에 불렀던 노래입니다.

TV에 출연해서 본인들이 이야기하더군요.

젊음의 행진 프로그램에 오디션을 보고는 합격해서 바로 활동을 하게 됩니다. 

고등학교때부터 준비했던 대학생 출전 가요제는 못나가게 되었다고 해요. 

이 노래, 이두헌 작사작곡이고요. 직접 불렀습니다.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은 록과 팝 발라드를 섞은 느낌이죠. 

이두헌의 목소리는 약간 무거우면서 중저음인데요.

보컬전격담당인 임형순과는 다릅니다.

뭐랄까, 아득한 마음이 들게 해요. 

알고 보니 처음 부른 노래였다더군요. 

그는 기타맨이었습니다.       

노래만든 사연이 있더라고요.

하필 비오는 수요일,

짝사랑하던 여자에게 거절을 당하고 빗길을 걷다가

할머니가 파는 장미꽃과 안개다발을 사서

주고 받는 연인들을 보면서 순간 악상이 떠올랐다고요.

바로 담배 은박지를 꺼내 오선지를 긋고 적었다고 합니다.

화가 이중섭도 아닌데 은박지라니….

예술의 기적을 주는 도구에 은박지가 꼭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은 록발라드입니다. 

리메이크한 후배 가수 성시경은 너무 부드러운 발라드.

김범수버전은 R&B 버전입니다.

저는 다섯손가락의 원곡노래가 좋습니다만, 

리메이크곡들이 부모자식간에

소통의 끈도 된다더라고요.      

‘송골매’나 ‘들국화’로 록의 맛을 봤던 사람들은 

또 다른 밴드를 만나고 싶어 했겠죠.

때맞춰서 이들이 온 겁니다. 

낭만과 감수성에 젖어들고픈 

노래 좀 들을 줄 아는 젊은이들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연애 해 본 사람치고 장미꽃 한번쯤은 주고 받아봤을 겁니다. 

지금도 장미인지는 모르겠는데요.  

그때는 왜들 그렇게 장미를 주고 받았을까요?

꽃배달 서비스도 없었던 시절에 말입니다.

한송이냐 한다발이냐 취향에는 차이가 있겠습니다만.     

옛날부터도 애정을 표현할 때 뭔가를 건넵니다. 

원시시대에 살던 수렵인 남자는 토끼 한 마리를 잡아서

맘에 드는 여자에게 내밀었을지도 모릅니다. 

돌고래도 구애할 때는 진흙이나 나뭇가지를 암컷에게 준다고 해요.

그러니 꽃을 주고 받는 현대 인간들의 마음도 비슷하겠죠.     

서양에서 장미를 바치며 사랑을 고백하는 게 일상이라고 배웠어요.

중국에서는 난초나 작약같은 꽃을 주며 고백하는 상사일이 있고요.

꽃보다 과일이라고, 복숭아, 자두, 모과와 매실, 대추같은 과일을 

서로 주고 받으면서 남녀간의 사랑을 표현했다고 해요.

주로 여자가 남자에게 과일을 던지고

응할 마음이 있으면 남자가 몸에 갖고 있던 패옥을 주었다더라고요.

더 현실적인가요?      


노래로 돌아가면요. 

빨간 장미를 주고픈 것은 내 마음의 표현인데,

주고픈 마음은 이미 상처 입어 버린 상태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녀도 슬퍼 보이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이별통보 받은 몸이지만 

어쩐지 ‘가오(かお)’는 놓치고 싶지 않은 노래 속 주인공,

슬픈 영화 한 장면을 떠올립니다.


비내리는 거리에서

무거운 트랜치 코트 깃을 올려 세우며 표표히 떠나는 남자, 

헐리웃 영화 속 남주를 자신인양 투사해보는 거죠.  

퍼뜩 영화 <애수>속 로버트 테일러가 떠오릅니다.

워털루 다리에서 안개 속을 걸으며 비비안 리를 회상하던 모습 말이죠.     

아, 죄송해요. 이렇게 또 여자는 다른 노래 속 당사자가 아니라 

영화 속 배우를 상상하고 있네요.     


어쩌면 연애는 그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각자 방식의 사랑을 상대에게 투사하는 일 말입니다.

흔히 말하는 이른바 ‘사랑을 사랑했다’가 되는 건가요?


아니요. 그것보다는 이런 말이 맞을 것 같네요.


우리가 그 어려운 성문영어에 수학정석을 공부했지만

사랑하고 연애하는 방법은 배운 적 없습니다.


그 어려운 것들을 다 가르쳐주셨던 선생님들은

순간 지어냈을지도 모르는 첫사랑이야기로만

사랑의 기술을 건네셨죠.

저는 연애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정규과목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소리 높여 주장하는데요.     


비오는 날, 감성 쩌는 이런 노래를 들으면 

더 생각이 많아집니다. 

이런 저런 원인으로 결혼도 자녀출산도 꺼려하는 청년들에게

어떤 걸 주어야 할까….

짐작하셨겠지만 

저는 아날로그세대가 맞습니다. 

비오니 이 노래입니다.

https://youtu.be/16ADX6zz8K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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