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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틀란 May 06. 2023

비추다 비치다,  내마음에 비친 내 모습

유재하는 구도자였어요


흔히 클래식 음악하면 서양고전음악을 말하죠.

사전적으로는 그냥 고전!

오래됐지만 여전히 좋은!

팝송으로 말하면 ‘올디스 벗 구디스’ 쯤 될 거에요.     


우리 노래, 가요에도 클래식은 많습니다.

오래됐지만 좋은 노래들 말입니다.

'불후의 명곡'에 주로 등장하는 노래종류겠네요.  


대중가요가 유행따라 흘러가는 음악이라지만

그 흐름을 타고 나타났다가

바로 사라지지 않고

오래 사랑 받아온 노래들,

책으로 치면 '스테디셀러'들입니다.

어쩌면 노래를 책처럼 치는 제게는

노래들도 명작 고전이 좋습니다.

    

흔히 우리 가요사에서 아까운 죽음을 말할 때

등장하는 가수 중 빠지지 않는 인물로 유재하가 있습니다.


평론가인 임진모씨는

우리 가요사에 발라드의 문을 연 사람이 이영훈이라면

작사 작곡 편곡에 노래까지 하는

싱어송라이터의 대표는 유재하라고 하더군요.    

 

유재하는 음대에서 클래식 작곡을 전공했습니다.

요즘이야 흉도 아니지만,

클래식을 전공 하다가 대중음악을 선택한 그가

그때는 어쩌면 실패한 음악인으로 보일 수도 있었겠네요.

크로스오버 장르가 꽤 자리를 잡았지만

순수음악, 실용음악을 여전히 따지는 전문가(?)들이 지금도 꽤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죠.


유재하는 그렇게 대학교 4학년때

대중음악계로 뛰어듭니다.

힘들었을 거에요.       

김현식이 이끌었던 ‘봄여름가을겨울’과

조용필의 ‘위대한 탄생’에서 키보드 연주자로 활동했고요.

87년에 제대로 1집 <사랑하기 때문에>를 내고

석달만에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합니다.

그렇게 달랑 판 1장 남기고 떠나버린 가수는

30년도 넘게 사람들 마음에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신기하죠?     


흔히 ‘퓨전재즈’라고 불렀습니다.

뒤이어 김현철이나 오석준같은 음악인들이

자리를 잡게 했는데요.      

자신의 전공이었던 클래식과

그때만 해도 국내에서는 대중적이지 않았던 재즈를

가요에 접목시켜보겠다며 무사처럼 나선 유재하의 용기는

음악을 자신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나 나오는

찐한 목표죠. 판을 바꾸는 힘이 있었고요.     


<사랑하기 때문에>라는 노래는

사실, 조용필이 유재하보다 먼저 부를 정도로

사랑받았죠. 이문세도 불렀던가요.      


마치 유재하 자신을 노래한 듯한 곡으로  

<내마음에 비친 내 모습>이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노래인데요.     

인간은 살면서 사랑도 원하고 성공도 꿈꿉니다.


유재하의 짧은 인생에서

‘붙들 수 없이 사라져간 꿈의 조각’들은

이성에 대한 사랑이야기라기 보다는

정녕 음악의 지향점과 완성도일 거에요.     


클래식에서 대중음악계로 경계를 넘어 온 그가 맞닥뜨린 현실은

어쩌면 순수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거짓으로 자신을 감추어야 했던 부분이 많았을테고요.


숨섞인 말 한마디에’ 가끔은 진실을 담아보지만

여전히 그의 음악적인 삶은 힘겹고 근심스러웠을 겁니다.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것은

누군가의 조언이나

남들이 이미 하고 있는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자신 마음에 비친 자신 모습,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

자신만의 사유를 통한 진실한 판단과 행동의 결과물이었죠.      


여기서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은

대체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어쩌면 거꾸로인 모습이었을 수도 있겠죠.  

거울에 비친 우리는 좌우가 거꾸로입니다.

아무 생각없이 보다가도

제대로 보려면 마음을 다 잡아야 합니다.


유재하 역시, 노래라는 도구로,

자신 마음에 비친 자신 모습을

그리려고 결심한 후에도

여전히 힘들었을 겁니다.


거꾸로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로 봐 내야 하는 과제가 하나 더 있었으니까요.      


라캉은 말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고요.

보이는 것처럼, 배운 것처럼이죠.


신승훈의 노래 ‘미소속에 비친 그대’도 떠오르네요.  

실패를 예감하게 하는 사랑 노래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

미소속에 비친 그대는 자칫 뭔가 내가 오해한 모습으로

비칠 지도 모르니까요.    

  

라캉을 넘어서는군요.

남의 것이 내 것이 아님을 깨닫고,

다시 내게 비치는 거꾸로인 모습조차

바로 알고 그리려면,

비친 것을 제대로 해석해서 다시 비추려면,

음악이 주는 쾌락을 넘어,

성취가 주는 행복을 넘어,

평생을 구도자로 살아야 할 지도 모릅니다.    

비치는 내 모습을 제대로 알면

다시 누군가에게 비출수 있는 거죠.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생의 진리를 품고 있어서

오래 오래 공명하게 하는 노래,

우리 가요의 클래식,

유재하의 <내마음에 비친 내 모습>입니다.      


아,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곽진언이 리메이크했죠.

이 버전이 훨씬 힘이 덜 들어갔습니다.

차라리 유재하는 꽤 힘주어 불렀습니다.  그 이유인즉,

‘이제와 뒤늦게 무엇을 더 보태려 하나’라고 노래하지만 늦었다 생각하는 순간도 늦은 게 아님을 알고 비추는 일,

그것을 더 절실히 원했던 것 아닐까 싶어요.


사랑노래가 모두 꼭 사랑만을 노래하지는 않는다고 믿는 1인입니다.

https://youtu.be/yPdUVGhmX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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