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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틀란 May 07. 2023

나훈아의 명자(아끼꼬)

지난 시대 수많은 '자야'들과 함께 듣고 싶은 노래

세상의 수많은 노래들은 색깔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만큼 그렇게요.

전혀 공감할 수 없는 노래를 보석처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도 어쩔 수 없이 들려주고 듣습니다.

개인의 취향이구나 하고요. 그런 일을 합니다.      


몇 년 전 KBS에서 나훈아가

후배가수인 하림의 하모니카에 맞춰 부르던 노래 한곡,

최근 트로트중에는 맘에 듭니다.

댄스트로트를 선호하지 않는 개취이니 이해해주십시오.     

나훈아의 새 노래들 중

<테스형>보다 개인적으로 더 좋은 노래가 있습니다.

<테스형>은 그리스 철학자에게 미안해집니다.

‘소서방’(테스형 대신 쓰는 호칭입니다)이 그리 살라고 한 것도 아닌데,

세상이 이렇게 된 일을 거기 따질 일은 아니라고 판단되었거든요.

다시 말하지만 제 개취입니다.     


 <명자>란 노래를 함께 듣고 싶습니다.

지난 시절,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하고 많은 이름들에

'꼬'가 들어갔습니다. 명자, 영자, 순자, 경자, 기자...

창씨개명으로 퍼뜩 만들어진 조선여성이름들.

한동안 뒷세대여자들도 이 이름으로 많이 살았습니다.


하고 많은 노래중에 듣는 순간,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노래가 있습니다.

<명자>도 그런 노래 중 하나입니다.     

80대에서 70대, 60대, 아니, 50대까지의 여성들이

다 그렇고 그런 시절을 떠올릴 수 있는 노랫말이어서 말입니다.  

    

나 어릴 적에 개구졌지만/ 픽하면 울고 꿈도 많았지

깔깔거리며 놀던 옥희 순이/ 지금 어디서 어떻게 변했을까

자야자야 명자야 불러샀던 아버지/술심부름에 이골 났었고

자야자야 명자야 찾아샀던 어머니/청소해라 동생 업어줘라

어스름 저녁 북녘하늘 별 하나/눈물 너머로 반짝반짝 거리네     


개구쟁이지만 눈물도 많고 꿈도 많았던 날, 함께 놀던 친구들이 그립습니다.

놀기도 맘대로 못 놀았어요. 참 바빴거든요.

아버지를 위해 술도가까지 가서 막걸리를 주전자로 사 날라야 했던 때,

그때를 아시는지요?

아이들은 심부름 하다가 목마른 김에 마셔서 취하기도 하고

줄어든 주전자에 물을 부어 채워 가져다 드리기도 했죠.

그렇게 어린 날 술맛을 빠르게 알았던 분, 있을 겁니다.


아버지 대신 밭일 논일에 손이 열 개라도 모자라던 어머니는

장녀, 큰 딸에게 집안일이며 육아를 맡겼습니다.

내 덩치만한 동생을 등에 업고 고무줄 놀이하다가

동생 떨어뜨릴 뻔 한 기억도 있습니다.     


큰딸 명자는 저녁녘에야 겨우 바깥일 끝낸 어머니에게

동생을 내려드리고 자신만의 시간이 생겼을 때,

졸린 눈 비비며 하품하다가 하늘을 보았겠죠.

순간, 눈에 들어오는 별은 유난히도 빛났을 거고요.

알 수 없는 서글픔이 밀려오기도 했을 겁니다.

그 별빛을 보며 자신의 현실을 잠시라도 자각하지 않았을까요.      


나 어릴 적에 동네사람들/고 놈 예쁘다 소리 들었고

깐죽거리며 못된 철이 훈아/지금 얼마나 멋지게 변했을까

자야자야 명자야불러샀던 아버지/약심부름에 반 의사됐고

자야자야 명자야 찾아샀던 어머니/팔다리 허리 주물러다 졸고

노을 저편에 뭉게구름 사이로/추억 별들이 반짝반짝 거리네

눈물 너머로 반짝반짝 거리네     


다시 그 시절 기억나는 노랫말입니다.

나름 곱상한 명자를 좋아라 하던 머스매들도 있었지만 다 떠나갔죠.

아버지는 거친 삶의 무게와 술로 푼 홧병에 약을 수시로 드셔야했고

끝이 없는 노동에 팔다리 허리는 늘,

장녀 명자손의 안마로 견디던 어머니도 서러워서 더 그리운 시간,

또 별들이 찾아오네요. 반짝 반짝 하면서요.    

  

왜 해질녘이면 그런 생각들이 스멀스멀 떠오를까요?

이제는 그리워도 못가는 시절이어서 그럴까요?

글쎄요…, 그렇게 단순한 이유만은 아니지 싶습니다.

아무튼 별빛은 자꾸 찾아옵니다.     


자야자야 명자야 무서웠던 아버지/술 깨시면 딴사람 되고

자야자야 명자야 가슴 아픈 어머니/아이고 내 새끼 달래시며 울고

세월은 흘러 모두 세상 떠나시고/저녁별 되어 반짝반짝 거리네

눈물 너머로 반짝반짝 거리네    

 

김훈작가도 그랬습니다.

그 시절 아버지들은 시대에 대한 아픔조차 술로 푸셨다고요.  

술에 취하면 자식인지 아내인지도 모르고 매질하며

주사 부리고 술 깨면 멀겋던 그 시절 아부지들을 혹시 아십니까?   

  

엄마는 자신보다 딸이 당하는 폭력을 안타까워 어쩔 줄 모르셨지만

함께 당하는 그 힘듦을 그저 감내하자고 무력하게 우실 뿐이었죠.

그 시절, 어두운 자화상입니다. 약자는 누구였나 싶습니다.     

이제는 다 떠나셨겠죠.  


‘자야’ 부르고 대답 없으면 ‘자야’ 한번 더 부르고

그래도 답 없으면 ‘명자야’ 하던 그 목소리들...

지긋지긋하게, 끝도 없이, 징허게도

‘불러샀고, 찾아샀던’ 아버지 어머니셨습니다.      

그래요. 그래도 그립습니다.


달라진 것도 있습니다. 각성입니다.

여전히 저녁별은 눈물 너머 반짝거립니다만,

별빛따라 반짝이는 내 눈물은 그리움뿐만 아니라,

북극성처럼 빛날 기회를 놓친 회한이 담겼을 수 있다 싶습니다.

      

니체는 ‘춤추는 별을 잉태하려면 반드시 스스로의 내면에 혼돈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고 했던가요?


명자는 혼돈의 시간이 아니라

길고 길어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긴 어둠의 시간속에 갇힌

자신의 꿈을 떠올렸을지도 모릅니다.      

동주의 ‘별 헤는 밤’은 시로 빛나는데,

명자의 ‘별 따라 우는 밤’은 왜 그저 추억으로 묻혀야만 했을까요.  

   

자신의 꿈을 실현시킬 ‘별의 순간(Sternstunde)’은

명자에게 정말 한 번도 오지 않았던 것일까요.

아니죠. 왔지만 흘려보냈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며 바라본 별에서 여전히 눈물이 흐르는 건

못다 이룬 꿈, 별을 향한 소원때문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위안해봅니다.

77살까지 경제활동 해야 하는 시대라고 뉴스앵커가 말하고 있네요.  

여기저기 고장 나는 몸을 추슬러 꿈을 떠올려 봅니다.

주저앉으면 별은 영원히 꿈만으로 남을 뿐,

눈물로 남은 영원한 과거속으로 사라지고 말겠죠.     

지금 이룰 수 있는 그것이 분명히 있을 거라 믿습니다.


여전히 포기가 안되는 이유는 아직도 명자들은 살아있고,

그때처럼 별이 하늘에서 빛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인을 할 꿈은 설마 없겠지만

명자의 ‘별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고요.      


지금이 그때이고 지금이 미래입니다.

세상의 모든 명자들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명자야. 힘내!

https://youtu.be/usHvad89tbc     


어버이날, 여전히 명자인 분들과 함께 듣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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