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요. 지금으로부터 십년전까지는 완전 불자였심더. 초파일 100일전부터는요.
퇴근하고 나모 바로 절에 갔어요. 목욕재개하고 밤새두룩 절했습니더. 아매 나이롱 중보다 맻백배 더 절 마이 했을끼라요. 그런데 와 내가 절을 떠났느냐? 사람이요. 살다보믄 절하고 기도만 해서는 해결 안되는 일이 있능기라요. 그런 에리븐 거를 도저히 해결을 몬해서 시님한테 물었심더. 시님, 시님, 우짜모 좋겄심꺼? 시님이 머라하는 줄 압니꺼? 모든 문제는 니한테서 나온 기니 니가 해갤해야 된다. 니 자신한테 물어봐라... 사람이 그래 힘들다고 난리치면 손이라도 잡아주야 되는 거 아입니까? 절은 도저히 그거를 안해주더라꼬요. 그라고 나서 동네교회를 갔지요. 개척교회였는데 목사님이 울매나 내 손을 잡고 같이 울어주시는지, 내가 내가 아이고 저 목사님이 낸가 싶을 정도로 내 아픔을 목사님 아픔겉이 같이 아파해주더라꼬요. 아, 이기다. 이기라. 싶더라꼬요. 그래서 가게 된 기 올해까지 십년입니더. 아멘. ”
사고난 차를 끌고 가면서 레커차 기사님은 자신의 신앙에 추호의 의심도 없는 듯 시종일관 확신하며 말했다. 단어선택이나 소재 선정상 지적이지는 않았지만, 단호하고 힘있는 어조로 자신의 ‘하느님’이 얼마나 자신의 아픔과 함께 하는지에 대해 설파했다. 단어 하나로도 까칠하고 소름 끼치게 따지던 소위 가방끈 긴 목회자들과는 달랐다. 솔직히, ‘하느님’은 가톨릭, 그러니까, 성당 가는 기독교신자들이 번역성서에서부터 사용하는 용어다. ‘하늘에 계신 임’이란 뜻으로 쓴다고 들었다. 대신 예배당, 개신교 신자들은 ‘하나님’을 쓴다. ‘하나뿐인 임’이란 뜻이라고 들었다. 작은 단어 하나에도 일일이 차별 아닌 차이, 서로가 다름을 따지던 그들 아니던가. 레커차 기사님은 그들에 비하면 오히려 그들의 신 가까이에 있다고 느껴졌다. 사고나서 얼빠진 와중에도 내가 대답이란 것을 하게 만들었다.
“저는예. 이번 사고도 그렇고 저번 사고도 그렇고, 사고 몇 번 겪고 나니 집 나설 때 청소나 잘 하고 나서야 되겠다 싶어예. 길에서 언제 어째 죽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 아입니꺼? 저번 사고만 해도 그래예. 소형도 아니고 경차를 뒤에서 25톤 화물차가 박았는데, 중상 아니면 사망 가능성이 절대적으로 많다 아닙니꺼. 그런데 희한하게 살았어예. 살짝 건드리기만 한 것도 재주 아닙니꺼. 저는예. 그 25톤 화물차 운전기사한테 고맙다 했습니더. 그만큼만 건드리줘서예. 진짜 고맙더라꼬예. 그래서 사실은 제가 바보 같은 고민을 억수로 많이 했어예. 아, 화물차 운전기사들, 정말 형편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하더라꼬예. 그러니 보험말고 진짜 내가 한의원 가서 치료받을 최소한의 비용만 자기가 대겠다 하면 그걸로 해결 봐주자. 그라고 통화를 했는데 자기는 그돈도 비싸다 하대예. 그라면 보험으로 하자 했습니더. 자기가 싫다는데 별 수 있습니까.”
다 안다는 듯 기사님은 아무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자동차 보험되는 한의원 가니까예. 거기도 웃기는 세상이더라고예. 제가 처음에 다니던 한의원은 의료보험만 돼서 침 맞고 5천원이면 됩니더. 그런데 자동차 보험되는 한의원은 어째 계산하는지 몰라도 그냥 기본 병원요금이 2만5천원인데, 사고로 온 사람들한테는 1회에 5만원 받대예. 내 참 어이가 없어서. 내 돈 나가는 거 아이지마는 얼마나 웃깁니꺼. 성도 나고... 더 기가 찬 거는 의료보험만 하는 한의원은 효과가 있는데, 이 자동차 보험하는 회사는 몇 번을 가도 별로 효과가 없다는 겁니더. 의료보험 만 되는 한의원은 다 쓰러져 가는 노래방 건물 2층에 처박혀 있어도 침을 맞고 나면 온 몸에 열기가 돌면서 몇 시간 후면 화악 풀리는데, 자동차 보험 취급하는 한의원은 도심에 큰 평수 차지하고 앉았는데, 침 맞아봐도 아무 효과가 없어예. 차라리 기계맛사지가 낫대예. 그래서 생각했지예. 야, 참 세상이 진짜 웃기구나. 처음에는 불공평한 거 같더마는 자꾸 생각해보니 어찌 보면 공평한 거지예. 귀찮아서 자동차 사고 관련 보험 안한다는 한의원은 실력 보고 찾아오는 환자들은 꾸준해서 먹고 살 정도는 되는 거고예. 자동차 사고 보험 취급하는 한의원은 보험이라도 해야 먹고 사는 긴가 싶고예. 잘은 몰라도 둘이 다이다이로 붙어모 실력으로는 안될 거라예. 그래서, 사람은 어떻게든 먹고 살게는 돼 있다는 사실을 또 한번 깨달았지예.
아, 이야기가 딴데로 빠졌지예. 그래예. 사람이 앉아서 입만 열면 천하가 지껀 줄 말하고, 온 세상에서 지가 최곤지 알지마는 돌아서면 길바닥에서 1초만에 죽을 수도 있는 존재 아입니꺼. 그래서 남들은 신을 찾고 ‘하느님’이든 ‘하나님’이든 신을 찾고 절에도 가고 한다 하던데예. 저는 반대로 그들한테 뭔가를 안맡기고 싶더라고예. 죽는 기 겁나기는 하지마는 죽어야 되모 죽어야지예. 어차피 죽는데 그기 무슨. 대신에 주변정리는 해놓고 다니자 싶어서 말이지예. 흐흐흐 좀 이상합니꺼?”
불그죽죽 어젯밤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아직 술기운이 가시지 않은 듯한 얼굴인 레커차 기사는 혼미해 보이는 가운데도 주님은 놓지 않았다. 혹시라도 ‘主님’이 ‘酒님’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라디오는 기독교방송으로 주파수를 맞춰 놓았고 다른 도시에 있는 정비업소까지 차를 가지고 가는 2시간 동안 줄곧 자신의 신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개종한 경험을 바탕으로 나름대로 불교와 개신교의 경계를 타고 끝없이 설파했다. 마치 종교를 컬래버레이션해서 신종교를 만드는 것처럼도 느껴지기도 했다. 어차피 종교는 인간의 것이니 상관없다 싶기도 했다고 고백하고 싶다.
렉커차 기사가 물었다. ‘교회도 다니시고 성당도 다니다가 절에 갔다니, 이상하지 않더냐’고.
“그게 그렇다고예. 교회야 어릴 때 주일학교 다니면서부터 갔고, 찬송도 많이 불렀는데 중학교 가면서부터 미션계 계통학교였는데, 사춘기라 예민할 때 가톨릭에 젖어 있었고예. 결혼하고 남편이 완강한 불교신자라 절에 가기는 갔는데, 절하라 해서 세 번 절하면서 입에서 저도 모르게 하느님...하고 나오더라고예. 잠시 당황했는데예. 하늘에서는 부처님, 예수님, 마호메트님 다 모여서 장기두고 체스하고 그라고 사는 거 아닌가 싶더라고예.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져서 절에 갈 때도 놀러가듯이 갔어예. 나중에 그게 절하고 잘 맞아서 그렇다 하던데, 그 말에 확신이 있는 거는 아이고예. 암튼 3대종교를 다 거치면서 살았는데, 열심히 안 믿어서 그런지 어느 하나에 확 쏠리지는 않네예. 어떤 사람들은 막 눈물 나고 한다던데 한 번도 그런 적 없고예. 이제는 다 믿고 산다고 말하는데예. 사실, 제가 성인 ADHD증세가 좀 있습니더. 이것도 확실한 거는 아이고예. 암튼, 그래도 죽을 준비는 해야되겠다 했는데, 기사님하고 이야기하다 보니 그것도 부질없는 짓이다 싶네예. 내가 여기 없는데 집이 더러운 것이 무슨 상관이고 냉장고정리가 엉망인 것이 무슨 문제겠습니꺼. 그것도 욕심 같은 거지 싶네예. 아저씨가 오늘 또 깨달음 하나 주시네예. 감사합니더이. 관세음보살…아, 아멘입니더. ”
기사님은 그 뒤로 도착할 때까지 말씀이 없으셨다. 내 말에 감동했나? 아님 포기? 어쩌면 자신과 통하지 않는 神性에 잠시 조셨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