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나드 쇼가 쓴 문장이던가요. 요즘 부쩍 이 문장을 되뇌입니다. 김해 부경동물원에서 못 얻어먹어 갈비뼈가 앙상하던 사자가 있었죠. 청주동물원으로 옮겨가서 지금은 잘 먹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이쯤에서 저같은 하찮은 인간은 이 사자를 살짝 잊을 뻔 했습니다. 이 사자, 잘 먹는다고 그때 받은 학대의 기억이 사라질지 모르겠네요. 사자의 언어를 모르니 물어볼 수도 없습니다만, 정상은 아닐 거라 여겨집니다.
흔히 사자를 ‘백수의 제왕’이라며 치켜세웁니다. 글쎄요. 그들이 정말 제왕이 되고 싶어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저 동물들 사이 먹이사슬의 위쪽에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지요. 인간들 마음대로 부친 별명일 뿐이죠. 애니메이션 <라이언 킹>만해도 그렇습니다. 자기들끼리 죽이고 살리고 이간질하는 장면은 인간의 장으로 사자의 삶을 끌어와서 그렇게 보이는 거지, 실제로 사자들이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해요. 아프리카 평원에서도 배부르면 뒤도 안돌아보는 사자들이지 않습니까.
요즘 일어나는 일련의 죽음들을 보며 버나드 쇼의 문장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저 문장은 비유지만 결국 우리가 사자겠구나! 여전히 노동현장에서 무거운 쇳더미를 다루다가 깔려 죽는 노동자사자, 홍수 복구현장에서 안전도구도 없이 구조작업을 하다가 헛디뎌 죽는 해병대 사자, 어린 나이에 교사가 됐지만 교권찾을 여유없는 교육현장과 교사를 업수이 여기는 학부모들 사이에서 자신의 목숨을 포기한 선생님 사자, 사자, 사자... 이들 사자들의 죽음을 스포츠로 여기는 인간이 정말 없을 거라고 믿습니까? 저는 있다고 봅니다.
엘튼 존의 노래로 유명한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가 있습니다. 남녀사자 둘의 러브송이죠. 사실 주제가는 이곡 ‘Circle of life’입니다. ‘삶의 순화’이랄지, 윤회랄지요.
<라이언 킹>은 인간의 관점으로 사자의 세계를 보고 이야기로 만든 작품이지, 진짜 그들의 삶은 많이 왜곡돼 있습니다. 그저 보면서 인간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보게 할 뿐이죠. 약육강식의 세계 말입니다.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진짜 사자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가르쳐 줘야 할 지점입니다.
요즘 온 국민이 사랑한다는 중국 곰 판다이야기도 할까 합니다. 이제 일년후면 돌려보내야할 푸바오와 그의 쌍둥이동생들을 그렇게까지 애정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입니다. 그 사랑에 대해서는 중국인들이 감동할 정도라죠. 귀엽고 하는 짓도 예쁘니까요. 판다인 푸바오 할아버지라는 사육사들도 대단하더라고요. 너무 잘 돌보시더군요. 잠시, 씁쓸했습니다. 갈비사자에게도 저런 사육사와 환경이 주어졌다면 어땠을까 하고요. 월급받고 일하시고 국민들 사랑을 많이 받는 판다니까 뭐 따로 드릴 말씀은 없는데요. 저는 푸바오들보다 살아난 갈비사자가 더 신경이 쓰입니다. 푸바오 집사에 공짜로 지원할 때 갈비사자도 한번쯤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이야기가 엉뚱하게 튀었나요? 암튼 애정을 골고루 주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요. 동물들이 자신들의 터전에 있지 않고 인간의 곁으로 불려 왔을 때는 그만큼의 책임도 다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쁘고 귀여운 판다들 뒤편 그늘진 곳에는 또 다른 동물들의 노동과 학대가 공존하니까요. 그렇게 인간차별, 인권을 노래 부르면서 동물들에게 이러면 안되지 않겠습니까. 모르면 모를까 알면 달라집니다. 목숨 잃은 인간들, 갈비사자 같지 않습니까? 사자의 앙상한 갈비뼈가, 아까운 목숨 여의고 남은 자들의 피눈물이 잠 못 들게 하는 시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