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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현 Oct 15. 2019

실패하는 법.

누가 내 발을 걸었는가.

1. 실패

Image via @jcosens from Unsplash

 내가 기억하는 첫 실패는 거짓말이었다.

 나의 할머니는 매달 온 가족이 모여 무어라도 해야 직성이 풀렸다. '케베쓰 이번'이 아닌 '케이비이에스으 투 채널'이라고 발음했던 그녀는 매달 그 행사의 내용이 달라야 하는 것은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요구일지 모른다. 어느 날은 손주들의 재롱을 보고 싶으셨나 보다. 그 날의 그녀를 위해 나는 평범한 유치원의 레퍼토리를 준비했고, 큰 집의 큰 형은 당시 가요톱탠의 정상을 차지했던 김건모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난 형의 그것이 부러웠고, 조용히 그 테이프를 가져와 내 방의 오디오에 꽂았다. 그 순간 라디오에서 정성스럽게 녹음한 그 노래가 내 실수로 지워졌고, 난 두려웠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했으나 처참히 실패했다.


 나는 오늘도 실패를 경험했다. 매일 수를 셀 수 없는 그것들을 겪지만 모든 일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매번 싫고 어색한 것은 늘 같다. 그때마다 내 주변의 모든 공기가 달라지고, 지구의 온도가 급 하강하는 듯한 변화를 느낀다. 괜히 시선이 떨어지고 폐 속 깊은 곳 어딘가에서 따끔한 후회가 모인다. 괜한 무언가를 재료 삼아 욕을 한 무더기 던져 보기도 한다. 그렇다고 실패를 되돌려 결과를 바꿀 수는 없지만 갈증이 해소된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그 정도의 것으로도 쉽게 잊힌다.



2. 인정

Image via @aldyrkhanov from Unsplash

 2016년 가을, 난 기억에서 지울 수 없는 실패를 인정했다.

 지금에서야 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지만, 말도 안 되는 비즈니스였다. 돈 잘 벌 수 있는 외주 제작 업무를 포기하고, 세상을 조금 바꾸겠다는 치기 어린 생각으로 일을 벌였다. 그때는 그것이 세상의 유일한 대안이고, 그것을 무시하면 이곳이 무너질 것 같은 패기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걷고 있었고, 걸음을 쉬이 멈출 수도 없었다. 다행히 나는 금세 그런 우리를 발견했고, 방향을 바꾸거나 무엇을 더 보태지 않았다. 우리의 실패를 받아들였고, 그냥 그 자리에 멈췄다.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실패를 '실패'라고 하지 않는 것도 구차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인지했을 때 되도록 빨리 결정하는 것이 좋다. 해결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럴 수 없는 것인지. 내 경우는 후자였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내가 혹은 우리가 해결할 능력이 되는지 냉정하게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누군가의 힘을 빌려 할 수 있는 것은 '해결'한다고 할 수 없다. 다음에 또 똑같은 실패를 반복할 가능성이 아직 남아있는 것이고, 그때에도 또 빌려올 '힘'을 찾아야 한다. 객관적인 판단을 하고, 하루라도 빨리 인정하자.



3. 정리

 그리고 우리는 며칠 동안의 이야기를 통해 실패를 정리했다. 첫 번째로 그동안 해온 일들, 그리고 그 과정들을 하나씩 나열했다. 두 번째로 놓친 기회들 그리고 오판한 결정들까지 굳이 꺼내 들췄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실패를 한 줄로 정리했다. 


    1. 그동안 해온 일 돌아보기
    2. 그 과정 나열해보기

    3. 결정한 일들 되돌아보기


 짧은 시간 참 많은 기회를 얻었었다. 그리고 많은 오판도 했다. 한 군데 모아 놓고 보니 우리가 했던 오판에 패턴이 있었다. '이렇게 하면 저렇게 될 거야.'식의 레퍼런스 없는 가설의 향연이다. 꿀단지에서 빠져나와 곁을 보니 그 안에서 허우적댄 내가 민망하기까지 했다. 그래도 우리는 대낮의 술판을 벌이며 이렇게 포장했다.


 "싸게 배운 값진 경험이었다"


Image via @milkovi from Unsplash


 '실패했다'가 마지막은 아니다. 커피를 내려 마시고, 컵을 깨끗이 씻어 내는 것까지가 마무리다. 그래야 다음 커피를 즐길 준비가 되는 것이다. 

 오늘 내가 자빠진 자리를 털고 일어나, 스탭이 꼬인 것이 왼발인지 오른발인지 아니면 누가 밀친 것인지 한번 적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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