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an UX와 Agile UX
샘 멘데스의 영화 '1917'은 두 명의 영국군 병사가 공격 중지 명령을 제한된 시간 안에 전달해야 하는 미션의 과정을 그린 영화다. 독일군의 함정에 빠진 1,600명의 병사들을 구하기 위해 반드시 무모한 공격을 중지시켜야 한다. 함정임을 모르는 최전선의 대대 책임자는 공격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친다. 예정된 카운트 다운이 들어가고, 결국 적진을 향해 진격한다. 이 모든 것이 독일군의 계략인 것을 알고 있는 사령부의 '중지 명령'은 한 발 늦었지만 대대에 전달된다. 우여곡절 끝에 공격은 중지되지만 꽤 많은 사상자가 생겼다. 영화는 평온한 결말을 만들지만 나는 무언가 찜찜했다. 중지 명령을 전달하는 순간에도 목숨을 내걸고 적진으로 달려가는 병사들은 몇 명이나 돌아올 수 있었을까. (이미 벙커에서 나오자마자 대포에 쓰러지는 병사들도 많다.)
시가총액 120조가 넘는 바이오테크 회사 '암젠'이 성공한 이유는 '총 먼저 쏘고 대포 쏘기'를 했기 때문이라는 재밌는 연구 결과가 있다. 짐 콜린스가 정리한 성공한 기업(10X 기업)의 몇 가지 특징들 중 하나로써, 그의 저서 '위대한 기업의 선택'에서 몇몇 사례와 함께 소개했다. '암젠'은 DNA 재조합 기술에 적합한 약을 사전에 예측하기보다는, 적은 비용으로 가능한 많은 테스트를 했다. 사전에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철저한 준비를 한들 그것이 빗나간 대포가 된다면, 적진으로 너무 깊숙이 들어가 돌아올 수 없는 병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구글은 ‘최소한의 팀과 일정’으로 스스로 의사 결정하고 빠르게 증명하는 애자일 조직을 운영한다. 5명 이내의 엔지니어들로 구성된 팀이 3~4개월 안에 총알의 효과를 증명하지 못하면 팀은 해체된다. 아이디어를 실행하기 위해 추측들이 가득한 수백 장의 문서로 예산을 따내고, 수십 명이 수개월간 대포 한방을 위한 치밀한 준비를 하지는 않는다.
암젠과 구글 모두 최소한의 조직으로 작은 목표를 하나씩 시도해 보면서 하나의 최종 골(goal)을 위해 나아가는 프로세스를 실행한다. 하지만 암젠과 구글의 조직이 다른 부분이 있다. 암젠은 린(lean), 구글은 애자일(agile) 조직이다. 린은 '가설과 검증', 애자일은 '협업'이 중요한 키워드이다.
린 조직 : 가설을 바탕으로 빠르게 만들고 검증하는 '학습 루프(제작-측정-학습)'를 통해 개발과 비즈니스를 통합한다.
애자일 조직 : 조직 구성원 간의 긴밀한 이터레이션을 통해 빠르게 결정하여 개발의 목표를 하나로 통합한다.
린 UX(lean UX)는 린 조직 내에서 UX 역할에 관한 개념이다. 아이디어를 빠르게 프로토타이핑하고, 단기간에 유저의 피드백을 받아 UX를 완성시켜 나가는 과정이다. 여기서 디자이너와 기획자, 개발자 간의 긴밀한 이터레이션은 애자일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 다만 애자일은 스프린트 내의 일정 주기에 따라 이터레이션이 이루어지지만, 린은 하루에도 여러 번의 이터레이션 과정을 반복할 수도 있다.
린 UX를 짐 콜린스의 '총 먼저 쏘고 대포 쏘기'로 설명할 수 있다. 대포보다는 총이 실패했을 경우 대미지가 적고, 여러 번 쏴도 비용이 적게 든다. 또 빠르게 쏠 수 있으며, 최소한의 인원으로(혹은 한 명) 쏠 수도 있다. 이러한 이점들로 '영점 사격'을 충분히 할 수 있다. 린 UX는 영점(=목표)을 맞추는 과정 그 자체이다. 한 발을 가능한 한 빨리 쏴보고 다음 사격에 필요한 데이터를 얻어 다시 시도하는 과정의 반복이다.
'총 쏘기'를 언제까지 반복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두어 번 해보고 '실패'라고 결론짓는 것은 린 UX가 아니라고 하고 싶다. 조직이 감당할 수 있는 '영점 사격' 기간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달이 될 수도 있고, 한 분기, 1년이 될 수도 있다. 이 프로젝트에 어느 정도의 리소스를 투자할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기간 내에 가능한 다양한 시도를 해봐야 한다. '암젠'은 DNA 재조합 기술을 위해 바이러스 치료제, B형 간염 백신, 닭 성장 호르몬, 청바지 염료 등 서로 다른 다양한 분야의 약을 여러 번 실험했다.
간혹 '얼마나 치밀한 자료(레퍼런스, 데이터 등)를 바탕으로 디자인을 하는지'에 따라 UX 디자이너 혹은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역량이 평가되는 조직이 있다. 그 과정에서 대포가 빗나가기라도 한다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디자이너의 몫이다.
리뷰 과정에서 디자인, 기획에 관한 엄격한 기준의 평가를 경험하기도 한다. '정말 이렇게 갈 거예요?' 그럼 안 가냐고 되묻고 싶다. 리뷰 자리가 'Designer's Got Talent'도 아닌데 말이다. 'X' 두 개를 받으면 탈락하는 TV 프로그램의 룰처럼 다수결로 결정하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한다. 'Golden Buzzer'도 있는지 궁금하다.
린 UX를 통해 조직 구성원 전체가 협업해야 하고, 유저와 함께 co-creation 해야 한다. 가능한 모든 데이터를 바탕으로 여러 번의 시도를 거쳐야 좋은 UX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레퍼런스와 좋은 판단 능력이 있다한들, 그것이 우리 제품과 유저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 비즈니스에 맞아 들어가지 않을 경우에는 '좋은 UX'라고 할 수 없다. 해봐야 안다.
참고/인용
Lean UX vs. Agile UX – is there a differ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