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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byell Oct 28. 2024

초승달이 뜰 때까지

맑음 맛 : 17

가을볕이 두 뺨 위로 쏟아진다.


선크림을 열심히 발라도 주근깨인지 기미인지, 두 뺨의 얼룩이 옅어질 생각을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벌써 잔디에 자리를 깔고 누워 있은지 두 시간째다. 그늘이 침범해 올 때면 쫓기듯이 다시 태양 볕 아래로 자리를 옮겨가며 온몸으로 광합성을 한 터이다.

평일 오전 11시. 지나다니는 이라고는 10살쯤 되어 보이는 시츄와 그의 주인뿐인 작은 공원. 모르긴 해도 집 근처의 이 공원을 루나만큼 자주 찾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해가 난다 싶으면 강박적으로 돗자리를 챙겨 들고 나서는 루나였다.


오늘따라 하얗게 빛나는 태양 볕 온몸 가득 채운 후에야 그늘과의 술래잡기를 끝낸다.




흙내가 옅게 묻은 손을 씻고 앞치마를 둘러맸다. 뒤로 묶은 머리 위로는 익숙한 듯 모자를 썼다.


3평 남짓의 작업실. 재료이름과 숫자가 한쪽 벽을 가득 메웠고, 이어진 벽으로는 날짜와 또 다른 숫자가 즐비하다.


'맑음 맛: 17'


창 하나 없는 지하 작업실에서는 형광등 하나와 환풍구 하나만 소리 내어 제 할 일을 하는 중이다.


루나는 좋아하는 유튜버의 라이브 방송을 라디오 삼아, 버터를 조각내고, 반죽을 밀어 펴고, 길이에 맞춰 재단했다. 루나의 손을 거친 에그타르트들은 일제히 오븐으로 들어갔고, 이내 곧 끓어오르며 노릇하게 익어다.




라이브가 끝나갈 때쯤 루나도 앞치마를 벗어 제자리에 걸었다. 적당히 식은 에그타르트는 뚜껑을 덮고 하나씩 표시를 더한다.


'맑음 맛'


그러고는 작업 대 위쪽 벽에 쓰인 숫자를 고쳤다.


'맑음 맛: 52'


"아우, 이제 집에 가자."


온몸을 채웠던 오전의 태양볕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녹초가 된 몸뚱어리만 남았다. 무거운 다리로 작업실 계단을 오르니 보랏빛 하늘에 뜬 초승달이 루나를 반긴다. 오늘도 수고했다. 그렇게 다독이며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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