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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byell Jul 11. 2023

매실주와 오디주

쉬어가기 - 보름에 가까워지는 달

이 이야기는 장장 1년이라는 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22년 5월 26일, 매실청을 담겠다는 패기 하나로 2kg의 초록매실을 샀다. 1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긴 시간이 될지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저 푸릇하고 솜털이 보드라운 매실에 반할 뿐이었다.


2kg는 생각보다 많은 양이었고, 예상한 것보다 더 큰 병이 필요했다. 그래서 어떻게 저떻게 절반의 매실은 계획에 없던 매실주를 담야 했다.


다가올 미래는 알지 못한 채, 그저 제철의 싱그러움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저 들뜬 마음으로  매실을 씻어다.


매실 씻을 때는 꼭지를 하나하나 떼어낸 뒤 물에 꼼꼼히 씻어 하루동안 바싹 말려두자. 껍질의 솜털이 다시금 보송해지면, 다 말랐다는 뜻이다.

매실청은 매실과 설탕이 같은 양으로 들어간다. 이때 일부분의 설탕을 올리고당으로 바꿔주면 설탕은 더 빨리 녹고, 매실에 설탕이 골고루 묻어서 쉽게 곰팡이가 피지 않는다. 계속 얘기하겠지만, 매실청은 곰팡이만 잘 피하면 99% 성공한 것과 다름없다.


곰팡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씻은 매실을 잘 말리고, 병에 담았을 때에도 설탕으로 잘 덮는다. 공기와의 차단을 막는 것이다. 렇게 주방이 설탕 범벅이 되고 나서야 매실의 절반이 병 안으로 들어갔다.


이때 위쪽에 10% 정도 공간을 두고 담아야 발효되면서 병이 터지지 않는다. 욕심내면 앞으로의 1년이 고달파질 테니, 조금 참아보자.

소독한 병에 150g의 매실과 150g의 설탕을 담는다.

이제 면보로 위를 덮어 공기가 통하게 하고, 3일 정도 기다리면 된다. 본격적인 발효 과정 동안 가스가 잘 빠지게 하기 위함이다. 이때 바로 뚜껑을 덮어버리면 정말 병이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남은 절반의 매실은 술로 만들었다. 매실주는 청보다 간단하다. 팡이의 위험도 없다. 다만 청매실이 아닌 황매실로 담가야 다는 포인트가 있다. 청매실로 담그면 너무 셔서 못 먹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매실주를 담그는 미래를 보지 못한 나에게 선택지는 없다. 대신 신맛을 잡아줄 감초 준비하자.

매실 1kg와 설탕 300g, 30도 과실주 3L 그리고 감초 한줌

매실주는 뚜껑을 바로 덮고, 앞으로 3개월 동안 열어보지 않는다.


매실청도 3일 뒤에는 면보 대신 뚜껑을 덮고 설탕이 서서히 녹아가는 과정을 관찰하며 3개월을 기다린다. 시간을 많이 필요로 하는 일이다.


같은 날, 산딸기 코블러를 하고 남은 오디도 과실주로 만들었다. 오디는 먼저 설탕과 섞어 냉장고 안에서 3일간 발효시킨다. 발효된 오디는 시큼한 냄새가 났고, 아주 진한 보랏빛이 되었다. 술이 들어갈 차례가 되었다는 뜻이다.

오디 300g, 설탕 60g, 25도 과실주 550ml

이제 오디주까지 함께 3개월을 보내면 된다. 3개월 뒤면 8월 26일.

더위가 한풀 꺾인 늦여름을 기다린다.




중간중간 매실청의 설탕이 잘 녹고 있는지 봐준다. 아래쪽에 가라앉은 설탕이 잘 녹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없어질 것이다. 매실청은 꾸준히 발효되면서 가스를 내뿜기 때문에, 중간중간 뚜껑을 열어 가스를 빼주어야 한다.

6월 8일의 매실은 속의 수분을 모두 빼앗겼는지 씨의 모양으로 쪼글쪼글해졌다. 반면 매실주 속의 매실은 아직 처음의 모습 그대로이다.



일주일 뒤인 6월 14일, 매실청 몇 개가 뿌옇게 변했다. 뚜껑을 열었더니 식초 같은 냄새가 올라왔다. 아마도 매실 안에서 곰팡이가 생긴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했다.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이 자명함에도,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퍽이나 아팠다.

계속 이야기했듯, 매실은 곰팡이에 매우 취약하다. 특히 방부제 역할을 하는 알코올이 들어가지 않는 매실청의 경우 곰팡이가 생기기 매우 쉽다. 때문에 매실을 말리고, 올리고당으로 코팅을 하고, 설탕으로 윗부분을 잘 덮어줘야 한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몇몇은 곰팡이로부터 살아남지 못했다.




약속한 3개월에서 3주가 훌쩍 지난 9월 21일. 길게만 느껴지던 시간이 언제 지났는지 모르게 가버렸다. 덕분에 녀석들도 색과 향이 충분히 들었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알맹이들을 거른다. 담글 때도 많은 양이었지만, 병에 담아놓고 보니 더 많은 양이었다.

오디주 600ml, 매실주 3.2L 그리고 매실청 1L

오디주는 거른 뒤 바로 먹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 다만 매실은 혹시 남아있을지 모를 독소 때문에 9개월을 더 기다려야 한다. 9개월 뒤인 6월 21일. 다시금 매실청을 담글 때가 오면 그제야 매실청과 매실주의 맛을 볼 수 있게 된다.


맛이 너무 궁금해 한입 맛을 봤는데, 역시 과실주의 맛은 뜨거운 알코올의 맛이다. 그 사이로 오디의 달큰함과 매실의 상큼함이 내비친다. 내년 6월 다시금 더워지는 그때가 오면 시원한 매실 에이드 한잔 만들어 먹어야겠다.




드디어 6월 21일. 매실주를 나눠준 친구들에게도 이 기쁜 소식을 전했다. 드디어 매실청과 매실주를 먹을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고.


놀랍게도 뚜껑을 열 때쯤이 되니 작년과 같이 청매실이 여기저기에서 나오고 있다. 작년 이맘때 분명 청매실이었던 것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맛있는 음료로 바뀌었다. 잘 익은 매실과 오디는 설탕이 많이 들어가지 않아 썩 좋은 맛을 낸다.

매실이 매실청과 매실주로 익어가는 1년간 많은 일이 있었다. 그 시간이 켜켜이 담긴 시원한 매실에이드 한잔. 또 한 번 무더워질 올해의 여름을 이겨낼 용기를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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