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의 역사: 인류의 투기 열풍 (9화)
비트코인과 암호화폐 버블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형태의 투기 현상을 보여준다. 2008년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익명의 인물(또는 그룹)이 발표한 비트코인은 탈중앙화된 화폐 시스템을 제안했고, 이는 역사상 가장 극적인 자산 버블 중 하나로 발전했다.
비트코인의 탄생은 아이러니하게도 2008년 금융위기와 맞물려 있다. 월가의 대형 은행들이 공적자금으로 구제되는 것을 보며, 중앙화된 금융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비트코인은 이러한 불신을 기술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였다. 중개자 없이도 신뢰할 수 있는 거래가 가능한 블록체인 기술은 혁명적이었다.
초기에 비트코인은 기술 애호가들의 실험으로 시작했다. 2010년 5월, 한 프로그래머가 피자 두 판을 10,000 비트코인에 구매한 것이 최초의 실물 거래로 기록되었다(현재 가치로 수억 달러). 2013년 첫 번째 큰 상승이 있었고, 이때 비트코인은 1,000달러를 돌파했다.
2017년, 암호화폐는 대중적인 투자 대상이 되었다. 비트코인은 2만 달러까지 치솟았고, 수많은 알트코인들이 등장했다. ICO(Initial Coin Offering) 열풍이 불었는데, 백서 한 장으로 수억 달러를 모집하는 일이 흔했다. "HODL"(Hold On for Dear Life)이라는 밈이 유행했고, 암호화폐는 새로운 금융 질서의 상징이 되었다.
2018년의 첫 번째 폭락 이후, 2020년부터 더 큰 버블이 형성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전례 없는 통화완화는 모든 자산의 가격을 끌어올렸고, 비트코인은 7만 달러까지 치솟았다. NFT와 DeFi라는 새로운 현상도 등장했다. 한 디지털 아트가 6,900만 달러에 낙찰되었고, 수많은 DeFi 프로토콜이 수십억 달러의 예치금을 끌어모았다.
그러나 2022년, 테라-루나의 붕괴를 시작으로 암호화폐 생태계는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FTX의 파산은 업계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렸다.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실험은 실패로 끝났고, 많은 DeFi 프로토콜이 해킹이나 취약점으로 무너졌다.
암호화폐 버블은 이전의 버블들과 몇 가지 중요한 차이점을 보인다. 24시간 365일 전 세계에서 거래가 이루어진다. 이는 투기의 속도와 범위를 크게 확장했다. 젊은 세대가 주도했다. 밀레니얼과 Z세대에게 암호화폐는 기존 금융시스템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었다. 밈과 인플루언서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론 머스크의 트윗 하나가 시장을 크게 움직였다. 레버리지가 극단적으로 사용되었다. 100배까지의 레버리지 거래가 가능했고, 이는 변동성을 극대화했다.
암호화폐 버블이 남긴 교훈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술적 혁신성과 투자가치는 별개다. 블록체인은 혁신적인 기술이지만, 이것이 반드시 높은 암호화폐 가격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둘째, 규제의 부재는 양날의 검이다. 규제 없는 자유는 혁신을 가능하게 했지만, 동시에 사기와 시장조작의 온상이 되었다.
셋째, 새로운 금융상품은 새로운 위험을 동반한다. DeFi의 "코드가 법이다"라는 철학은 예상치 못한 취약점 앞에서 무력했다.
2024년 현재, 비트코인 ETF의 승인과 함께 암호화폐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제도권으로의 편입이 진행되면서 극단적인 변동성은 줄어들 수 있지만, 동시에 초기의 이상주의적 비전은 희석될 수 있다.
결국 암호화폐 버블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가능성과 위험을 동시에 보여준다. 블록체인 기술은 분명 금융의 미래를 바꿀 잠재력이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우리는 튤립 버블부터 이어져 온 인간의 투기적 본성이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함을 목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