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AI 인프라의 초격차: 엔비디아의 글로벌 합종연횡

하드웨어를 넘어 생태계 인프라로: 미국을 넘어 영국, 일본, 한국까지

by 드라이트리

인공지능(AI) 시대의 경쟁은 단순히 모델이나 알고리즘을 누가 더 잘 만들느냐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컴퓨트 인프라, 즉 대규모 GPU(그래픽처리장치) 및 데이터센터 구조를 누가 얼마나 빠르고 안정적으로 구축하느냐가 ‘AI 초격차(First Mover) 전략’의 핵심이 되고 있습니다. 이 맥락에서 엔비디아는 하드웨어 공급자를 넘어 생태계 플랫폼 제공자(Platform Leader) 로서의 위상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하드웨어를 넘어 ‘국가·산업급’ 생태계로"


엔비디아는 오픈AI·오라클·인텔·AMD, 그리고 한국·영국·일본과의 전략적 결합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엔비디아는 더 이상 ‘GPU 벤더’에 머물지 않고, AI 인프라 플랫폼 설계자이자 생태계 조정자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아래 글은 엔비디아가 전개 중인 합종연횡의 핵심 축인 1) 오픈AI·오라클·인텔·AMD와의 글로벌 제휴, 2) 한국 주요 기업 및 정부와의 결합, 그리고 3) 영국·일본과의 국가 차원 협력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엔비디아와 오픈AI의 연대는 이번 판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규정합니다. 양사는 2025년 9월 대규모 파트너십을 통해 최소 10GW급 시스템을 단계적으로 배치하기로 합의했고, 엔비디아는 최대 1천억 달러 투자 의향을 표명했습니다. 이는 공급자와 수요자의 전통적 거래를 넘어서 자본·인프라·제품 로드맵을 맞물리는 동맹에 가깝습니다. 첫 1GW는 ‘베라 루빈(Vera Rubin)’ 플랫폼을 통해 2026년 하반기부터 상용 배치될 예정으로 알려졌으며, 이로써 오픈AI는 대규모 모델의 학습·서빙을 뒷받침할 안정적 연산 풀을, 엔비디아는 장기 수요의 고정과 설계·최적화 주도권을 얻게 되었습니다. 요컨대 오픈AI는 ‘앱·모델 계층’의 최전선에서, 엔비디아는 ‘컴퓨트·네트워크·시스템 계층’의 최전선에서 서로의 전략적 불확실성을 상쇄하는 구조를 만든 것입니다.


이 축은 오라클과의 협력에서 ‘클라우드 캐리어’를 통한 확장성을 획득합니다. 오라클 클라우드 인프라(OCI)는 엔비디아 GPU와 네트워크 스택을 대거 수용해 AI 워크로드 특화형 클라우드를 표방하고 있으며, 일부 초대형 AI 팩토리·슈퍼컴퓨팅 프로젝트를 함께 설계·구축하는 방식으로 대형 공공·엔터프라이즈 수요를 흡수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엔비디아는 단순 하드웨어 공급을 넘어, 데이터센터 아키텍처·네트워킹·소프트웨어 스택까지 얹는 풀스택 제공자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결과적으로 오픈AI와의 ‘수요 정합’이 오라클과의 ‘공급 확장’으로 이어지며, 칩—시스템—클라우드—서비스로 이어지는 가치사슬이 수평적으로 봉합됩니다.


한편 인텔과 AMD는 경쟁자이면서 동시에 잠재적 보완자입니다. 인텔과의 관계에서는 CPU–GPU 결합 플랫폼과 데이터센터 레퍼런스 디자인 차원의 공진화 여지가 지속 탐색되고 있습니다. AMD의 경우 오픈AI와의 대형 계약이 공개되면서, AI 가속기 공급망이 단일 벤더 독점에서 ‘다중 벤더 조합’으로 변주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엔비디아 관점에서 이는 단기적으로 경쟁심화를 뜻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자사 NVLink·Infiniband·컴파일러·프레임워크 최적화로 TCO 우위를 공고화할 동인이 됩니다. 즉, ‘하드웨어 경쟁’이 ‘플랫폼 락인’으로 전화되는 구간에서 엔비디아의 강점은 더욱 선명해집니다.


이 거대한 퍼즐의 아시아 거점 중 핵심은 대한민국입니다. 보도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한국 정부 및 삼성전자·SK하이닉스/그룹·현대자동차·네이버와 함께 수십만 대(약 26만 대 이상으로 알려짐)의 최신 GPU를 순차 공급해 국가급 AI 팩토리·컴퓨팅 클러스터를 조성합니다. 정부 부문에만 수만 대 규모가 투입되고, 민간 측에서는 삼성·SK·현대가 제조·모빌리티·로보틱스에 특화된 프로덕션형 AI 공장을, 네이버는 대규모 클라우드·서비스형 AI 인프라를 확장합니다. 한국의 장점은 반도체—자동차—IT서비스가 현장 데이터와 공정 지식을 품은 채 연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디지털 트윈, 자율주행·제조 로봇, 고도화된 생산 최적화가 한 국가 안에서 유기적으로 도는 샌드박스가 되면, 엔비디아는 단순 판매를 넘어 레퍼런스 아키텍처와 산업 애플리케이션의 교차 학습장을 얻게 됩니다. 다만 전력·냉각·부지·인력, 그리고 수출통제·데이터주권 같은 물리·제도 인프라 병목을 해소하는 속도가 성패를 가를 것입니다.


영국과의 공조는 ‘주권 AI’ 프레임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영국은 엔비디아와 함께 대규모 GPU 집적지를 확충하고, 공공 연구·제조·창업 생태계가 접근 가능한 국민급 AI 인프라로 설계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특정 사업자 종속을 피하면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학계·산업계가 공통 연산자원(공통 소프트웨어 스택과 공통 데이터 거버넌스)을 공유하게 만드는 그림입니다. 이는 유럽 내에서 영국이 AI 허브로 재도약하려는 전략과도 정확히 맞물립니다. 엔비디아는 여기서 하드웨어 공급자 + 생태계 촉진자 역할을 병행하며, ‘영국형 AI 팩토리’의 레퍼런스를 쌓습니다.


일본은 제조·로보틱스의 강국답게 산업형 AI 에이전트를 축으로 한 협력을 심화합니다. 후지쯔와의 확장 제휴는 엔비디아 GPU와 일본 측 CPU·네트워킹을 결합해 풀스택 AI 인프라를 공동 구성하는 방향입니다. 목표는 공장·헬스케어·물류 로봇 등 현장 자율성을 끌어올리는 것이며, 이는 일본 정부의 DX·주권 AI 전략과 직결됩니다. 일본이 잘하는 ‘정밀 공정·고신뢰 시스템 엔지니어링’과 엔비디아가 강한 ‘대규모 학습·실시간 추론’이 만나는 지점에서, 산업용 AI의 표준 운영 절차(SOP)가 정식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 모든 흐름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수직 통합의 재정의입니다. 과거의 수직 통합이 칩—보드—시스템—서비스의 소유를 의미했다면, 지금의 통합은 로드맵·자본·전력·입지·국가정책까지 포괄하는 운명공동체적 통합입니다. 오픈AI와의 10GW·투자 프레임, 오라클과의 클라우드 결박, 한국·영국·일본과의 국가급 설계가 바로 그 사례입니다. 둘째, TCO(총소유비용) 최적화가 곧 경쟁력입니다. 단위 GPU 성능을 넘어, 네트워크·프레임워크·컴파일러·스케줄러·전력 효율을 총합한 시스템 수준의 비용/성능 곡선을 누가 더 가파르게 낮추느냐가 승부를 가릅니다. 엔비디아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튜닝하는 방식으로 이 곡선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셋째, 레퍼런스의 정치학입니다. 한국의 제조형, 영국의 주권형, 일본의 산업에이전트형 등 국가별 참조모델이 축적될수록, 후발 주자들은 그 레퍼런스를 가져다 빠르게 복제·변형할 수 있습니다. 엔비디아는 곧 AI 인프라의 세계 표준작업지침서를 쥐게 됩니다.


물론 과제도 뚜렷합니다. 첫째, 발표된 10GW·수십만 GPU가 제때 현실화되려면 전력·냉각·부지 확보, 공급망 변동성, 규제·안보 리스크를 초과 관리해야 합니다. 둘째, 다중 벤더 지형에서 경쟁사는 가격·오픈스택·전력효율을 무기로 진입장벽을 낮추려 할 것입니다. 셋째, 데이터·안전·거버넌스 요구가 커질수록, 인프라만으로는 해법이 완성되지 않습니다. 툴체인 안전성, 보안형 추론, 평가·감사 체계까지 아우르는 ‘안전한 대규모화’가 요구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향은 명확합니다. 엔비디아의 합종연횡은 칩—시스템—클라우드—국가전략을 관통하는 초대형 설계사업의 성격을 띱니다. 오픈AI는 이 설계의 수요 정점에서, 오라클은 공급 확장의 허브에서, 인텔·AMD는 경쟁 속 상호 보완의 변수를 제공하며, 한국·영국·일본은 현장과 정책이 결합된 테스트베드로 기능합니다. 이 생태계가 작동할수록 AI의 ‘가능 영역’은 하드웨어 성능보다 빠르게 넓어지고, 산업별 운영 표준은 엔비디아의 스택을 축으로 재편될 것입니다.


이 판의 본질은 “누가 더 많은 GPU를 깔았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적은 비용과 위험으로, 더 빠르게 산업을 바꾸는가”입니다. 엔비디아의 합종연횡은 그 해답을 자본·인프라·소프트웨어·정책의 교차점에서 찾아가고 있습니다. 한국의 제조·모빌리티, 영국의 주권 인프라, 일본의 산업 에이전트에서 시작된 참조 모델들이 빠르게 성숙한다면, AI 인프라의 표준지도는 생각보다 이른 시점에 그 경계가 그려질지도 모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OpenAI와 NVIDIA, 10GW AI 인프라 구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