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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 Mar 14. 2018

발트 3국: 라트비아 리가 여행기

라트비아 리가 여행기 수필


시내 외곽, 강 건너편에 있는 'RIGA' ⓒryuhyeon

난 탈린에 살다 타르투로 이사해서 가까운 외국이 헬싱키에서 라트비아가 되었다. 탈린에서 살 땐 헬싱키를 가려면 배를 타고 가야 해서(물론 버스도 있지만 러시아를 거쳐 가는 게 함정이다) 한국에서 살 때와 느낌이 별반 다르지 않았었는데 타르투로 내려가니 새로웠다. 버스 타고 두 시간도 안가 외국이라니. 뭐 에스토니아도 나한텐 외국이었지만 아무래도 거기 직접 살면서 직장생활을 하니 외국이라는 생각보단 그냥 내가 사는 우리 동네라는 느낌이 강했다. 타르투는 관광객이 많지도 않고, 주민도 별로 없는 데다, 유럽풍의 휘황찬란한 건물이 적어 한 달도 안 돼 금방 익숙해졌다.


리가 심볼인 자유의 여신상 ⓒryuhyeon
리가 올드타운 외곽 공원에서 바라본 자유의 여신상 ⓒryuhyeon
리가 자유 여신상(자유 기념비) 전체 모습 ⓒryuhyeon

리가는 자주 갔다. 버스표가 엄청 싼 이유도 한몫했고, 빨리 내 룩스익스프레스(Lux Express) 등급을 올려서 좀 비싼 버스표는 할인받고 다녀야겠다는 계획도 있었고, 외국으로 놀러 가고 싶은데 탈린은 같은 에스토니아라서 좀 그랬었다. 게다가 여행 때마다 거진 에어발틱을 이용해서 리가가 편했다.


올드타운 내 여름시즌용 식당 테라스 ⓒryuhyeon

하지만 사실은


처음 뭣도 모르고 바보처럼 탈린 도착 비행을 선택했다가, 에어발틱이 라트비아 베이스 항공사라 탈린 출발이나 도착인 경우, 거의 모든 비행기가 리가에서 환승한다는 걸 알았을 때. 그러니까, 난 탈린과 리가 가운데 즈음에 위치한 타르투 사는데. 리가에서 내리면 공항에서 버스 타고 세 시간 반 만에 도착할 것을. 탈린 도착을 샀더니 리가에서 타르투를 지나 탈린으로 갔다가 다시 타르투로 내려와야 하는. 뭐 그런.


올드타운 ⓒryuhyeon

중간에 경유 확인 안 하고 5유로 정도 싼 거 잘 찾았다고 나 자신을 칭찬한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한없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다른 거 다 집어치우고 비행기 티켓 '결제 완료' 버튼을 누르기 단 5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티켓을 인쇄하고 경유지를 봤을 때의 그 충격이란. 이런 부류의 시련은 세상 처음이라 당황했다. 그래서 좋은 경험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좋은 경험을 배운 것치곤 타격이 컸다. 내 멍청함은 내 스스로에게 어퍼컷 쓰리 강냉이 펀치를 날리고 있었다. 이게 시작이었고 그렇게 탈린은 심적으로 너무 먼 도시가 되었다.


올드타운 입구에 있는 라이마 시계(Laima Clock) ⓒryuhyeon
올드타운 입구에 있는 라이마 시계(Laima Clock) ⓒryuhyeon

사실 난 에르미타주 미술관 때문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자주 가고 싶었다. 하지만 돈 없는 가난한 직장인은 하늘길을 자주 걸을 수 없다. 하늘은 하늘이더라. 그래서 땅으로 다닌다. 그리고 그 버스는 타르투에서 왕복 14~15시간이다. 내가 아무리 드라이브를 좋아한다 해도 그건 좀 지나친다 싶었다. 그래서 두 번 갔다. 근데 이 거리를 한 번은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나도 참 내가 대단하다 싶었다.


리가 올드타운 성 피터교회(St. Peter's Church) ⓒryuhyeon
리가 올드타운 성 피터교회(St. Peter's Church) ⓒryuhyeon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이번엔 진짜 에르미타주를 보러 유럽여행 온 동생과 함께 가려고 했다. 동생과 묶을 방, 음식, 꼭 가서 보고 싶은 작품을 위해 공부하고 있었다. 내 목적은 단 하나였다. 에르미타주 박물관. 이번엔 반드시 그대들의 작품을 만나리라. 그런데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지하철 테러가 났다는 뉴스 보도가 나왔다. 게다가 그 지하철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해 버스정류장에서 시내로 가장 빠르게 들어가는 환승 라인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뉴스를 봤고 또 봤다. 계속 봤다. 지하철은 한동안 운영을 안 할 거라는 발표가 있었다. 다른 라인으로 환승할 수 있었지만, 마음을 접었다. 동생은 나보다 더 빠르게 접었다. 내가 너무 유럽 테러에 대해 무섭게 설명했나 싶었다. 그래서 또 리가를 갔다. 그렇게 갔다. 자주 갔다. 리가로.


리가 심볼 고양이 동상 ⓒryuhyeon

리가도 동네 같았다. 외국 느낌이 크지 않았다. 같은 발트계인 데다가 왕복 7시간 이내로 다녀올 수 있는 거리라 갈 때마다 당일치기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당일치기할 때마다 올드타운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내 다리가 내 몸을 이끌 수 있는 거리 안에서만 맴돌았다. 그러다 보니 내겐 어느새 리가 올드타운이 우리 동네가 되어가고 있었다.


미술관을 좋아해서 미술관을 둘러보고 싶었는데 마땅히 끌리는 게 없었던지라 나만의 리가 올드타운 카페 투어를 했다. 갈 때마다 새로운 카페로 들어가 시간을 보냈다. 대부분은 한적했고 너무 좋았다. 리가에 예쁜 카페 정말 너무 많다.


올드타운에 있는 자메이카 커피 전문점 ⓒryuhyeon

그러다 맘 잡고 발트 2국 쁠러스 바르샤바 여행을 했다. 에스토니아는 그 이전부터 쫄랑쫄랑 많이 돌아다녔기에 발트 3국으로 계획하지 않았다. 처음 계획은 리가 - 빌니우스 - 카우나스 - 바르샤바 - 그다인스크 - 베를린이었지만 그다인스크를 끼니 이동 경로가 애매해졌다. 사수가 하도 그다인스크 얘기를 해서 아무 생각 없이 넣었기에 아무 생각 없이 뺐다. 개의치 않았다. 거기에 친한 동료가 자긴 매해 여름 가족 여행을 유르밀라로 간다고 추천해줘 가고 싶었지만 4월에? 훗. 넘어가지 않는다. 이 주변 나라에서 4월의 해변이란 모래바람에 양쪽 볼을 끊임없이 긁히는 장소가 될 뿐이다. 그리고 베를린도 포기했다. 테러 때문에 독일이나 프랑스는 가고 싶지 않았었다. 모든 건 운이겠거니 해서 가려고 했지만 내 운에 내 목숨을 맡길 순 없었다. 내 운과 난 그냥 아는 사이지 아직 친구는 아니기에. 우린 좀 더 가까워질 필요가 있다.


리가 Nativity Cathedral (성탄교회?) ⓒryuhyeon
리가 Nativity Cathedral ⓒryuhyeon

쓸데없이 서론이 너무 길었다. 그냥 리가가 심적으로 가까운 도시이며 자주 놀러 갔는 걸 얘기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게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시내외곽에서 바라본 올드타운 모습 ⓒryuhyeon

뭐 어쨌든, 여차 저차 해서 시작한 발트 2국 쁠러스 바르샤바 여행. 시작은 리가로 했다. 리가에 있는 이틀 동안 정말 알차지 못하게 돌아다녔다.


리가 올드타운 근처 공원 ⓒryuhyeon

이번엔 너무나도 익숙한 올드타운이 아니라 시내 외곽으로 발을 돌렸다. 묶고 있던 호스텔에서 자전거를 렌트했다.


리가 올드타운 근처 공원 ⓒryuhyeon

그런데 날씨가 내 계획을 몰라줬다. 몰라도 너무 몰라줬다. 역시 하늘은 하늘인 건가. 자전거를 대여해주던 젊은 청년이 내 다리 길이에 맞춰 끊임없이 안장을 내려주고 있었는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우린 잠시 멈칫했지만, 나의 괜찮다는 눈빛을 받은 청년은 내게 확실하냐고 물었고 난 그렇다고 대답했다. 사실 확신은 없었다. 청년은 쌀쌀한 데다 비도 오고 옷도 가볍게 입었으니 환불해주겠다고 했다. 굳이 돈 몇 푼 때문에 남 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자기가 다른 좋은데 많이 추천해준다고 했다. 하지만 난 그런 청년의 고마운 마음을 거절했다! 이때 눈치챘어야 했다! 이 바보! 내 발트 2국 쁠러스 바르샤바 여행이 열독 감으로 장황하게 끝날 줄이야! 난 내 눈치랑도 친구가 아닌가 보다. 귀띔을 제대로 해줬어야지 이 눈치야.


리가 올드타운 ⓒryuhyeon

타르투엔 이런 농담이 있다. 탈린은 원래 북쪽이라 춥고, 타르투는 리가의 북쪽에 위치해서 춥다고. 그냥 어딜 가나 항상 춥다는 걸 표현한 에스토니아식 농담이다. 거기에 에스토니아에서 겪은 내 경험 중 하나는 이쪽 근방 나라에선 4월의 날씨는 절대로 예측하지 말라였는데. 간과했다. 그 농담을 하도 들어 리가는 따뜻한 남쪽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졌다. 이상했다. 자주 다녀왔었는데도 리가는 어디 동남아 날씨겠거니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정말이었다. 게다가 그 이전 리가를 여행했을 때마다 매번 날씨가 좋았었다. 그래서 금방 그칠 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리가도 카우나스 북쪽이라 추운 건가 싶었다.


리가시청 ⓒryuhyeon

자전거를 타면서 주변 경관을 둘러보기에는 너무 추웠다. 안경에 흩뿌려지는 빗물에 앞도 안 보였다. 안경을 벗자니 비가 눈에 들어와 눈물이 났다. 이건 눈물이 아니고 콧물이라는 자기암시를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정말 너무 추웠다. 비는 내리다 멈추다를 반복했다. 약 올리나 싶었다.


날씨가 따뜻할 것 같아 생각 없이 챙겨간 반팔에 얇은 재킷 하나가 투명 옷이 된 것 마냥 제구실을 하지 못했다. 짜증이 확 났다. 거기에 입맛도 없는데 배가 고팠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는데 지금 안 먹으면 짜증이 화로 변할 것 같았다. 그래서 자전거를 반납했다. 그래도 한 두어 시간 정도는 둘러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리가 올드타운 ⓒryuhyeon

원래 첫날은 자전거로 천천히 강을 따라가서 리가의 발트해를 보려고 했다. 계획은 그거 딱 하나였는데 당연히 못 했다. 이대로 가다간 다음 여행지에서 아플 게 뻔했다.


자전거를 반납하러 갔는데 데스크에 다른 청년이 있었다.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쉬다가 다시 나올까 했는데 그럼 밑도 끝도 없이 쉬게 될 것 같아 로비 청년에게 전통음식점을 물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체크인 데스크엔 건장한 청년 둘이 그림이 그러져 있던 나시, 호주 국기로 만든 반바지에 쪼리 신고 껄렁하게 서 있었다. 난 아직도 그 둘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날씨에 정말 대범했던 옷차림 때문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호주 억양을 들어서 아는 사이도 아닌데 괜히 반가워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내가 그 둘을 기억하는 이유는 말이 정말 너무 많아서다. 너무 많았다.


리가 발틱 버스정류장(Riga coach station) 근처 시장 ⓒryuhyeon
리가 발틱 버스정류장(Riga coach station) 근처 시장 ⓒryuhyeon

다른 여행객들도 나처럼 근처 식당이나 갈만한 곳을 물어보려고 지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한두 명이 아니었다. 내 오른쪽엔 사업차 온 영국인 아저씨가, 내 왼쪽엔 인도에서 발트 3국 여행 온 젊은 청년 셋이 있었다. 내 금붕어 기억력으로 도대체 이걸 어떻게 지금까지 기억하냐면, 호주 청년 둘이 도대체 무슨 할 얘기가 그렇게 많았던 건지 정말 얘기가 끝도 없었기 때문이다. 진짜 끝도 없었다. 한 10분 정도 지났을 땐 이제 진짜 끝나겠지 했는데 아니었다. 말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죄다 쓸데없는 얘기였다. 그중 안 춥냐는 데스크 청년 물음에 '우린 호주 사람이잖아.'라는 말도 안 되는 얘길 해서 좀 웃겼던 것 빼곤. 아니, 호주 사람이면 더 추워해야 하는 게 아닌가? 게다가 그 둘은 뒤에 사람들이 기다리는데 눈치도 안 봤다. 옷을 얇게 입고 있어 눈치도 얇아졌나 생각했다. 호주 청년 둘과 데스크 청년, 그렇게 청년 셋은 처음 보는 사이에 죽이 잘 맞았는지 수다를 심하게 떨었다.


리가 올드타운 ⓒryuhyeon

그저 한없이 기다리던 우리 다섯은 서로를 쳐다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다 옆에 영국인 아저씨가 참다 참다 내게 물었던 것 같다. 혹시 리가에 처음 왔냐며. 난 아니라고 대답했고 아저씨는 사업차 왔는데 급하게 오는 바람에 준비를 해온 게 아무것도 없다고 내게 갈만한 곳 추천해 줄 수 있냐고 했다. 난 잘 모르지만,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대답했더니 인도 청년들도 내게 지도를 들이밀었다. 난 이전에 챙겼던 리가 관련 책자들을 건네주었다. 영국인 아저씨는 시간이 없어 올드타운 만 돌아본다며 올드타운 책자를 가져가도 되냐고 물었다. 흔쾌히 승낙했다. 그동안 그 많은 당일치기 하면서 다 챙겨놓고선 단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던. 그러니 이번에도 당연히 안 읽겠지. 고민할 필요 따위 없었다. 그래서 난 아직도 리가 역사나 올드타운에 대해 단 한 개도 모른다. 정말 눈으로만 구경했다. 뭐 어쨌든, 우린 수다를 떨었다. 인도 청년들의 마지막 목적지가 탈린이라 괜히 반가웠었다.


그러다 보니 이 발트 2국, 리가 여행에서 기억하는 건 불운의 시작, 자전거와 호주 청년 둘, 영국인 아저씨와 인도 청년들과의 수다, 추위, 목소리가 너무 예뻤던 올드타운 투어 가이드 언니밖에 없다.


리가 올드타운 ⓒryuhyeon

밖을 나오니 비가 완전히 멈춘 듯 보였다. 우린 서로 목적이 달라 헤어졌다. 난 해가 나서 카페나 레스토랑으로 가지 않았다.


샌드위치와 물을 사서 숙소 앞 10여 분 거리의 강가로 갔다. 날씨까지 따뜻했다면 금상첨화였겠지만 벤치가 금방 마른 게 어디냐며 위안 삼았다. 샌드위치를 먹으며 들고 온 시집을 폈다. 그런데 정말 너무 추웠다. 샌드위치를 절반 정도 먹으니 다시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콧물이 눈물인지 눈물이 콧물인지 알 수 없었다.


올드타운 외곽 공원 ⓒryuhyeon

남은 샌드위치를 거의 들이마시고 자리를 떴다. 그리고 전에 봐 뒀던 카페를 갔는데 날씨가 날씨인지라 자리가 없었다. 하. 짜증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그냥 숙소로 돌아와 씻고 일기 쓰고 이른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도 똑같았고 저녁에 빌니우스행 버스를 타야 해서 백화점에서 시간을 보냈다. 느낌이 이상한 게 이건 분명 아플 Feel이었다.


리가 올드타운 ⓒryuhyeon
리가 올드타운 ⓒryuhyeon

그래서 여기 첨부한 거의 모든 사진은 그때 찍은 사진이 아니다. 그다지 찍지도 않았다. 다 당일치기했을 때 찍은 사진들이다. 배경이 좀 어둡다 싶으면 그때 찍은 사진이다.


리가 올드타운 ⓒryuhyeon

어떻게 보면 본론은 여기부터다.


올드타운 기념품 가게 앞 고양이 석상 ⓒryuhyeon

리가는 아기자기하고 귀엽다. 도시가 귀엽다는 게 말이 될까 싶지만 정말 그냥 귀엽다. 내가 고양이를 좋아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리가는 고양이로 유명한 도시다. 도시 상징 중 하나가 고양이다. 고양이 인형, 조각, 그림은 어딜 가나 쉽게 볼 수 있다. 그래서 정말 귀여웠다.


리가 올드타운 ⓒryuhyeon

올드타운은 확실히 탈린보다 작은 게 느껴진다. 조금만 걸으면 아까 봤던 거기가 나오고, 거기서 조금만 걸으면 아까 봤던 또 다른 거기가 나온다. 탈린과 조금 다른 점은, 탈린 올드타운이 중세도시라면 리가는 중세보다 조금 더 지난, 중세와 근대의 어느 중간쯤 되는 도시 느낌이라는 것이다.


리가 하우스 오브 더 블랙헤드 Melngalvju nams ⓒryuhyeon
리가 하우스 오브 더 블랙헤드 Melngalvju nams ⓒryuhyeon

또 몇몇 개의 유명한 건물을 제외하곤 도시 디자인이 생각보다 굉장히 모던하게 되어있어 깔끔했다. 그리고 올드타운 안에 행사가 많아 신기했다. 매번 갈 때마다 볼거리가 있었다. 크고 작은 행사가 여행 철만 되면 열리는 듯싶었다. 그중 발트 3국을 홍보하는 부스도 있어 읽을 리가 없는 책자를 챙기곤 했었다.


리가 올드타운 ⓒryuhyeon

난 타르투에서 버스만 타고 다녔기에 항상 올드타운 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버스정류장은 올드타운에서 가까워 굳이 외곽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기도 했고, 당일치기라 해서 새벽에 갔다가 밤에 오는 게 아니라, 아침에 출발해 점심에 도착하고, 배고프면 점심 먹고, 배 안 고프면 조금 둘러보고 카페 가서 케이크, 커피랑 책 읽다가 오후 차 타고 돌아와 저녁을 항상 타르투에서 먹었기 때문에 리가에 머무르는 시간이 사실 그리 길지 않았었다. 주말에 심심하면 책 읽으러 가는 정도뿐이었다.


리가 올드타운 ⓒryuhyeon

왜 굳이 리가까지 가서 책을 읽나 싶다면, 타르투에 가보면 알 수 있다. 탈린은 춥고 사람이 너무 많아서 한가롭게 커피 마시며 책 읽을 분위기가 좀 안 난다고 해야 할까. 리가랑 탈린은 일단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그리고 타르투는 그런 분위기를 낼 수 있는 카페가 시내 한두 군데 빼곤 거의 없다. 그 시내 한두 군데도 항상 사람이 많아서 갈 때마다 매번 기다려야 하고.


그래서 자주 갔다. 바람도 쐴 겸, 책도 읽을 겸.


라트비아 국립 오페라 극장 ⓒryuhyeon

리가는 정적이다. 따사롭고 한가하고 정적이고 밝다. 그리고 이상하게 예술가의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가 젊고 색감이 예뻤다. 거리 예술가나, 거리 전시품이나, 미술관, 박물관이 많아서 드는 느낌이 아니었다. 그냥 분위기가 그랬다. 리가는 훨씬 더 밝고 분주하고, 사람 많은 에스토니아의 합살루 느낌이 났다.


합살루는 이유라도 알지만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왜 그런 느낌이 드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아마 이전 방문할 때마다 정말 좋았던 날씨가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닐까 싶었다.


리가 올드타운 ⓒryuhyeon

비록 비에 젖은 추억이 되었지만, 그전에 따뜻할 때 와봐서 어찌나 다행이었던지. 만약 갈 때마다 비가 내렸으면 그저 우중충한 도시라고 생각했을지도. 여행할 때 그 나라나 도시의 이미지는 날씨가 정말 큰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만약 여기에 유르밀라를 넣었으면 얼마나 더 우울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없는 4월의 바람 날리는 발트해변이란. 쓸쓸함이 가득 차 있을 뿐이니.


강 넘어 외곽에서 바라본 리가 올드타운 전경 ⓒryuhyeon
리가 올드타운 외곽에서 바라본 전경 ⓒryuhyeon
호스텔에서 렌트했던 자전거 ⓒryuh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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