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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디 Jul 29. 2019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

전라도 순천

한 장의 사진을 받았다.


Rail路라고, 대학생들 사이에서 기차여행이 붐을 이루던 시기였다. 동생이었다. 취업준비를 하던 동생은 답답한 머리와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대뜸 내일로를 다녀오겠다 했다. (반은 내가 등떠민 여행이기도 했다) 당시 코레일에서 여름방학, 겨울방학 시즌이 되면 학생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빈 자리에 앉아 (또는 입석으로) 일주일 정도 전국 어느 기차역이든 갈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초록색이 넘실거리고 그 사이 굵게 또아리를 튼 것 같은 강줄기가 담긴 사진을 받았을 때, 실로 감동스러웠다. 이런 공간이 있다니!

여행이라고 하면 비행기 타고 외국을 나가야 여행이지라는 겉멋만 든 생각을 하던 때 였다.

직장인이긴 했지만 국내여행은 변변찮게 다녀보지도 못했던 터였다. 그 순간 사진 속 그 장면이 한 장의 영화스틸컷처럼 머릿속에 꽉 박혔다.


'나도 언젠가는...'


그로부터 몇 년이 흘렀을까


우연히 전라도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장소는 순천!

순천에서 하는 국제정원박람회가 계기가 되었다. 새삼스레 그 때 그 사진속 공간이 생각이 났다.

'거기가 어디였더라...'


당시 연인을 졸라 일정을 꼭 넣자고 했다. 뜨거운 여름, 퇴약볕이 내리쬐는 공간.

생각보다 순천만은 꽤 크고 넓었고, 또 높았다.

산을 올라가는 일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구두를 신었는데, 이건 거의 등산수준이었다.

해가지는 모습을 보기 위해 설렁설렁 움직일 수도 없었고, 우리 외에는 거의 단단한 운동화를 차려입고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숨이차오르고 땀이 송글송글 맺힐 때쯤, "하아, 여기구나-"

생각지도못한 공간에서 앞이 탁 트인다.


일찌감치올라와 좋은 자리를 선점한 많은 이들과 함께 구석에 앉아 멍하니 이 광경을 바라본다.

"아. 여기였구나, 여기였어"


새삼또 같은 말이 흘러나온다. 그 때 그 사진 속 공간

맞아. 바로 여기였어.

석양이 지기 시작하는 순천만

드넓은 평지와 푸르른 갈대, 그리고 굽이 굽이 치는 듯한 물줄기가 어우러진 이 광경

자연이 주는 묘한 신비로움과 산을 타고 올라온 땀을 씻어주는 시원한 바람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묘한 감정이 되었다.


이 광경을 보기 위해 나를 포함한 모두가 올라왔구나.

그리고 시간은 다르지만, 동생과 내가 이 공간을 공유했구나라는 짜릿함.


내가 보고싶어 하는 광경이 어떤 모습인지 궁금했다던 그.


역시 하나를 얻기위해선 그만큼 노력을 해야한다는 아주 작지만 진실된 사실 하나를 가슴에 새기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 길을 딱 1년 쯤 전에 혼자 씩씩하게 내일로로 다녀온 동생이 무척이나 자랑스러웠다.



사진을 찍어 동생에게 전송했다.


'나도 다녀감'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도 정말 죽고 못사는 절친인 동생과는 늘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눈다. 그 이야기의 대부분은 금방 잊혀져버릴 기억도 나지 않는 소재들이지만, 공통적인 것은 늘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오늘 또 하나의 공간을 우리는 공유한다.


하나의 기억을 만드는 것이다.


지는 해를 기다리며, 그 곳에 놓여있는 엽서를 썼는데 벌써 내 것은 도착했고 그의 엽서는 아마 그가 지정한 날짜에 우리집으로 오겠지


기다림이 있는 한, 이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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