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승문보 Jun 30. 2021

삶을 포기하지 않는 삶, <가만한>(2020)

손모아&안정연감독의 <가만한> (Well-Tempered, 2020)

[출처: 네이버 영화 DB]

대다수의 사회 구성원들은 목표 지향적인 삶을 살고자 노력하고, 더 나아가 꿈을 실현함으로써 본인의 인생을 기쁨과 성취감으로 채우려고 한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태도가 삶의 불안에 대처하기 위한 무의식 혹은 본능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본능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 반드시 무언가가 되어야 하는지 등 자아 정체성에 관한 고민에 빠지게 만든다. 그러나 목표 지향적인 삶을 둘러싼 스트레스가 축적되면서 심신으로 기력이 소진된 사람들은 본인뿐만 아니라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과 거리를 두게 되는 무력감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삶이 과연 무의미하고 실패했다고 단정 지을 수 있겠는가? 되레 어떻게든 하루를 버티고, 삶이 계속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인생을 영위하려는 태도 자체가 소중하고 대단한 것일지도 모른다. 제22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국내 여성 감독과 해외 여성 감독의 첫 번째 및 두 번째 장편영화를 발견하고, 관객에게 소개하는 신설 경쟁 부문인 '발견' 섹션에 초청된 손모아와 안정연 감독의 <가만한>(2020)은 피아노를 전공한 준서(박수연)가 모교에 복귀해 우연히 만난 과거의 흔적에서 출발해 '삶을 포기하지 않은 삶'을 논하는 독립영화다.


[과거의 흔적과 준서]

준서는 공황장애를 앓게 되면서 손가락을 뜻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되었고, 다시는 피아노 건반을 건드리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준서는 피아노를 외면해 왔고, 결국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고 잠적했었다. 몇 년이 지난 후 30세가 된 준서는 본인이 도망쳐 나온 모교로 복귀해 임시 행정 조교 업무를 맡는다. 이에 준서의 엄마는 늦지 않았으니 준서가 이제라도 다시 피아노 연습을 시작하고,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지 않기를 간절히 부탁한다. 우연히 학과 행정실에서 뵌 학부 시절 지도 교수님 또한 준서가 예전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며, 제자 연주회에서 피아노곡 하나를 연주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준서는 두 사람의 바람을 뒤로한다. 준서는 그저 학교에서 피아노과 학부생들을 보조하고, 연주회를 준비하는 등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에만 매달린다. 그러던 어느 날, 준서는 편입생 수미(이화원)를 우연히 만난다. 수미는 과거의 준서처럼 미래에 대한 불안을 목표 설정과 열정적인 태도로 극복하는 인물이다. 수미에게서 과거의 흔적을 마주친 준서는 갑작스러운 트라우마 재발에 갑갑함을 호소한다.


[출처: 네이버 영화 DB]


[픽스 숏과 수영장]

그런데 <가만한>의 독특한 점은 서사가 펼쳐지는 내내 준서의 과거가 암시적으로만 드러난다는 것이다. 가끔 카메라가 준서의 굳은 손가락을 비추며 그녀의 불안이 과거와 유관하다는 사실을 넌지시 알려준다. 그렇지만 손모아 감독과 안정연 감독은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이지 않는다. 만약 플래시백, 감정을 토로하는 독백 장면 등을 삽입했다면, <가만한>은 과거의 흔적 및 트라우마를 다루는 흔하디흔한 영화이다. 그런데다가 십중팔구 관객이 준서의 현재가 아니라 과거를 좇는 데 혈안이 되었을 테다. 따라서 두 감독은 안정적인 연출을 과감히 포기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두 연출자는 픽스 숏을 집요하게 사용한다. 준서가 가만한 인물이기에 픽스 숏이 적합한 면이 없지는 않다. 허나 픽스 숏이 <가만한>의 핵심 숏으로 채택된 주된 이유는 아니다. <가만한>에서 픽스 숏은 준서가 과거의 상처를 상기한 이후, 피아노를 영원히 포기하려는 마음과 다시 붙잡으려는 마음 간의 충돌과 긴장을 극대화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여기에, 픽스 숏은 악착같이 준서의 뒷모습을 쫓아다니며 관객이 그녀의 현재 상황과 내면에 집중하고, 그녀의 감정을 유추하도록 이끈다. 무엇보다 유년 시절 피아노를 연주하는 법을 알려준 선생님과 재회한 날을 기점으로 조금씩 마음을 여는 준서의 현상(現狀)을 잔잔하지만 두드러지게 포착하려면, 픽스 숏은 필수적인 빌드업 장치였을 테다. 이와 더불어, <가만한>에서 인물의 리액션 숏이 철저지 배제되었으나 물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늪의 이미지를 교차해 삽입함으로써 어떤 관계성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본인만의 리듬에 따라 달라지는 준서의 상황을 표현한다. 영화에서 가장 먼저 삽입된 물의 이미지는 잘게 물결이 일어나는 수영장 이미지다. 첫 번째 수영장 이미지에서 준서는 호흡하기보다 그저 물 위를 힘없이 떠갈 뿐이다. 그다음에 삽입되는 이미지는 늪의 이미지로 어떤 변화도 감지할 수 없다. 첫 두 이미지를 종합해 고려하면, 과거에 일어난 사건으로 준서가 가만한 상태에 빠져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수영장 이미지에서 변화가 발생한다. 둥둥 떠다니기만 하던 준서는 조금씩 호흡하며 유영한다. 그렇게 흐르는 물의 이미지가 늪의 이미지와 대립 관계를 형성하고, 이는 준서가 삶에서 느꼈던 부담과 불안을 조금씩 떨치고 있음을 시사한다.


[출처: 네이버 영화 DB]


[준서와 연주곡]

일반적으로 영화에서 음악은 보조적인 기능만 담당한다. 예를 들어, 서사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할 때, 혹은 인물의 감정선을 돋우려고 할 때 음악이 사용되곤 한다. 그렇지마는 <가만한>에서 음악은 준서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즉 준서의 세계 그 자체로서 존재한다. 매일 아침, 준서의 엄마가 틀어놓는 도메니코 스카를라티 곡은 준서의 과거를 가리킨다. 규칙적인 리듬을 자아내는 곡이 항상 일정한 시간에 집이라는 공간을 통과하고, 자의든 타의든 피아니스트가 되기로 목표를 세웠던 준서의 과거를 환기한다. 또한, 스카를라티의 곡이 지닌 반복성은 준서의 공허한 심정을 대변한다. 이와 달리, 집 밖의 공간에서는 바흐의 음악이 준서의 주위를 맴돈다. 특히 <가만한>에서 삽입된 바흐의 곡은 ‘Well-Tempered Klavier’로, 반복되는 선율 속에 변주성이 더해지며 최적의 조화를 찾아가는 대표적인 평균율의 음악이다. 바흐의 피아노곡 영향 아래에서 준서는 행정 조교 업무를 처리하는 와중에 과거의 자신을 닮은 수미를 도와준다. 그러면서 준서는 반복되는 일상생활에서 자기만의 리듬을 조율하고, 방향성을 찾아간다. 즉, 바흐의 평균율적인 음악은 삶을 꿋꿋이 영위하는 준서의 현재를 의미한다. 후반부에는 수미가 연주하는 피아노곡이 프레임을 가득 채운다. 스카를라티와 바흐의 음악과 달리, 수미의 음악은 대단히 공격적인 선율을 갖고 있다. 졸업 연주회 무대의 뒤에서 일하고 있던 준서는 그녀의 연주에 홀린다. 이때 편집의 리듬을 느리게 가져가면서 무대로 향하는 준서의 모습을 부각한다. 여태껏 피아노를 회피했던 준서는 멀리서나마 무대 위의 피아노를 또렷이 쳐다본다. 이 미세한 변화에서 준서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출처: 네이버 영화 DB]


수미의 졸업 무대가 끝난 후 페이드아웃이 된다. 페이드인이 되었을 때, 유년 시절에 다닌 피아노 학원 앞에 선 준서가 등장한다. 전단과 우편이 꽤나 쌓여있는 것으로 보아 피아노 학원이 오랫동안 운영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준서는 오랜 기간 닫힌 학원의 문을 연다. 문을 열자 밝은 빛이 공간을 메운다. 관객이 기대하는 어떤 극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문을 여는 행위는 밝은 빛이 안기는 따뜻한 분위기와 맞물리며 인생 제2막의 문을 연 준서의 상황을 상징한다. 아울러 다른 문도 아닌 피아노 학원의 문을 열었다는 것은 준서가 음악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영화가 끝나기 직전, 준서는 숨을 길게 내쉬며 피아노 의자에 앉는다. 그리고 손가락이 조금씩 움직인다. 몇 년 만에 연주하는 준서의 멜로디를 들을 수 없지만, 가만한 상태를 깬 손가락의 움직임은 '삶을 포기하지 않는 삶'의 아름다움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손모아와 안정연 감독의 결연한 의지일 테다.


[출처: 네이버 영화 DB]


매거진의 이전글 기괴한 위로와 성장, <혼자 사는 사람들>(202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