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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링스 Dec 23. 2021

"경쟁자의 거리가, 꿈의 크기"

너의 경쟁자는 누구인가

처음 일을 했던 외국계 인턴 6개월 동안 너무 많은 경험을 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문구는 바로 "경쟁자의 거리가 꿈의 크기"라는 말이었다. 이 말은 한 달에 한 번씩 진행되던 Executive세션 중, GE Korea의 HR 헤드를 맡은 전무님로부터 나왔다. 그 분은 여성이었고, 아무리 외국계에는 여성 임원이 많았다고 해도 대단한 커리어를 쌓은 분이었다. 그 말을 들은 것은 10년 전 2011년이니까 더욱 그랬다.

너는 뭘하고 싶니? 어떤 일을 하고 싶니?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이런 많은 커리어와 미래의 질문 대신에 그 분이 우리에게 던지 질문은 '넌 니 라이벌이 누구라고 생각해?'였다. 첫 질문을 받은 친구는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다들 작게 웃었고, 대답해 볼 사람이라는 말에 어떤 친구는 취준생이라 답했고 어떤 친구는 자기 대학교 동기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전무님은 이상한 질문을 했다. '얼마나 멀리 있나요?' 그러자 다들 얼버무리며 대학교를 답하기도 했고, 어수선해졌다. 

"여러분들의 라이벌은 결국 다 서울에 있나요?" 이 말을 들었을 때부터 뭔가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나는 여러분들이 라이벌을 서울에서, 아니 한국에서 찾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다들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서울대학교에 있는 취업 준비하는 친구가 아니라, 하버드나 스탠포드에 있는 친구들은 지금 무얼할지 생각하며, 그들과 경쟁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어떤가요?"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말 그대로 마음이 웅장해졌다. 짧은 그 말 한마디에 머리를 한 대 맞는, 이 아주 클리셰같은 표현을 제대로 느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경쟁자 만큼 여러분의 꿈의 크기가 커진다고 생각해보세요." 여러분들은 외국계 회사죠. 근데 한국에 있는 이 지사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미국 본사에서는 여러분 같은 20대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요? 여러분들은 어쩌면 그들에게 이미 뒤졌을 수 있습니다. 거긴 군대도 안가고 리더십 프로그램을 통해 벌써 20대부터 매니저 역할을 하기 시작하니까요." 다들 조용해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서 결국 우리가 이기고 싶은, 또 경쟁하고 싶은, 사람이 누구인가를 어디로 잡는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시기가 빠르고 느리고는 중요하지 않다고. 

물론, 10년이 지나 이런저런 일을 하며 커리어를 쌓아 온 나는 경쟁자가 누군지 여전히 모르겠다. 미국의 친구들이 뭐하는지 알아보지도 않고 산다. 하지만, 최소한 동기들이나 혹은 경력직으로 옮긴 이 곳에서 내 주변의 비슷한 연차의 사람들을 보고 잠시라도 경쟁심을 느낄 때가 오면, 그때의 말을 기억해내려 한다. 아, 최소한 우리 팀, 옆팀, 이 사람은 내 경쟁자는 아니다. 내 꿈은 그렇게 작지 않다. 그렇게 그 짧았던 말은 아직은 살아서 희미하게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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