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경쟁자는 누구인가
처음 일을 했던 외국계 인턴 6개월 동안 너무 많은 경험을 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문구는 바로 "경쟁자의 거리가 꿈의 크기"라는 말이었다. 이 말은 한 달에 한 번씩 진행되던 Executive세션 중, GE Korea의 HR 헤드를 맡은 전무님로부터 나왔다. 그 분은 여성이었고, 아무리 외국계에는 여성 임원이 많았다고 해도 대단한 커리어를 쌓은 분이었다. 그 말을 들은 것은 10년 전 2011년이니까 더욱 그랬다.
너는 뭘하고 싶니? 어떤 일을 하고 싶니?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이런 많은 커리어와 미래의 질문 대신에 그 분이 우리에게 던지 질문은 '넌 니 라이벌이 누구라고 생각해?'였다. 첫 질문을 받은 친구는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다들 작게 웃었고, 대답해 볼 사람이라는 말에 어떤 친구는 취준생이라 답했고 어떤 친구는 자기 대학교 동기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전무님은 이상한 질문을 했다. '얼마나 멀리 있나요?' 그러자 다들 얼버무리며 대학교를 답하기도 했고, 어수선해졌다.
"여러분들의 라이벌은 결국 다 서울에 있나요?" 이 말을 들었을 때부터 뭔가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나는 여러분들이 라이벌을 서울에서, 아니 한국에서 찾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다들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서울대학교에 있는 취업 준비하는 친구가 아니라, 하버드나 스탠포드에 있는 친구들은 지금 무얼할지 생각하며, 그들과 경쟁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어떤가요?"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말 그대로 마음이 웅장해졌다. 짧은 그 말 한마디에 머리를 한 대 맞는, 이 아주 클리셰같은 표현을 제대로 느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경쟁자 만큼 여러분의 꿈의 크기가 커진다고 생각해보세요." 여러분들은 외국계 회사죠. 근데 한국에 있는 이 지사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미국 본사에서는 여러분 같은 20대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요? 여러분들은 어쩌면 그들에게 이미 뒤졌을 수 있습니다. 거긴 군대도 안가고 리더십 프로그램을 통해 벌써 20대부터 매니저 역할을 하기 시작하니까요." 다들 조용해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서 결국 우리가 이기고 싶은, 또 경쟁하고 싶은, 사람이 누구인가를 어디로 잡는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시기가 빠르고 느리고는 중요하지 않다고.
물론, 10년이 지나 이런저런 일을 하며 커리어를 쌓아 온 나는 경쟁자가 누군지 여전히 모르겠다. 미국의 친구들이 뭐하는지 알아보지도 않고 산다. 하지만, 최소한 동기들이나 혹은 경력직으로 옮긴 이 곳에서 내 주변의 비슷한 연차의 사람들을 보고 잠시라도 경쟁심을 느낄 때가 오면, 그때의 말을 기억해내려 한다. 아, 최소한 우리 팀, 옆팀, 이 사람은 내 경쟁자는 아니다. 내 꿈은 그렇게 작지 않다. 그렇게 그 짧았던 말은 아직은 살아서 희미하게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