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고스 란티모스 신작 ‘가여운 것들’을 보고
#가여운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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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고스 란티모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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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우리는 깨지기 쉬운 버블. 어떤 자극을 선택해 텅 빈 나를 에워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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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의 탄생 이야기가 역겨울지언정 생소하지 않은 이유는 어쩌면 모든 인간의 시작도 벨라와 같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자유의지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로 인해 세상에 던져진 존재다. 그 존재는 생후 몇 년간은 떨어지는 인지능력을 이유로 보호와 통제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시간을 통해 점차 말귀를 알아먹는 구성원으로 진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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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애초에 우리는 깨지기 쉬운 존재. 자극이 닿을 때마다 몸에는 반항심이 인다. 내재된 에너지는 조금씩 끓어오르다 언젠가 몸을 감싸고 있는 알을 깰 정도로 강력해진다. 그렇게 인간은 깨어난다. 또 한 번 탄생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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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탄생 이후 인간은 더 많은 자극에 노출된다. 눈에 보이는 장면, 나를 욕망하는 상대, 새로 배우는 단어, 먼저 살고 간 철학자의 한 마디. 우리는 본인의 몸을 대상으로 인체 실험을 진행한다. 경험은 자극적이다. 먹고 또 게워낸다. 끊임없이 울먹인다. 지겹도록 쏟아내는 자신을 응시하며 가끔은 공허함에 몸서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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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딱히 그렇지만은 않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성숙해져 있다. 모아온 언어와 생각은 몸에서 튕겨져 나간 것만 같아도 내 주위에 머무른다. 둥둥 떠다니며 차츰 나를 에워싼다. 몸에만 의지한다면 공허할 뿐인 삶이지만 세계를 만든 나는 의외로 무방비하지 않다. 스스로 에워싸인 이는 자극을 받아들이는 걸 넘어 선택하는 존재로 거듭난다. 세 번째 탄생이다.
주어진 알에서 나와 본인의 알을 만드는 게 삶이라면 가여워도 살아볼 만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