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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댄 Mar 10. 2024

가여운 것들, 어떤 자극을 선택해 텅 빈 나를 에워쌀까

요르고스 란티모스 신작 ‘가여운 것들’을 보고

#가여운것들

요르고스 란티모스 2024.

애초에 우리는 깨지기 쉬운 버블. 어떤 자극을 선택해 텅 빈 나를 에워쌀까.

벨라의 탄생 이야기가 역겨울지언정 생소하지 않은 이유는 어쩌면 모든 인간의 시작도 벨라와 같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자유의지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로 인해 세상에 던져진 존재다. 그 존재는 생후 몇 년간은 떨어지는 인지능력을 이유로 보호와 통제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시간을 통해 점차 말귀를 알아먹는 구성원으로 진화한다.

성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애초에 우리는 깨지기 쉬운 존재. 자극이 닿을 때마다 몸에는 반항심이 인다. 내재된 에너지는 조금씩 끓어오르다 언젠가 몸을 감싸고 있는 알을 깰 정도로 강력해진다. 그렇게 인간은 깨어난다. 또 한 번 탄생하는 순간이다.

두 번째 탄생 이후 인간은 더 많은 자극에 노출된다. 눈에 보이는 장면, 나를 욕망하는 상대, 새로 배우는 단어, 먼저 살고 간 철학자의 한 마디. 우리는 본인의 몸을 대상으로 인체 실험을 진행한다. 경험은 자극적이다. 먹고 또 게워낸다. 끊임없이 울먹인다. 지겹도록 쏟아내는 자신을 응시하며 가끔은 공허함에 몸서리친다.

그렇지만 딱히 그렇지만은 않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성숙해져 있다. 모아온 언어와 생각은 몸에서 튕겨져 나간 것만 같아도 내 주위에 머무른다. 둥둥 떠다니며 차츰 나를 에워싼다. 몸에만 의지한다면 공허할 뿐인 삶이지만 세계를 만든 나는 의외로 무방비하지 않다. 스스로 에워싸인 이는 자극을 받아들이는 걸 넘어 선택하는 존재로 거듭난다. 세 번째 탄생이다.


주어진 알에서 나와 본인의 알을 만드는 게 삶이라면 가여워도 살아볼 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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