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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ntle Latte 젠틀라떼 Mar 17. 2019

[퇴사일기 #21] 스타트업은 도피처가 아니다

막연한 환상이나 안일함은 금물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스타트업의 인기가 높아졌다. 기업의 숫자가 많아졌음은 물론이고, 성장세나 대우가 대기업 못지않은 곳들도 많다. 얼마 전 모 금융 스타트업이 임직원의 연봉을 50% 인상한다는 뉴스가 화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어떤 기업이 얼마의 투자를 유치했다'는 소식은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온다. 성공한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스타트업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세계적 기업인 구글이나 우버, 에어비앤비 같은 회사들도 처음엔 스타트업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네이버가 삼성의 사내벤처로 시작했고, 카카오도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대기업이 됐다. 다양한 스타트업이 등장해 성장하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일이다. 일부 대기업에 의해 산업이 좌지우지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오래전부터 스타트업에 관심을 가져왔다. 산업의 생태계에 대한 방향성과 더불어 스타트업에서 일하면 자유로운 문화 속에서 수평적으로 소통하며 낮은 직급도 권한을 갖고 일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던 내게 한 스타트업에 면접을 볼 기회가 생겼다. 이미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기업이었던 데다 서서히 재취업을 생각하고 있던 시기여서 기대를 안고 면접에 임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면접관의 질문에 대답하면서도 탈락을 예감할 정도였다.


내가 스타트업을 쉽게 생각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해당 기업에 대해서는 많은 공부를 하고 아이디어도 생각해서 면접에 임했지만, 정작 스타트업 그 자체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관심 있는 스타트업에 대한 질문에 이미 대기업이 된 카카오를 언급할 만큼 준비가 허술했다. '스타트업 면접쯤이야'라는 자만한 생각도 일부 있었던 게 사실이다. 면접을 마치고 나오는 순간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면접관 역시 그런 점을 체크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스타트업을 쉽게 생각하고 입사했다가 다시금 쉽게 떠나는 경우를 수없이 겪어보지 않았을까 싶다. 스타트업이 주목을 받으면서 신입이나 경력 관계없이 많은 구직자들이 스타트업의 문을 두드린다. 그 이유는 다양하다. 사업 아이템이나 모델이 꼭 도전해보고 싶은 대상이거나, 큰 조직에서 작은 부품으로 여겨지기보다 주도적으로 업무를 추진해보고 싶은 욕구가 있거나, 대기업의 과도한 업무와 군대식 문화에 지친 경우 등이 있다. 일부에서는 대기업 취업이나 이직이 잘 되지 않아 스타트업으로 눈을 돌리기도 한다.  


하지만 스타트업이 반드시 정답은 아닐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스타트업에 환상을 갖는다. 내가 그랬듯, 수평적이고 창의적인 분위기 속에서 어떤 일이든 자율적으로 리드해서 추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환상이다. 때를 잘 만나면 스톡옵션도 받고 높은 직급으로 빠르게 올라갈 수 있을 거란 현실적 기대도 한다. 물론 대기업보다 그럴 가능성이 높기는 하나 모든 스타트업이 그렇다고는 할 수 없다. 규모가 커지면서 대기업의 안 좋은 문화와 시스템을 따라가는 스타트업도 많다. 또, 대기업은 오랜 시간 시행착오를 겪으며 업무의 시스템을 갖춰왔지만, 스타트업의 경우 시스템이나 인력 구성 등의 현실로 인해 일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환경이 조성되기도 한다. 제한적인 재정 여건으로 인해 아이디어는 있어도 실제 추진하지 못하는 일이 많을 수도 있다. 


스타트업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스타트업에 몸 담은 적도 없는 내가 스타트업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건방지다. 다만, 스타트업으로의 취업이나 이동을 고려하고 있다면 보다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사람마다 목표가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다. 자신의 커리어 패스나 철학에 부합한다면 추천하겠지만, 스타트업을 현실에서 탈출하기 위한 도피처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주변 지인들 중에는 스타트업에서 자신의 역량을 맘껏 펼치며 행복하게 일하는 이상적인 모델의 사람이 있는 반면, 적은 월급에 업무량은 많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지도 못한다며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이 있다. 전자에게는 현재 속한 스타트업이 곧 신의 직장이겠지만 후자에게는 그저 당장의 월급을 위해 오고 가는 지옥일 것이다. 간혹 '스타트업이나 가볼까?'라며 쉽게 말을 꺼내는 사람들을 본다. 그럴 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스타트업은 분명 기회이지만, 그 역시 현실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신중하길 바란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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