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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ntle Latte 젠틀라떼 Apr 11. 2019

[퇴사일기 #22] 회사와도 밀당이 필요하다

구직자는 절대 을이 아니다

두 번의 경력직 이직 과정에서 10여 개 기업에 면접을 봤다. 업계나 기업 규모 모두 다양했지만 질문은 대동소이했다. 주로 이직을 원하는 계기와 세부적인 커리어, 그리고 지원 직무에 대한 아이디어 등이었다. 다만 분위기는 조금씩 달랐다. 편한 분위기에서 농담을 던져가며 질문하는 면접관이 있었던 반면, 공기가 무겁게 느껴질 만큼 딱딱한 분위기에서 취조하듯 질문하는 면접관도 있었다. 이는 기업의 인상은 물론 합격 후 입사 여부 결정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었다.


여러 차례 면접을 보다 보니 인상 깊은 질문들도 많았다. N식품회사에서는 마지막 질문이 "여기 입사하셔도 또 퇴사하실 수도 있겠네요?"였다. 순간 떠오른 생각은 '당연한 것 아닌가요? 그런 질문을 하시는 면접관님은 여기서 정년퇴임을 기대하고 계신가요?'였지만 있는 그대로 대답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잠시 고민하다 "제가 이직을 하려는 이유는 보다 발전할 수 있는 환경에서 역량을 펼침으로써 저 개인은 물론 회사도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려는 것으로, 비전이 있고 커리어에서 만족할 수 있다면 단시간에 다시 이직을 시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취지의 답변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


공기업을 포함한 일부 기업을 제외하면 이제 평생직장은 없다. 평생직장에 근무하고 있을지라도 그에 안주하면 미래는 불투명하다. 자신의 능력을 맘껏 펼치면서 인정받을 수 있는 곳에서 스스로 가치를 높여 나가는 것이 현명하다. '난 이직할 마음이 전혀 없고, 이 회사에서 평생 충성을 다 할 거야'라는 생각이 오히려 개인과 회사에게 모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물론 어렵게 뽑은 직원이 퇴사를 하면 당장의 업무 처리나 여러 절차 등으로 인해 번거로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직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를 미리 걱정하는 면접관의 질문 하나에 순간 N사에 대한 매력도가 크게 떨어졌다.


H무역회사의 면접은 압박이 상당히 심했다. 심각한 표정의 면접관 한 명이 귀찮은 듯한 태도로 서류를 넘기며 건조한 질문들 이어갔다. 툭툭 던지는 말투에서는 권위의식이 느껴졌다. 모든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했지만 매번 심드렁한 반응뿐이었다. 이렇게 마음에 안 드는 나를 왜 면접에 불렀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결과적으로 불합격이었지만, 합격을 하더라도 절대 입사하고 싶지 않은 기업이었다. 구직자와 면접자로 만난 상황이었다 해도 사람 대 사람으로서의 예의와 호의를 보이지 않았음이 아쉬웠다.


한편 S에너지회사와 I온라인 쇼핑몰의 면접은 상당히 쿨했다. 많은 질문을 받았는데 대답을 할 때마다 면접관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을 해줬다. 면접 도중에 "얼마 주면 올 거예요?"라던가 "우리가 연봉을 맞춰줄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노력은 해볼게요"라는 등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합격 여부를 떠나 면접자를 대해주는 태도 그 자체가 고마웠다.


면접을 보면 그 회사에 대해 알 수 있다. 회사의 대체적인 분위기나 나와 함께 일할 사람의 생각과 성향도 일부 파악할 수 있다. 또, 채용 진행과정에서 해당 기업의 일하는 스타일도 읽을 수 있다. 프로세스가 매우 체계적이라는 인상을 받는 기업이 있는 반면, 일부는 채용절차 내내 허둥대거나 일정 또는 자료를 무리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입사하기도 전에 해외 워크샵 참석과 워크샵 준비를 위한 임시 출근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직 계약서는 안 썼더라도 연봉까지 합의했으니 우리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약간의 갑질과 같은 느낌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지만, 구직자는 을이 아니다. 구직자가 자신에게 맞는 직장을 찾는 것처럼, 기업 역시 자신들이 원하는 구직자를 찾는 입장이다. 따라서 채용 과정에 있어 기업의 입장이나 태도에 끌려다닐 이유는 없다. 당당하게 의견을 말하고, 내 기준에 맞춰 회사를 선택해야 한다. 직급이나 연봉 등 처우에 대한 협의에서도 내 기준을 잘 지켜야 한다. '괜히 연봉을 높게 요구했다가 합격이 취소되면 어쩌지?'라는 걱정은 과하다. 합리적인 선이라면 기업도 구직자의 의견을 반영해줄 가능성이 높다. 복잡한 채용절차를 굳이 처음부터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것은 기업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만족할 수준으로 협의를 하지 못하면 오래 지나지 않아 다시 이직을 고민하게 된다. 기회가 왔을 때 확실히 붙잡아야 하고, 동시에 후회가 남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회사와도 적당한 밀당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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