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도의 기준을 만들어가는 과정
며칠 전 보유종목 가운데 한 종목을 손절했습니다. 제목과 달리 실제 눈물을 흘리진 않았지만 꽤나 마음이 쓰렸습니다. 아직 내공이 부족한 탓에 미련이 남아 매도 이후에도 주가를 검색해보곤 했습니다. 이후 3일 연속 약간의 상승세를 보인 터라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습니다. 차츰 잊어가겠지라며 위안하고 있는 중입니다.
손절한 종목은 DB하이텍입니다. 최종 손실률은 -32%, 손실액은 약 1,100만 원입니다. 시드가 크지 않은 저에게는 적지 않게 내상이 남는 결과입니다. 금리인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영향으로 대세 하락장에 접어들었지만, 시장에 참여하고 있어야 결국 승리한다는 생각에 완전히 발을 빼지 않고 있었습니다. 저평가 종목을 매수해야 하락해도 낙폭을 줄일 수 있단 생각에 선택한 종목입니다. PER 3~4배 수준의 저평가 상태이고, 사상 최대 실적이 예상되는 상황이라 기다리면 오를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꾸준히 분할매수를 하던 와중 매도로 생각을 바꾼 이유는 기업 분할 이슈로 주가가 하루 만에 15%가량 하락한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더 이상 이 기업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 들었고, 그 즉시 전량 매도했습니다. 큰 폭의 하락 이후에는 반등이 올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디까지나 불확실한 예측일 뿐이었습니다. 제 직관을 믿고 후회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후 매도 버튼을 눌렀습니다.
더 이상 이 기업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이유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피크아웃 우려입니다. 처음 매수하던 시점과 달리 올해를 정점으로 내년부터는 매출이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들이 속속 등장했습니다. 생산하는 제품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견조하지만, 이미 시장에 재고가 많이 쌓여있다는 분석들이 나왔습니다. 피크아웃 우려를 반영해도 주가 조정이 과하다는 의견도 상당했지만 성장세가 주춤할 것이 기정사실화 된 상황에서 투자를 이어갈 이유가 없었습니다.
둘째, 미래를 위한 투자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현재의 실적이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 만큼 기업은 적극적인 투자가 있어야 성장합니다. 이 기업의 경우 지금 당장은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하고 있었지만 증설이나 신사업과 같은 노력이 보이지 않아 성장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글로벌 기준 업계 순위는 중국 기업들에 밀려나고 있었고, 인수합병 등의 투자에 나선 다른 회사들과 달리 제품의 생산 효율을 높이는데 집중한다는 소식만 들려올 뿐이었습니다. 이에 투자에 적극 나서는 기업에 투자하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셋째, 주주친화적이지 않았습니다. 주주들에게 이익을 돌려주고자 하는 정책이 부족했고, 오히려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악재들만 등장했습니다. 특히 큰 폭의 주가 하락을 불러온 기업 분할 소식이 있었습니다. 아직 확정적인 발표가 나진 않았지만 정황 상 물적분할의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상황이었습니다. 과거 물적분할로 인해 주가가 장기간 하락했던 다른 기업들의 사례를 볼 때 더 큰 하락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배당 매력이 크지도 않기에 더더욱 버틸 이유가 없었습니다.
넷째, 오너가에 실망했습니다. 매수 시점에는 알지 못했던 명예회장의 범죄를 알게 됐습니다. 성범죄 전과여서 더 충격이 컸습니다. 성범죄가 기업 경영과 직접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고 지금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고는 하나, 자녀들이 회장과 부회장에 올라있는 만큼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기에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아무리 실적이 좋아도 용납하기 힘든 비리나 범죄와 연관이 있다면 투자하지 않겠다는 원칙이 있기에 매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 매도의 이유를 밝혔지만, 팔지 말아야 할 호재도 있습니다. 국책사업으로 새로운 제품 개발과 생산을 추진 중이며, 전기차와 자율주행 등의 미래산업에 꼭 필요한 기업이라는 점에서 장기적인 관점의 투자라면 수익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다만 제 입장에서는 시장 상황이나 기업의 투자 매력도 측면에서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매도는 예술'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매수보다 매도가 더 어렵습니다. 좋은 기업을 알아보고 매수하는 것도 힘든 과정이지만, 어느 시점에 매도해서 수익을 실현할지 결정하는 것은 그 이상의 난이도로 다가옵니다. 누군가는 장기투자 관점에서 매수만 하고 매도는 하지 말아야 부자가 된다고 말하지만 등락을 거듭하는 주식시장에서 무조건적인 장기투자가 답이 될 수는 없습니다. 삼성전자를 수십 년 꾸준히 매수했더니 부자가 되었다는 스토리는 삼성전자라는 종목을 선택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잦은 매매는 지양해야겠지만, 적당한 시점의 매도도 투자에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저는 그 적당한 시점이 '내가 이 기업에 투자할 이유가 사라진 순간'이라 생각하며, 그때가 언제인가를 배워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번 손절에서 제가 여전히 주린이 중의 주린이임을 다시 한번 깨달으며, 몇 가지 원칙을 되새겼습니다. "분할매수는 가격이 떨어졌다고 해서 사는 게 아니라 미리 정한 수치에 도달했을 때 사서 평단가를 의미 있게 낮추자. 매도 시에도 분할해서 리스크를 관리하자. 큰 악재가 있을 때는 50% 매도 후 상황을 지켜보자. PER, PBR과 같은 데이터도 중요하지만 기업과 오너(경영진)의 스타일도 중요하니 매수 전 더 다양하게 자료를 검색하고 분석하자." 분명 책으로 읽고 공부했던 내용인데 실행으로 옮기기란 쉽지 않습니다. 실수를 통해 배웠으니 다음 종목 투자 시에는 좋은 결과로 이어지도록 계속 리마인드 해볼 생각입니다. 아무쪼록 DB하이텍을 보유하고 계신 주주분들께는 앞으로 좋은 소식들과 주가 상승이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