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안반데기에 서서.
작년 늦가을의 일이다.
가을로 들어서자 가수 적재의 문장처럼 찬 바람이 조금씩 불어왔고, 밤하늘은 더욱 반짝였다. 우린 별을 보러 가기로 두어 달 전부터 약속을 했고, 달이 모습을 완전히 감추는 월삭의 다음날은 마침 토요일이었다. 오래 염원하던 일이었고, 나는 그 앞에서 대범하지 못했다. 일주일 전부터 하루 몇 번씩 강릉과 평창의 대기 날씨와 천문 날씨를 새로고침하며 기뻤고 슬펐다. 그리고 토요일 저녁, 어두워진 하늘 위 모습을 드러낸 별들이 준 확신을 안고 강릉 안반데기를 올랐다.
포장이 잘 된 S자 커브길이 무한히 이어졌고 가로등 하나 없었다. 달빛 없는 밤, 호수 밑바닥에서 잠수정을 타고 물 위를 향해 오르는 듯했다. 어둠 속에서 심박수가 빨라졌다. 길이 무서운 건 아니었다. 초조했다. "나 우는 거 아니야?"라고 농담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실망스러울까 걱정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먼 옛날부터 만나길 기다린 소중한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떨림이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창문을 조금 내려 고개를 내밀었고, 곧이어 깨달았다. 우리는 이미 '그 아래' 있었다.
밤의 하늘은 광활했고 별들은 흩뿌려져 있었다. 눈으로 담은 것들을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지 문을 열고 내리는 순간에도 알지 못했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을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멋진 한자어나 화려한 수사구를 쓸 줄 안다면 더 좋았을까. 그저 많았다. 정말 많았다. 땅은 없었고 하늘 뿐이었다. 발밑에 무엇이 있는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뒤로 젖혀진 목은 숙여질 줄 몰랐다. 하늘엔 알고 지낸 별자리도 있고, 찾아진 별자리도 있었지만, 알고 알지 못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 채 나는 밤에 압도되었다.
별을 좋아한 건 꽤 오래된 일이었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무렵, 엄마는 온갖 별 모양의 야광 스티커를 내 방 천장에 빼곡히 붙여줬고, 나는 매일 밤 연둣빛 은하수 아래에서 잠이 들었다. 그 시간을 소중히 여겼으며 은하수의 위대함을, 보기도 전에 알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언젠가는 진짜 은하수를 만나길 기다려왔다. 처음으로 떠난 11월의 안반데기 위로 은하수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눈대중으로 추측컨데 은하수다 싶은 물길이 보였고 그것마저 신비로워했다. 자정을 넘어서면 보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차박을 하지 않아 마냥 기다릴 수 없었다. 그래도 내심 알고 있었다. 월삭, 맑은 하늘 등 다양한 기후 조건들이 안반데기에 직조되어 있었고, 거기엔 이 모든 걸 단 한 번에 만난 나의 행운도 함께 짜여 있었다. 나는 이미 충분했다.
풍경은 바뀌지 않고 머물러 있었지만 질리지 않았다. 그래서 언제 하산해야 할지 알 수 없었고, 두 시간 정도 후 올라온 길을 다시 내려왔다. 자정이 지난 호텔 주차장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이미 다른 것이었다. 누구에게나 어디서든 쉽게 닿지 않아 귀한 것인지, 닿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기에 귀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게 소중한 ‘밤하늘들’은 모두 불완전하고도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