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주말에 1박 2일로 강원도 고성을 다녀왔다.
오랜만에 뻥 뚫린 동해가 보고 싶었고, 흰 살 생선회가 먹고 싶었고, 술을 곁들여 마시고 싶었고, 별을 보고 싶었다. 매년 찾아가는 속초 대신 그 윗동네인 고성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익숙한 여행지에 가는 건 나름의 행복이 있다. 어디서 잘지, 무엇을 먹을지, 어디를 갈지 찾아보지 않아도 된다. 이미 몇 차례 검증이 되었으니까, 내키는 대로 여행지에 가서 결정하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고성 역시 어느 정도 익숙한 동네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것 먹고, 멋있는 것 보고 '딱 내가 생각했던 대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다녀오길 참 잘했다 싶은 여행이었다.
며칠 뒤, 숙소, 식비, 주유비, 하이패스 충전 등 온갖 비용을 정산해 보니 두 사람이 이틀간 쓴 돈은 대략 60만 원이었다. 1박에 18만 원이었던 숙소, 주유비와 하이패스 비용은 제외하더라도 큰 비용이었다. 하루에 30만 원씩 쓴 꼴이었으니 하룻밤을 더 묵었다면 100만 원을 웃돌았을지도 모를 비용이었다. "그돈씨"가 절로 나왔다.
"그 돈이면 씨X OOO 산다"의 줄임말인 그돈씨. 좀 더 순화해서 "그 가격이면 조금 더 보태서 다른 거 산다"라는 뜻이다. 흔히 자동차 커뮤니티에 어떤 차를 산다는 글이 올라오면 비슷한 가격대의 상위 라인업 차를 추천해 주면서 자주 사용되며, 사회 초년생이 모닝을 사려다가 결국 벤틀리를 사게 된다는 '보태보태병'과 비슷한 맥락이다.
그돈씨가 자동차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여행에도, 특히 국내 여행 이야기를 할 때도 고물가, 바가지요금을 향한 비난과 함께 꼭 따라다니는 말이다. 그 돈이면 일본을 가겠다, 그 돈이면 동남아에서 호화 호식할 듯 식이다.
비용만 놓고 보면 주말에 잠깐 다녀온 고성 여행은 분명 '그돈씨'가 맞다. 두 사람이 2박 3일 여행 경비로 100만 원을 쓸 수 있다면 타이트하게 일정을 짜더라도 고성 대신 동남아를 선택하지 않을까.
그래도 분명 행복한 여행이었다. 6월의 첫 폭염 속에 발을 담근 바다는 온몸이 찌릿할 정도로 시원했고, 후들후들한 가격 값한다 싶었던 생선회는 눈물겹게 맛있었고, 자다가 일어나 본 일출은 렌즈로는 모두 담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물론 왜 그 돈이 나왔나 싶지만, 여행은 얼마나 싸게 다녀왔냐 보다는 무엇을 했고, 누구와 함께 갔느냐가 여행의 가치를 결정한다.
그래서 '어차피' 나간 돈보다는 '덕분에' 얻은 추억 때문에 이번 여행도 참 잘 다녀왔다 싶었다.
그래도 그돈씨, 다음에는 일본 가면 좋겠다, 라는 게 한켠의 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