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 악마화와 수시 사교육의 침묵은 누구를 위함인가

절반의 진실로 가린 수시의 불편한 진실과 담론의 권력

by 에디

안녕하세요. 에디입니다.


2025학년도 의대 입시 결과는 대한민국 사회에 또다시 익숙한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의대 신입생의 58.3%가 N수생으로 채워지고, 특정 교육 특구(강남 3구) 출신이 일부 상위 의대 정원의 30% 이상을 차지했다는 통계가 공개되자마자, 교육계와 언론의 반응은 마치 정해진 각본처럼 흘러갔습니다.


"사교육 1번지의 승리", "정시가 낳은 불균형", "N수생을 양산하는 수능". 수십 년간 반복되어 온 이 레퍼토리는 정시(수능)를 모든 교육 문제의 근원이자 공공의 적으로 규정합니다. 반면, 학교생활 중심의 수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대안이자 공교육 정상화라는 절대 선(善)의 위치에 둡니다.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의 프레임 이론(Framing Theory)에 따르면, 프레임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정신적 구조입니다. 일단 "정시=악"이라는 프레임이 견고하게 설정되면, 모든 사실은 이 프레임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만 해석됩니다. N수생 증가와 강남 쏠림은 정시를 공격하는 증거로만 활용될 뿐입니다.


하지만 이 견고해 보이는 ‘정시=악 vs 수시=선’이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은, 현상의 절반만을 비추는 선택적 정의에 불과합니다. 이 프레임이 의도적으로 침묵하고 외면하는 수시 사교육이라는 거대한 그림자를 들여다볼 때, 우리는 비로소 한국 교육이 갇힌 기만의 실체를 마주하게 됩니다.


매니페스트 신화와 레이턴트 현실


교육계가 수시를 옹호하는 명분은 명확합니다.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Robert K. Merton)의 용어를 빌리면, 수시의 명시적 기능(Manifest Function)은 공교육 정상화와 전인적 평가입니다. 시험 점수 1등만 뽑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잠재력과 과정을 평가한다는 정의로운 제도라는 신화입니다.


하지만 2025학년도 입시 데이터는 이 신화가 감추고 싶어 하는 잠재적 기능(Latent Function)을 폭로합니다. 데이터는 정시뿐만 아니라 수시 전형 또한 교육 특구 N수생들의 핵심 통로였음을 명백히 보여줍니다.


강남 3구 쏠림이 높았던 한양대는 "학종을 서류 100%"로 운영하며 교육 특구 학생들의 지원이 몰렸고, 가톨릭대와 연세대(미래) 등은 "논술전형"이 "N수생들의 주요 수시 통로"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기묘한 선택적 침묵이 발생합니다. 수능 N수반은 "사교육 열풍"이라며 강력히 비판하는 담론이, 왜 논술 전형과 서류 100% 학종을 대비하는 과정에 대해서는 침묵할까요? 고액의 논술 학원과 한 편의 소설을 쓰듯 학생부를 기획하는 수백만 원짜리 학생부 컨설팅은 사교육이 아닌가요?


수시의 잠재적 기능은 공교육 정상화가 아니라, 오히려 새롭고 더 불투명한 고액 사교육 시장의 창출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명백한 사실은 ‘수시=선’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불 보듯 뻔한 진실을 애써 외면하는 것은,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인간의 오래된 습성입니다.


인지 부조화가 낳은 정시라는 희생양


교육계의 이러한 선택적 침묵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심리적 방어기제에 가깝습니다.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어(Leon Festinger)의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이론은 이 현상을 설명하는 데 유용합니다.


인지 부조화란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인지(믿음, 태도, 행동)를 동시에 가질 때 느끼는 심리적 불편함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이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한쪽 인지를 부정하거나 왜곡합니다.


교육 관료와 현장 교사들은 "수시는 공교육을 살리는 정의로운 제도"라는 강력한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시(논술, 학종)가 정시 못지않은 사교육을 유발한다"는 현실은 이 신념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이 부조화를 해소하기 위해, 이들은 현실을 부정하거나 왜곡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즉, 수시 사교육의 존재를 애써 무시하고, 모든 문제의 원인을 정시라는 외부의 적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담론의 통제를 통한 권력 작용입니다. 푸코는 권력이 단순히 억압적인 힘이 아니라, 무엇이 정상이고 비정상인지를 정의하는 담론을 통해 작동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교육계의 주류 담론은 정시를 비정상, 병리적 현상으로 규정하고 배제시킵니다. 그리고 정시라는 희생양을 설정함으로써, 수시라는 제도가 가진 내재적 모순과 사교육 유발 문제는 은폐되고 정당화됩니다.


사교육이라는 단어는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정시를 공격하기 위해 선택적으로 사용되는 정치적 낙인에 불과합니다.


사회적 폐쇄의 도구로 전락한 수시


정시와 수시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이는 단순히 학생을 선발하는 기술의 차이가 아니라, 사회적 지위가 재생산되는 방식의 차이입니다.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자본 이론을 빌리면, 정시(수능)는 비교적 투명한 경제 자본(Economic Capital)의 경쟁입니다. 물론 불평등하지만, 규칙은 명확합니다. 누구나 문제집을 사서 풀 수 있고, 점수라는 객관적 지표로 평가받습니다.


반면, 학종으로 대표되는 수시는 문화 자본(Cultural Capital)과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총력전입니다.


문화 자본은 부모의 학력과 정보력을 바탕으로 학생부의 서사를 기획하고 관리하는 능력입니다. 어떤 활동이 의미 있어 보이는지, 어떤 책을 읽어야 깊이가 느껴지는지 아는 것—이는 고학력 부모의 문화적 소양에서 나옵니다.


사회적 자본은 어떤 활동이 입시에 유리한지, 어떤 교사에게 조언을 구해야 하는지, 어떤 대외활동이 학생부를 빛내줄지 아는 인맥과 정보력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다른 이론으로도 설명이 가능합니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가 말한 사회적 폐쇄(Social Closure)의 관점에서 보면, 기득권층은 자신들의 지위를 자녀에게 물려주기 위해 진입 장벽을 세웁니다.


이들에게는 누구나 점수를 딸 수 있는 정시보다, 자신들이 가진 문화/사회적 자본을 통해서만 해석하고 대비할 수 있는 수시(학종)가 훨씬 더 유리한 사회적 폐쇄 도구입니다.


2025학년도 입시에서 "서류 100%" 전형이 교육 특구 학생들의 표적이 되었다는 사실은, 학종이 이미 자본을 갖춘 이들에게 정복당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마치 성벽을 높이 쌓아 외부인의 침입을 막는 중세 봉건 영주의 전략과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교육계가 수시=선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정시의 경제 자본 경쟁은 비판하면서 수시의 문화/사회적 자본 경쟁은 공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이중 잣대에 불과합니다.


절반의 진실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정시 악마화 프레임은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고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에 가깝습니다. 정시를 희생양 삼아 비판의 화살을 돌리는 동안, 수시라는 제도 속에 숨겨진 더 교묘한 불평등과 사교육 시장은 무럭무럭 자라났습니다.


2025학년도 입시가 보여준 진실은 정시가 문제라는 것이 아닙니다. 의대라는 최상위 보상을 얻기 위해, 모든 전형(정시, 수시-논술, 수시-학종)에 걸쳐 이미 자본의 총력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시스템 과열이 문제의 본질입니다.

정시만 문제라면, 왜 수시에서도 같은 패턴이 나타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우리는 진짜 원인을 치료하지 못한 채 증상만 억누르는 잘못된 처방을 반복할 것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시냐 수시냐는 소모적인 이분법이 아닙니다. 정시든 수시든, 모든 전형에 기생하며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사교육 유발 요인을 공평하게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분석해야 합니다.


특정 전형을 악마화하고, 절반의 진실만을 외치는 위선적인 담론으로는 대한민국 교육의 고질병을 절대 고칠 수 없습니다. 양쪽 눈을 모두 뜨고 전체 그림을 봐야 합니다. 한쪽 눈을 감은 채로는 길을 제대로 찾을 수 없습니다.


진정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투명성의 원칙: 모든 전형(정시, 학종, 논술)이 유발하는 사교육 비용과 불평등을 동등하게 측정하고 공개해야 합니다. 수시 사교육을 더 이상 침묵으로 덮어서는 안 됩니다.


선택의 자유: 모든 학생이—현역이든 N수생이든—자신의 강점에 맞는 전형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현역 학생을 수시 트랙에 강제로 가두는 판옵티콘식 통제를 해체해야 합니다.


공정성의 재정의: 정시=불공정, 수시=공정이라는 이분법을 버리고, 롤스의 무지의 베일 원칙에 따라 모든 학생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는 시스템을 설계해야 합니다.


근본 원인의 직시: N수생 증가, 강남 쏠림의 진짜 원인은 특정 전형이 아니라, 의대 쏠림과 학벌 중심 사회구조라는 더 깊은 병입니다. 입시 제도만 고쳐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편파적인 프레임으로는 진실을 가릴 수 있어도,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는 용기 있게 전체 그림을 마주할 때입니다.


에디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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