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비는 줄었다는데, 왜 부모의 한숨은 더 깊어졌을까

가정이 버겁게 느낀 것은, 오히려 더 또렷해진 부담의 집중이었습니다.

by 에디

안녕하세요. 에디입니다.


최근 사교육비 관련 통계 발표 날, 이걸 다룬 기사의 제목은 “사교육비 5년 만에 감소”였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2025년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은 27.5조 원으로 전년보다 5.7% 줄었고, 참여율은 75.7%, 주당 참여시간은 7.1시간으로 함께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부모들이 더 오래 붙들고 본 숫자는 따로 있었습니다. 사교육에 참여한 학생만 놓고 보면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60만4천 원으로 오히려 2.0% 늘었습니다. 교육부도 체감과 통계 사이의 차이가 학교급·지역 같은 개별 편차를 전체학생 평균이 가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감소한 통계, 왜 체감은 더 무거울까


평균은 넓게 퍼진 숫자이지만, 부담은 언제나 특정 가정의 지갑 위에 떨어집니다. 그래서 전체학생 평균 45만8천 원의 감소보다, 참여학생 평균 60만4천 원의 증가가 훨씬 날카롭게 다가옵니다. 특히 고등학교 참여학생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79만3천 원으로 올랐고, 일반교과 참여학생 기준으로도 59만5천 원으로 7.9% 증가했습니다. 총액은 줄었는데도 “계속 보내는 집”은 더 많이 쓰게 된 구조라면, 부모의 체감이 가벼워지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분포를 보면 이 체감은 더 선명해집니다. 월평균 사교육비가 100만 원 이상인 학생 비중은 11.6%로 늘었고, 사교육을 받지 않는 비중도 24.3%로 커졌습니다. 서울은 100만 원 이상 지출 비중이 24.6%였습니다. 줄어든 것은 총액이지만, 현실은 ‘덜 쓰는 집’과 ‘많이 쓰는 집’이 함께 늘어나는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부모가 느끼는 말은 “조금 나아졌다”보다 “더 갈라졌다”에 가깝습니다.


배움을 위한 비용인가, 뒤처지지 않기 위한 보험인가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사람이 같은 크기의 이익보다 손실에 더 강하게 반응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른바 손실회피입니다. 부모의 사교육 판단도 종종 이 논리에 붙잡힙니다. “이 수업을 들으면 얼마나 앞설까”보다 “이걸 안 하면 혹시 밀리지 않을까”가 더 크게 작동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교육은 투자라기보다 보험료처럼 느껴집니다. 총액이 조금 줄었다는 통계가 있어도, 내 아이가 손해 볼 수 있다는 감정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레온 페스팅거의 사회비교 이론도 여기에 힘을 보탭니다. 사람은 자신의 능력과 판단을 절대값으로만 보지 않고 비슷한 타인과 비교해 해석합니다. 특히 직접 확인하기 어려운 영역일수록 비교는 더 강해집니다. 교육에서 부모가 묻는 질문이 “우리 아이에게 필요한가”에서 멈추지 않고 “비슷한 집 아이들은 다 하는가”로 넘어가는 이유입니다. 같은 50만 원도 홀로 보면 큰돈이지만, 비교의 장 안에 들어가면 ‘안 쓰면 불안한 돈’으로 바뀝니다.


어떤 집은 돈을 시간표로, 어떤 집은 불안으로 버팁니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언어를 빌리면, 교육은 경제자본이 문화자본으로 전환되는 대표적인 장입니다. 어떤 가정은 돈을 더 많은 학습경험, 정보, 언어, 자격의 형태로 바꿀 수 있고, 교육시장은 그 차이를 다시 성취의 차이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그래서 사교육비 부담은 단순한 소비 부담이 아닙니다. “우리 집이 과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아이에게 필요한 조건을 놓치고 있나”의 문제로 체감됩니다.


애넷 라로가 말한 ‘concerted cultivation’도 떠오릅니다. 중산층 부모는 아이의 재능과 기술을 키운다는 이름으로 활동과 시간, 상호작용을 촘촘하게 조직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했습니다. 한국의 사교육 부담도 꼭 돈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과목을 고르고, 시간표를 짜고, 설명회를 듣고, 비교 정보를 모으고, 아이의 감정을 달래는 과정까지 모두 부모의 노동입니다. 그래서 사교육비는 카드 명세서에 적힌 액수보다 더 크게 느껴집니다. 그 안에는 ‘관리의 피로’가 함께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교육은 왜 늘 학교의 그림자처럼 따라올까


교육학자 마크 브레이는 사교육을 ‘그림자 교육’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학교의 교육과정이 바뀌면 사교육도 함께 바뀌고, 학교가 커지면 그림자도 커진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2025년 조사에서 일반교과 사교육의 가장 큰 목적은 학교수업 보충 49.5%였고, 그다음이 선행학습 22.7%, 진학준비 16.2%였습니다. 고등학교로 갈수록 진학준비 비중은 더 커졌습니다. 사교육이 학교 바깥의 사치가 아니라, 학교와 입시가 만들어낸 불안을 따라 움직이는 구조라는 뜻입니다.


브레이는 동시에, 저성취 학생을 따라가게 돕는 사교육은 격차를 줄일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대개 의욕적인 부모와 이미 성취가 높은 아이들이 더 많이 이용하고, 그 비용이 가계에 전가되면서 불평등을 키우기 쉽다고 보았습니다. 2025년 조사에서도 월소득 800만 원 이상 가구 학생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66만2천 원, 참여율은 84.9%였지만, 300만 원 미만 가구는 19만2천 원, 52.8%였습니다. 감소의 통계가 곧 평등의 통계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총액만 낮추면 부담도 낮아질까


정부의 설명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닙니다. 학생 수와 참여율, 참여시간이 함께 줄었기 때문에 총액이 내려간 것도 사실이고, 교육부는 100만 원 이상 지출 비중 증가만으로 양극화 고착을 단정하기는 어렵다고도 밝혔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체감은 언제나 평균이 아니라 자기 자리에서 시작합니다. 우리 아이의 학교급, 우리 지역의 경쟁도, 우리 집 소득구간 안에서 느끼는 압박은 전체 평균과 다르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통계가 감소를 말해도 생활은 여전히 압박을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교육비 부담을 낮춘다는 말은 결국 학원비만 내리는 기술이 아닐 것입니다. 부모가 불안을 덜 소비해도 되는 학교를 만드는 일에 더 가깝습니다. 학교 안에서 충분한 피드백이 작동하고, 뒤처진 아이가 공교육 안에서 다시 따라갈 수 있다는 신뢰가 생기고, 지역과 소득에 따라 기회가 너무 다르게 배분되지 않아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부모는 사교육을 ‘안 하면 손해 보는 비용’이 아니라, 정말 필요할 때만 선택하는 비용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에디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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