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행복하라
1년 전, 끝없이 남과 비교하는 나에게 썼던 글을 보게 되었다.
삶의 조건이 다른데, 그 삶의 조건이 다른 남과 자신을 비교함으로써 불행을 스스로 자초하고 맙니다. 사람은 자기 몫의 삶에 감사하며 살 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욕망에는 근심이 따른다.
법정스님 <스스로 행복하라>
영국 대학원 시절, 같은 과 친구는 현재 런던의 한 스타트업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커리어를 위해 다른 전공으로 대학원에서 공부한다는 소식을 링크드인에서 보게 되었다. 내가 만들고 싶었던 커리어 단계를 그 친구는 어느새 하고 있음을 보았다. 외국에서 일하면서 자기 계발을 위해 공부하며 커리어를 확장시키는 것. 그런데 나는 지금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에 속이 상했다. 부러워하면서 동시에 내 신세를 한탄하고 있음을. 그 시절 나는 그 친구보다 학점, 영어 등 모든 면에서 월등했는데 그건 내 생각일 뿐, 나는 과거의 시간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 생각이 불쑥 마구마구 튀어나올 때 법정 스님의 책을 읽게 되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참 절묘하다. 내 마음을 꿰뚫고 계신 것처럼, 그리고 내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저 두 문장으로 말씀해 주셨다.
그렇다. 비교는 나를 불행하게 만들고 근심 덩어리로 바뀌게 한다. 내 인생을 살고 있다면, 부질없이 남의 그림자가 되지 말자 마음을 다잡았다. 철쭉과 라일락 등 전혀 다른 꽃들처럼. 비교하는 마음이 또다시 불쑥 올라오면, 삶의 조건과 환경 등 모든 것이 다르기 때문에, 비교할 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떠올려야겠다.
궁극적으로 비교할 수 없는 또 다른 요소는 자신만의 시간인 것 같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시점에서 나만의 시간을 갖고 있음을 깨닫는다.
"시간은 참된 소유자를 떠나면 죽은 시간이 되고 말아."
나만의 시간을 가질 때 그 시간은 생명을 갖게 되어 있는데, 남과 비교하며 보내는 시간은 생명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물건과 욕망은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이니까. 내가 그 친구처럼 되길 바라는 것은 자랑거리이지만 다른 한편 그것에 대해 얽매일 수 있다. 형상이 없는 이상향을 끊임없이 갈구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허상을 좇고 있는 게 아닐까. 나의 현재는 그 친구의 현재와 전혀 다른데 말이다. 얽매이지 말자 다시 되뇌어 본다.
"무슨 일이든지 흥미를 가지고 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는 일이 기쁨이 됩니다. 좋아서 하는 일은 그대로 충만된 삶입니다."
남의 그림자가 되는 것과 허상을 갈구하는 것을 떠나, 지금 내가 책을 읽고 공부하며 성장하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공부하는 모든 순간이 흥미롭고 기쁨이 되었으면 한다. 그대로 충만된 삶 속에서 즐겁게 나를 성장시키자.
그 글을 쓴 지 1년 후, 내가 왜 그렇게 남을 비교하면서 살았는지 힌트를 얻었다.
나의 기질과 성향, 현재 상태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내 마음의 불안함'이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음을 알았다. 그 불안함을 강하게 만드는 것은 생각 과잉이었다.
나를 떠올리면 새드 엔딩 시나리오, 남을 떠올리면 해피 엔딩 시나리오를 쉼 없이 줄곧 쓰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죽 쑤어 개 준다> 속담처럼 좋은 생각을 나에게 해야 하는데 남은 이래서 이렇게 잘 됐을 거야~행복할 거야 라는 식으로 생각이 전개가 되었으니... 씁쓸했다.
이제는 비교를 일으킨 궁극적 감정을 다양한 방법으로 다스리게 되었다. (지금도 진행 중)
생각만 가득, 계획만 세우지 말고 뭐든 해보기
시도하고 싶은 일을 해보고 결과에 상관없이 나를 자랑스러워하기
내가 잘하고 있는 것들보다 잘할 수 없다고 확신하는 것에 대해 사실 확인하기
남을 향한 부러움의 에너지 말고, 나를 향한 믿음의 에너지를 보내야 내가 더 잘된 다는 것 또한 지금은 안다. 나의 몫의 삶에 감사하며, 진정한 내가 될 수 있도록 나를 사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