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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오늘 Jul 13. 2022

속도를 늦춰도 괜찮아요

나를 위로하는 방법

첫 아이가 태어나고 100일 후부터 종종 산후우울증으로 인해 무기력했고 미래의 불안감으로 힘들었다. 어느 날, 이 감정들이 나에게 무언가를 알려주었다. 내가 진심으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었던 방법은 '나를 위한 시간'을 쓰는 것이었다.


그 시간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무언가 배우고 공부하는 데 쓰고 싶었다. 그래서 한 온라인 교육 플랫폼에 가입했다. 강의를 들으며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주제에 대해 생각을 확장할 수 있었다. 5분, 10분 쓰던 시간이 어느새 1시간 2시간으로 늘어났고, 새벽 1-2시에 자는 건 기본이었다. 


몰입하는 내가 좋았고, 과제를 해나가는 성취감이 좋았다. 과제를 하면 점수가 부여되는데 그 점수를 더 많이 채우기 위해 시간을 쓰는 것도 좋았다. 그런데 그 몰입하는 것이 너무 과했다. 처음에는 그 자체가 좋았는데, 조금 더 남보다 더 돋보이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옆이 보이지 않는 경주마처럼 (남편이 하던 말) 무한 속도를 내며 달리고 있었다. 미안하게도 남편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몇 개월 후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무기력함이 찾아왔다. 더 나은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던 순간은 없어진 채 손을 놓고 있었다.  동시에 마음은 참 불안했다. 뭔가를 계속해야 하는데, 이렇게 쉬고 있어도 되는 걸까. 쉬고 있으면 뭔가 비생산적인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고 내가 게을러 보였다. 번듯한 결과물이 없어서 나 자신이 초라해 보였다.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은 저만큼 멀리 나아가고 있고, 지치지 않는 자기 계발과 미래 트렌드를 줄줄이 꿰며 그 속으로 들어가고 있음이 보였다.


'왜 움직이지를 못하고 가만히 있는 거야? 너도 얼른 속도 좀 내봐! 이러다 뒤처지겠어' 하는 마음의 소리가 내 귀에 맴돌았다. 계속해서 뭔가를 따라잡고 빠르게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의 마음과 다르게 내 몸은 청개구리가 되어갔다.


그런 내 모습을 보던 남편은 "좀 쉬면 어때? 쉬어도 괜찮아"라는 말을 해주었다.

결과보다는 내가 정성껏 시간을 쓰며 하나씩 거친 과정들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라고 했다. 조바심이 나면 여기저기 발만 담글 수 있으니 조심하자고. 대단한 걸 하고 있다고 자신을 칭찬해주고, 매일 하는 걸 소중하게 여기면 좋겠다고 했다. 


결과가 안 나오면 실망스럽고 그동안 뭐 했나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럴 때 필요한 게 "그럴 수도 있지! 다른 쪽으로 해봐야겠다"고 생각해 보라고 제안했다. 내가 노력하는 과정이 지지대이며, 하루하루를 결과라고 생각하고 바라보라고 했다.  "그래! 이런 하루도, 이런 한 달도 있는 거지" 하며 쳐지지 말라고 응원해주었다.


정말 정말 고마웠다. 이렇게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내 옆에 있어서. 매번 나를 지하에서 햇볕이 잘 드는 1층으로 데려와 주는 사람이다.





잠시 그 궤도에서 내려왔다. 쉼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던 걸음을 오랫동안 멈춘 후에 깨달았다. 나한테 그 속도는 맞지 않았음을. 그 속도를 잠시 멈추고 나에게 맞는 속도로 가야 함을.


나는 다른 속도로 움직였다. 자기 계발, 성공, 미래의 앞서나감을 잠시 뒤로했다. 마음을 풍요롭게 채우고 싶었고 위로받고 싶었다. 그래서 심리학책과 마음을 위로하는 에세이를 들여다보았다. 일단 내 마음의 평화와 안정이 찾아지고, 충분한 휴식을 느낀 후에 움직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나를 인정하지 않는 나에게
#모든 마음에는 이유가 있다
#고민의 답
#무기력이 무기력해지도록
#수도자처럼 생각하기
#있는 그대로 살아도 괜찮아


이렇게 쉬어 가고 있는 나의 삶이 어떤지 궁금해할 수도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좋다. 지속적으로 바뀌는 나의 관심사에 맞춰 공부하고 책을 읽으며,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결과물이 아닌 나를 위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려고 한다. 글쓰기를 하며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쉬고 싶을 때 무리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나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며 나를 닮은 속도와 방향을 찾아가고 있다. 


빠른 속도가 잘 맞는 사람이 있고 한 템포 쉬어가는 게 잘 맞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속도는 각자가 결정하는 방향에 의해 영향을 미치는 것일 뿐.  


"남들보다 조금 빠르다고 해서 그것이 곧 인생에서의 성공을 말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빠른가보다 얼마나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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