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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에루 Jan 07. 2019

모든 것의 처음

도장 브레이커의 커리어 일지

*2017년 10월 11일에 블로그에 작성했던 글입니다.

당시 일하던 회사에서 브랜드 저널리즘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며 든 생각을 적어 보았습니다.





나에게 올해는 처음을 많이 경험하게 되는 한 해다.


특히 직업적인 측면에서 나의 첫 직장은 매달 새로운 도전을 나에게 던져주었다. 작은 회사의 장점이자 단점이라면 체계가 없고 들어오는 일을 누구든 할 수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누구던은 내가 되어, 처음 두어 달은 이커머스 리뉴얼, 다음 두어 달은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그다음은 광고 대행 경쟁 PT TF팀에 갔다가, 부서 이동을 해서 잠시 전략 기획팀에서 영업 및 입찰 전략을 세웠다. 그러다 6월부터는 처음 담당했던 브랜드의 클라이언트의 지목으로 브랜드북 제작 프로젝트의 PM이 되었다. 이 프로젝트의 구성원은 여러모로 흥미로운데, 클라이언트가 발견한 전문 출판 크리에이터와 디지털 대행사인 나, 그리고 클라이언트가 하나의 팀을 이루어 기획, 취재, 제작, 출판의 과정을 함께 해야 하는 라이프사이클을 갖게 되었다.


놀라운 것은 저 모든 일들이 내가 처음 해보는 일이라는 것이다. 저 일들에 나의 기여도는 팀원이라기보다는 리더의 역량이 요구되는 정도였고 매번 도전을 극복할 때마다 개인적인 안도감이 성취감보다 먼저 찾아왔다. 나는 뭐든 깊게 파고들어 빨리 소비하고 질리는 사람이라 (다른 말로 성질이 급하다고도 볼 수 있다) 이 회사에서 나에게 매달 새로운 업무를 주지 않았다면, 또는 광고 기획이 업무가 아니었다면 타고난 프리랜서의 본성으로 한두 달 만에 회사 생활을 접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나 같은 성격의 사람에겐 새로운 일을 끊임없이 주는 것이 회사 생활을 이어나가는데 좋은 방법이었던 것 같다. 모든 것의 처음은 설렘과 두려움을 동시에 안겨주니까. 


사실 대행사의 역할이라는 것이 제일기획, 이노션, TBWA 쯤 되는 쟁쟁한 회사가 아니고서야 ‘크리에이티브’를 기대하기보다는 핸들링이 주 업무가 된다. 나 역시 그런 역할 어디쯤 서있을 법한 상황에서 브랜드 저널리즘에 대한 호기심에 포틀랜드 출장의 환상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출판 쪽의 업무도 경험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 포틀랜드로의 인터뷰이 섭외 과정이나 현지에서 인터뷰를 진행할 때 통역을 담당한 나는 아마 이 프로젝트의 최전방에서 제작 앞단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생각된다. 출장 후 서울에 돌아와 인터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도 길고 난해하게 진행된 인터뷰의 경우 자발적으로 (즉, 나의 업무 영역이 아닌 일을 별도의 비용 지급 없이) 원고 작성을 하는 에디터의 역할도 경험하였다.


휘발성이 빠른 콘텐츠만을 다루는 디지털 대행사에서 책을 출판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매우 행운이었다. 아무리 기발한 아이디어와 창의력으로 콘텐츠를 만들어도 업로드되는 순간 잊히는 것이 디지털의 숙명이다. 그리고 이 숙명마저 극복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콘텐츠 크리에이터의 숙명이겠지만. 책 한 권을 만드는 과정을 초기 기획부터 납품까지 보는 경험은 참으로 가슴 벅찬 일이라는 것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또 만드는 과정 내내 이것이 나의 자산으로 남는다는 생각이 과정의 어려움을 극복하게 해주는 양분이 되었다.


새로이 경험해본 에디터의 일을 통해, 어렴풋이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던 나의 잠재의식이 깨어나는 듯했다. 작업하고 있는 캠페인 콘텐츠를 아카이빙하고 싶다라는 짧은 말을 이렇게 긴 글로 풀어내다니, 내 안에 수다쟁이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덧. 같은 달 30일을 마지막으로 퇴사하였습니다. 당시를 돌이켜보면 참 힘들었지만 좋은 기회가 주어졌던 환경에 그리고 주어진 업무에서 도망가지 않고 잘 해낸 내게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덧2. 커버 사진은 당일치기 제주도 촬영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피로를 날려준 보라빛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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