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교육의 신간 『땀 흘리는 글』에 글이 실렸습니다. 새로 쓴 글은 아니고 『콜센터 상담원, 주운 씨』 중의 「통장 잔고가 스트레스처럼 쌓이면 좋겠다」라는 꼭지를 재수록한 것입니다.
몇 달 전 출판사로부터 현직 교사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제자들을 걱정하며 앞으로의 사회생활에 지표가 되어 줄 글을 엮은 책에 저의 글을 싣고자 한다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좋은 취지의 기획이라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나중에서야 나처럼 사회생활 못 하는 사람의 글이 무슨 지표가 될까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요. 그리고 의미 있게도 5월 1일, 근로자의 날에 책이 나왔습니다. 저같이 평범한 이에서부터 김이나, 남궁인, 은유 작가님처럼 알려진 분들까지, 스물 네 사람의 일하는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엮은이는 서문에서 ‘이 책을 집어 든 이가 아무 쪽이나 펴도 단숨에 책장을 넘길 수 있게, 그래서 지금 삶이 고단하고 피곤한 사람도 재밌게 읽는 책이 되도록 했다’고 합니다. 퇴근 후 패잔병 같은 모습으로 집에 돌아와 웨이브, 넷플릭스, 유튜브, 인터넷 커뮤니티의 유혹을 이겨내고 책상에 앉아 책장을 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익히 아는 저에게 이 말은 몹시 감동적이었습니다. 엮은이의 배려처럼 책은 잘 읽히고 재미있습니다.
어떻게 작사가가 되었는지 들려주며 현실을 버리고 꿈만 꾸는 몽상가가 되지 말라고 뼈를 때리는 김이나 작사가의 말에 뜨끔했고, 문제를 일으키는 반 학생을 가르치다 마음에 입은 상처를 자신을 성찰하며 되돌아보는 최가진 선생님의 이야기에서는 함께 분노하고 고민했습니다. 요리사가 먹는 밥에서 시작해서 노동자의 밥상으로 확장되는 박찬일 쉐프의 이야기는 그를 요리하는 철학자처럼 느끼게 했고, 안정적이지만 성취감은 없는 주물공장에서 10년간 일하던 중 우연히 커뮤니티에 소설을 올리기 시작한 뒤 지금은 전업 작가가 되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아주 만족스럽다는 김동식 작가의 글은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 중 하나였습니다.
‘내가 나’라는 존재감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부터 선명해졌다. 나의 일부를 떼어서 글을 내놓으면, 그것들이 다시 돌아와 나를 더 분명하게 만들어갔다.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나를 찾았고, 나로 살아가고 있다. 이전부터 수입이 안정적이지 않아도, 언젠가는 즐거움이 아닌 고통으로 느껴지는 날이 올지 몰라도, 나는 지금처럼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
김동식, 「소설가 이전과 이후의 삶」, 159~160p
이 책은 일하는 자의 존엄함을 말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땀의 숭고함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 숭고함에 희생되고 짓눌린 청춘의 목소리를 담고 있습니다. 노동이 얼마나 신성한 것인지 느끼게 하면서 한편으로는 ‘노동이 신성하다는 말은 다분히 조작된 관념이며, 사회주의 쪽에서는 노동자를 투쟁의 전위로 세우기 위해, 자본주의 쪽에서는 불만을 제거하고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 그런 관념을 퍼뜨렸다고 본다’고 말합니다. 문득 일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거룩하면서도 더럽고, 꿈 같은 이상이면서도 냉혹한 현실이라고요. 책은 이러한 노동의 역설 속에서 내일도 일터로 향할 ‘나’의 이야기입니다. 책을 덮고 나서 일하는 주체로서의 '나'에 대한 생각이 시작되는 건 분명 일하는 사람이 쓴 글의 힘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