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늘 주변에 사람이 많고, 친구도 많은 타입이지만 정작 진짜 우울감이 찾아올 때는 주변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를 털어놓기가 어렵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는 오히려 깊은 속내를 드러내는 게 잘 안 된다.
대부분의 주제는 결국 내가 해결해야 하는 것들이라서, 가볍게 던질 수가 없기도 하고, 혹은 힘겹게 꺼낸 주제가 상대방에게는 가볍게 여겨져 쉽게 주제가 전환되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유리심장인 나는 상대방한테 괜히 실망하기도 하고, 입을 꾹 닫고 리스너가 된다. 그래서 오히려 가까운 사람보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나의 고민을 오히려 진지하게 들어주고 위로해줄 때가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요 며칠은 위로받을 수 있는 낯선 이를 찾아 헤맸다.
날 위로해 줄 적당한 낯선 사람 없나?
혼자서 꽁하고 있는데 이따가 잠시 얼굴을 보게 될 사람이 떠올랐다. 약속은 아니고, 내가 있는 공간에 들를 예정이었다. 공적인 관계지만 나는 그녀와 심리적인 거리가 꽤 가깝다고 생각했다.
곧 다른 곳으로 가게 되어 그녀와의 작별을 앞두고 있는 마당이라, 밥이나 먹자고 해야겠다며 전화로 "이따 점심에 밥 먹을래요?" 물어봤다. 솔직히 서로 아주 깊이 알고 있지 않은 그녀에게 나의 우울함을 살짝 위로받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아는 그녀는 따스하고 정이 많았기 때문에.
수화기 너머로 그녀가 굉장히 당황한 듯 보였다.
"어머, 저는 낯을 좀 가려서 … 다른 강사님들이 밥 먹자고 해도 저는 잘 안 먹어요."
그리고는 갑자기 다른 말을 하며 주제를 전환했다.
아, 나의 밥 한 끼 하자는 말이 부담이 될 수도 있었겠다고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동시에 나의 우울함을 도대체 누구한테 위로받으려 했던 건가, 하는 현타도 찾아왔다.
어제는 진행하고 있는 사업의 전문가 멘토링을 진행했다. 멘토로 참여해 주신 분은 사회적으로 꽤 높은 지위에 계셨었고, 큰 기업의 대표까지 일임하셨던 분이다. 나는 욕심 내서 또 위로를 받고 싶어 했다.
사업의 직접적인 해결책을 제안받는 것도 좋지만, 지금 내게 더 필요한 것은 위로였다.
멘토님께서는 대기업을 은퇴하시고 세계 여행을 떠나셨다고 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고 했다.
그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중 첫 번째 케이스를 듣다가 갑자기 전화벨이 울리며 이야기는 끝났다.
나는 다른 이야기를 하려는 멘토님께 "저 그 이야기 좀 더 듣고 싶어요."라고 했다.
멘토님의 여행 스토리가 이어졌고, 나는 간접적으로 여러 적극적이고 대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또 힘을 얻었다. 멘토님의 지긋한 연세에도 불구하고 눈에 비치는 에너지와 총기도 또 다른 종류의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멘토링이 끝난 후 사업적인 고민으로 쩔쩔매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그날 밤과 아침에 계속해서 자료를 보내 주시며 신경 써 주셨다. 그리고 한 마디로 나는 또 눈물을 글썽였다.
"대표님, 지치지 마시고요, 오늘 하루도 파이팅 하세요."
그리고 오늘은 또 다른 어른을 만났다.
요즘 주민센터에서 자원 봉사자 활동을 하고 있는데, 키가 훌쩍 크신 아빠 또래의 호탕한 분께서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알고 보니 통장님이셨다.
사업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금 상황만 간략히 말씀드렸을 뿐인데 내가 정확히 어떤 부분에서 힘든지 알고 계셨다.
"민주 씨가 지금 나름대로 많이 힘들겠네. 그래도 이거는 의심하지 말아요. 정말 잘하고 있어."
엄지 손가락을 추켜올려 주시는데, 연약한 눈물샘이 또 반응해 버린다. 눈이 빨개졌을까 봐 괜히 실눈이 되게 웃었다. 이렇게나 종종, 낯선 이들이 내 속마음을 더 잘 눈치채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