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도 행복하다면야
"혹시, 시 좋아해?"
한 달에 10일, 구청에서 동사무소에 청소 인력을 보내준다.
동사무소 각 교실의 청소는 이 분들이 담당하셨다.
나오시는 4분 중 3명의 할머니는 허리가 굽고, 머리가 희었다.
새파랗게 젊은 나는 그 분들이 밀대를 들고 박박 교실을 닦을 때면 좌불안석이 되었다.
그 중 한 분은 검은 머리에 허리가 굽지 않은, 젊은 할머니(?)였다.
나에게 시를 좋아하냐고 물으셨던 바로 그 분이다.
사실 시집을 사 보거나 시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느끼는 타입은 아니다. 나는 소설이나 수필글이 더 좋았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 "네, 좋아하죠~" 하고 대답했다.
"그럼, 시간되면 OO에 가 볼래요? 거기서 시화전을 하는데. 내가 시인이거든.
이번에 내 시를 전시하게 됐어."
시인이라는 할머니의 갑작스런 고백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 순간 기대에 가득차 나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눈빛에 이번 주말에 꼭 가보겠다고 대답해 버렸다.
그러나 나는 시간이 맞지 않아 할머니의 시화전에 결국 방문하지 못했다.
주말이 끝나고 돌아오는 월요일에 할머니가 실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괜히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출근했다. 아니나 다를까, 할머니는 시화전에 다녀왔냐며 물어보셨다.
"아뇨. 죄송해요... 시간이 안 맞아서 못 갔어요. 너무 보고 싶었는데."
"그렇구나, 괜찮아요. 내가 줄 게 있어."
쿨하게 괜찮다는 할머니가 건넨 것은 시집이었다.
할머니의 이름으로 쓰여진 작은 시집. 안에는 시가 여러 편 들어있었다.
시를 좋아한다는 내 말에 마음 담긴 선물을 주신 할머니께 죄송하고도 감사했다.
그리고 안에는 내 이름과 함께 멋진 친필 사인까지.
"와아.. 진짜 멋지세요. 대단하세요 할머니."
"대단하기는 뭘. 고마워. 난 그냥 이 시집이 나온 이후로 바라는 게 없어요. 너무 행복해."
"와아.. 정말요."
"평생을 글만 읽고, 쓰고 살았는데 이제사 시집도 내고, 전시도 했고. 할 줄 아는게 이것 밖에 없는 사람인데 ... 꿈을 이뤘으니 행복하지."
과감하게 누군가 '내 삶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을 듣는 건 오랜만이었다.
나 정도면 행복한 건가? 의문을 가지고 있던 차에 할머니께서 던진 행복에 대한 확신은 그녀를 반짝반짝 빛나 보이게 했다.
행복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내가 행복하다는 확신을 가지려면, 나는 어떤 무얼 보고 달려야 할까?
행복이 과연 지향점이 있고, 달성해야 하는 삶의 과업인가?
아니면 그저 어떤 한 순간에 스스로를 행복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을 '행복'이라 하는 걸까.
행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고, 각자가 자신만의 정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은 분명하다.
70대가 되어서야 자신만의 행복을 찾은 할머니,
빠르든, 느리든 나도 언젠가는 확실하게 나만의 행복을 찾고싶다는 바램이다.
그리고 그게 70이든, 80이든 찾기만 한다면야 성공한 인생이 아닐까.
누군가가 '행복하세요?' 물으면 "네. 너무너무 행복해요." 확신에 찬 눈으로 대답해 주고 싶다.
정답을 찾은 할머니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빛나는 시인이 되어주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