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는 미용실에 파마하러 갔다. 한 2년 만이다. 파마는 커트와 달리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서 책을 한 권 가지고 갔다. 읽고 있던 장강명 작가의 책 <먼저 온 미래_AI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동아시아>. 막상 책은 읽지 못했다. 약제 도포하고 롯드 말고 열처리에 들어가니 왜 그렇게 잠이 쏟아지는지. 아내는 밤에 잠을 안 자서 그렇다고 했다. 그 말도 맞는 말이지만 매번 할 때마다 졸린 걸 보면 파마하는 과정이 너무 편안해서 영향을 미치는지도 모르겠다.
미용하는 시간은 머리 손질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미용사를 통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기도 하다. 미용사만큼 뛰어난 상담사가 있을까. 미용사만큼 폭넓게 고객을 만나는 사람이 있을까. 어린아이부터 나이 많은 할머니까지, 학생이나 취준생이나 주부부터 전문직까지. 그들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한다. 10년 넘게 다닌 미용실 내 전용 미용사가 테이블에 얹어놓은 내 책에 호기심을 보이길래 이 책이 AI를 다룬 책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요즘 미래의 변화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나와 동년배인 미용사는 "저는 나이 들어도 이 일을 할 수 있을 거 같아요."라고 말했다. 체력이 떨어져서 지금처럼 많은 고객을 상대하지 못할 수는 있어도 미용은 AI나 로봇이 당장 대체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은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말에 수긍했다. 이미 머리를 잘라주는 기계가 발명되어 있지만 사람들은 그 기계를 이용하려고 하지 않는단다. 생각해 보니 나 같아도 사람 손이 아닌 기계에 머리를 맡기고 머리를 깎는 일은 두렵다.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쩐담. 피가 철철, 끔찍한 상상만으로도 오싹했다.
책은 어젯밤에 마저 다 읽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이 책 <먼저 온 미래>는 2016년 3월 10일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바둑 AI 알파고가 인간 바둑지존 이세돌과 대국을 벌이는 일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난공불락이라고 여겼던 인간 바둑계를 대표하는 이세돌 기사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AI 알파고에 졌다. 모두가 충격에 빠졌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지금 바둑판은 어떻게 변했는가 작가는 추적했다. 결과는 무엇일까. 여전히 바둑은 존재하지만, 초월적 실력의 인공지능이 바둑기사의 일, 경험, 가치를 온통 뒤흔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건 이 일이 비단 바둑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업계에도 다가올 미래라는 점이다. 장강명 작가가 르포르타주를 썼지만 그는 현재 소설가다. 자기가 몸담고 있는 소설이라는 분야에서도 인공지능이 침투하는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현대사회에서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사람이 차별받듯이, 수준급의 실력을 갖춘 소설 쓰는 인공지능이 시장에 등장하면 선택권은 없을 것이며, 그걸 써야만 할 것이다라고 내다보고 있다. 그만큼 이제 AI의 등장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내가 일하는 인도주의 분야에서는 AI가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궁금해진다. AI가 수혜자를 선발하고, 구호품을 전달하고, 인공혈액을 만들고, 의사처럼 공공진료를 할까. 구체적으로 뭐라고 단정할 순 없지만, 분명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의 일을 바꿔놓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인공지능이 우리 사회를 바꿔놓을지라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따로 있을 것이고, 그 속에서 인간은 새롭게 적응해 나갈 것이라고 믿고 싶다. 글은 이렇게 마쳤는데, 그럼에도 찝찝한 불안을 완전히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군대 말년 시절에 바둑 프로기사 2단이 들어왔다. 이 친구와 접바둑을 한 번 뒀다가, 프로가 하수와 바둑을 두면 실력이 준다는 말을 듣고 그 후로는 일절 부르지 않았다. 지금은 프로 9단이 되었다기에 이 책에 그 친구 코멘트라도 있나 기대하면서 유심히 봤는데 없다. 나서는 성격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