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속리산 법주사에서 만난 국보 3점

팔상전, 쌍사자 석등, 석련지

by 포데로샤

아내가 한글날 법주사에 가자고 했다. 절도 절이지만 숲 속을 걷다 오자는 뜻이다. 충북 보은 속리산에는 법주사에서 세심정까지 이어진 세조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조선 세조가 신미대사를 만나기 위해 속리산을 왕래했던 길. 황톳길과 데크길이 이어지는데, 법주사에서부터 왕복 5km 정도의 거리다. 아내의 제안이 반가운 이유는 좋은 공기 마시면서 숲 속을 걷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지만, 걷기를 마치고 내려올 때 법주사에 들려 문화유산을 한가득 보고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법주사가 보유한 국가유산만 해도 국보가 3점, 보물이 14점이다. 지방에 있는 사찰 중에서 문화유산이 가장 많다.


청주에서 차로 1시간을 달려 11시쯤 법주사 입구에 도착했다. 우리 세 가족은 법주사 일주문을 지나 세조길로 접어들었고, 상수도수원지인 소류지를 먼저 마주했다. 전날까지 비가 와서 물이 풍부했다. 그동안 아이와 함께 올 때는 호수까지만 한 바퀴 돌고 내려갔다. 세심정까지 걷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세심정에서 천왕봉 방향으로 조금 오르다 널찍한 바위에 자리를 잡았다. 아내가 아침 일찍 준비한 김밥과 챙겨 간 포도와 음료로 점심을 요기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콸콸 흐르는 물소리에 근심이 사라졌다. 30여 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그늘에서 서늘함이 느껴질 때쯤 길을 다시 내려와 법주사에 들어갔다.


법주사 경내는 국화가 가득했다. 16일부터 시작하는 '법주사 가을 국화 향연' 축제를 위해서 국화를 미리 진열해 놨다. 이 꽃밭을 어찌 그냥 지나치리오. 아내와 아이 포즈 취하게 하고 사진을 몇 컷 찍었다. 사진 찍고 나니 아이는 소원풍령을 하나 달고 싶다고 했다. 또박또박 반듯한 글씨로 소원을 써서 풍령에 걸었다. "딸랑딸랑" 바람에 풍령들이 흔들리며 경내에 퍼지는 소리가 좋았다. 이제 각자의 시간. 아이는 엄마와 함께 대웅전부터 둘러보고, 나는 경내에 있는 국보인 팔상전, 쌍사자 석등, 석련지와 대웅보전, 소조삼불좌상, 사천왕 석등, 철확, 마애여래화상, 희견보살상 등 보물을 하나씩 둘러보면서 사진으로 담기 시작했다.

좌: 법주사 대웅보전(보물 915호)과 사천왕 석등(보물 15호)


1. 팔상전 (국보 55호)


팔상전은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8개의 장면으로 그린 팔상도를 봉안한 전각이다. 다층 건물 같이 생겼지만 탑이다. 국내 유일의 목조탑으로 5층 구조이며 높이가 22.7m이다. 법주사 금강문과 대웅보전의 중간에 배치되어 있다. 사찰 창건 당시에 의신대사가 초창했다고 전하며, 신라 혜공왕 12년에 진표율사가 중창하였으나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졌던 것을 1602년부터 사명대사와 벽암대사에 의해 복원된 것으로 전하고 있다. 1968년 해체공사 시 중앙의 거대한 심주 밑에 사리장치가 발견되어 팔상전 건립 경위를 밝히는 자료가 되었다고 한다. 나는 이 탑을 처음 봤던 게 중학교 2학년 수학여행 때다. 팔상전을 옆으로 두고 금동미륵대불을 뒷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었다. 그때 같이 찍었던 친구들은 다들 잘 사나? 이 날은 이미 2만 보 가까이 걸어서 발이 아픈 상태라 여유롭게 둘러볼 상황은 아니었다. 그래서 내부는 보지 않고 외곽만 둘러보았다.


2. 쌍사자 석등 (국보 5호)


법주사 대웅보전과 팔상전 사이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석등으로, 통일신라 성덕왕 19년(720년)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사자를 조각한 석조물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이번에 갔더니 석등 위 보호각을 새로 했는지 눈에 띄었다. 두 마리 사자가 서로 가슴을 맞대고 뒷발로 아랫돌을 디디고 서서 앞발과 주둥이로 윗돌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재밌는 것은 둘 중 하나는 입을 벌리고 있다는 것이다. 암수 한쌍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건 아닐까. 또 한 가지 신기한 것은 불교에서 사자는 악을 물리치는 상징적 존재라는데, 아프리카나 인도에나 사는 사자가 그것도 1500여 년 전에 어떻게 우리나라까지 전래되었을까 하는 점이다. 그림으로 봤을까? 인도에 가서 보고 온 걸까? 구전으로 전해 듣고 만든 걸까? 우리나라 국보 중에 쌍사자 석등이 2점 있다. 하나가 법주사 쌍사자 석등이고, 나머지가 국립광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이다. 광주에 근무할 때 가서 봤어야 했는데 못 가본 게 아쉽다. 언제 기회가 닿겠지.

법주사 쌍사자 석등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 (국보)


3. 석련지 (국보 64호)


돌로 만든 작은 연못으로, 연꽃을 띄워 두었다고 한다. 8각의 받침돌 위에 버섯 모양의 구름무늬를 새긴 사잇돌을 끼워서 큼지막한 몸돌을 떠받치는 모습이다. 몸돌은 큰 돌의 내부를 깎아 만들었다고 한다. 표면에는 밑으로 작은 연꽃잎을 돌려 장식하였고, 위쪽으로는 큼직막한 연꽃잎을 두 겹으로 돌린 후 그 안에 꽃무늬를 새겨두었다. 현재는 균열이 있어 철제 꺽쇠로 연결해 두었다. 꺽쇠는 이 측면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위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있으면 색다를 거 같은데 그러지 못한다. 국가유산 설명에는 절제된 화려함 속에 우아함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자태라고 하는데 사실 내겐 '와~~~' 할 정도로 감흥이 크진 않다. 암튼 국보다.


세조길을 걷고 법주사를 둘러본 뒤 절을 나왔다. 내려가는 시간에도 사람들은 몰려서 입장하고 있었다. 법주사는 2018년 통도사(양산), 부석사(영주), 봉정사(안동), 마곡사(공주), 선암사(순천), 대흥사(해남) 등 한국의 산사 6곳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산지승원으로 등재되었다. 그래서인지 올 때마다 새 단장이 되고 화려해지는 것 같다. 자본이 많이 투입된 느낌. 사찰과 화려함이 어울리는 조화는 아닌 듯 하지만 갈 때마다 그런 느낌을 받는다. 그래도 자주 갈 거다. 집에서 적당한 거리니깐. 볼거리가 많고 휴식하기 좋으니깐. 등산도 할 수 있으니깐. 이만한 곳이 없으니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가족 여행에서 만난 원주 국보 3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