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좋은 일 하시네요 Oct 27. 2020

랜선 밥상수다 1: 용석님과의 랜선 수다



조용석님의 10문 10답 


01  이 나라는 나의 두 번째 파견지다.

02  여기서 나의 밥친구는 비어 사이공이고, 주로 메콩강 해산물 요리를 먹는다.

03  지난 주말에 나는 파견 지역에서 생일상을 먹었다.

04  같이 밥을 먹은 사람들은 현지 파트너(공무원)다. 

05  밥을 먹으며 주로 지역 사회에 융화하는 방법에 대한 생각을 했다.

06. 나는 그 생각을 하며 나는 이제 베트남 사람이구나 하고 느꼈다. 

07. 요즘 내가 제일 자주 하는 혼잣말은 “아 좋다” 이다.

08  최근에 나를 즐겁게 하는 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이고, 가장 기분이 안 좋았던 건 숙취 때문이다.

09  코로나19는 나에게 한국과의 이별이다.

10  내년 이맘때 나는 여전히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을 것이다. 



베트남이 두 번째 파견지이시라고요. 첫 번째 파견지는 어디셨나요?

2015년에 베트남에 와서 현재까지 같은 기관에서 6년째 일하고 있어요. 메콩 델타 지역의 빈롱이라는 곳에서 살고 있고요. 첫 번째 파견지는 미얀마였고, 인턴으로 1년 동안 일했었어요. 베트남에서는 간사로 일을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나며 어느새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하하). 내년엔 떠나야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인수인계서 쓰기가 귀찮아서 계속 있다보니 파견 생활만 벌써 7년 차가 되었네요(웃음).  


서면 인터뷰 답변을 통해 술을 사랑하신다는 걸 느꼈어요. 원래부터 애주가셨는지, 파견 근무를 하면서 애주가가 되신 건지 궁금해요.

세상에는 저보다 술을 사랑하시는 분들이 너무나 많아서, 저는 그분들 발끝도 못 따라간다고 생각하고 있어요(웃음). 요즘 국제개발 쪽에서 빗물로 맥주를 만드는 분들도 계시잖아요. 어떻게 빗물로 맥주로 만들 생각을 다 했을까 싶은데, 그런 분들에 비하면 저는 애주가라기보다는 한낱 소비자에 불과하지 않나…(웃음) 한국의 대학문화가 술과 가까운 부분이 있잖아요. 학생 때부터 술과 가까웠고 술로 많은 걸 배우기도 해서, 이런 저의 경험이나 배경이 베트남에 와서도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베트남의 술 문화는 어떤가요? 현지 동료분들과도 자주 술자리를 하시나요? 

직장동료와는 안 마십니다(웃음). 처음에는 기댈 사람이 없다 보니 현지 직원 분들과 마시고 싶었지만, 그분들 입장에서는 상사, 그것도 베트남어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과 술을 마셔야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기관 내부 사람보다는 일을 통해 알게 된 외부 파트너들과 자주 술을 마시는 편이에요. 베트남 같은 경우는 정부 관계자와 일을 많이 하다 보니, 주로 공무원 분들이 제 술친구죠. 


베트남 술 문화는 한국과 비슷한 면이 있어요. 사실 좋다고만 말할 수는 없는 부분인데요. 예를 들면 술을 권하면 꼭 다 마셔야 한다든지, 많이 마신 다든지요. 저는 그런 혹독한 환경에서 20대를 보내왔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답니다(하하). 


하지만 저의 전임자셨던 분은 이런 술 문화에 적응하기가 어려우셨다고 해요. 제가 일하고 있는 곳이 기독교 기관이라 더 그랬을 거예요. 그러는 와중에 제가 베트남에 오게 되면서 이 분이 겪으신 술과 관련된 어려움들이 해결이 되었고, “베트남에 알코올 천사가 나타났다~” 하며 반겨주셨죠. 저는 기독교인이 아니긴 하지만, 기관 분위기나 새로 파견된 사람으로서 여러 가지를 생각해서 처음에는 조심하려고 노력했었는데요. 어느 정도였냐면, 맥주 한 박스를 사서 옷장에 숨겨두고 매일 밤 혼자 마시곤 빈 병을 비닐봉지에 넣어 몰래 아침에 버리곤 했어요. 다행히 지금은 기관에서 저를 존중해주셔서 - 다만 건강만 걱정하실 뿐 – 몰래 술을 마시지는 않고요(웃음). 오히려 하지만 단원 분들이나 나이가 어린 분들에게 술을 권하는 분위기가 있을 때는 제가 나서서 “나를 먼저 넘고 가라”라고 말하기도 해요. 


베트남에서 가장 맛있는 술을 소개해주신다면요? 

이건 너무나 분명하게, 가장 가까이에 있는 술이죠! 


얼마 전 생일이셨다고요. 생일상이라고 하면 푸짐한 잔치 음식이 생각나는데요, 어떤 음식을 드셨는지, 생일 파티는 어떻게 하셨는지도 궁금해요.

지난 금요일에 생일파티를 했어요. 베트남은 잔치문화가 발달해서 생일, 결혼처럼 축하할 일이 있으면 집 앞에 천막을 쳐놓고 크게 잔치를 해요. 도시보다 시골로 갈수록 더 성대하게 이런 잔치를 하고요. 그리고 이럴 때에 항상 술이 빠지지 않죠. 이렇게 잔치를 크게 하는 문화이다 보니, 심지어 저는 파견된 지 1000일을 기념하는 1000일 파티도 했답니다. 올해 제 생일에는 일이 바빠 준비를 많이 하지는 못했고, 자주 가는 식당을 예약해서 지인들과 함께 파티를 했어요. 제 지인들이 자신들의 지인을 또 부르면서 판이 커졌어요. 베트남은 자연스럽게 합석을 하고, “아, 나 누구 아는데!”하면서 친구를 부르는 분위기가 있거든요. 


메뉴는 주로 해산물이었어요. 바다가 가까워서 해산물을 정말 많이 먹는답니다. 해산물 볶음 국수, 꼬막, 새우 조림 - 약간 감바스처럼 생겼는데 진짜 맛있어요. 저는 통칭 베트남 감바스라고 부른답니다 - , 그리고 오징어 튀김 등등을 시켰어요. 


‘이제 베트남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셨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느끼셨는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신다면요?  

베트남, 특히 제가 살고 있는 빈롱처럼 도시가 아닌 지역은 공동체 문화가 강한 편이에요. 생일 날 청년연맹, 여성연맹 등 지역의 여러 공동체 분들과 함께 하면서 저도 그들의 일원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좋았어요. 물론 저는 영원히 이방인으로 남을 테고, 완벽하게 그들에게 동화되긴 어렵겠죠. 그래도 함께 축하하고 술을 마시고 대화하면서 이 사람들을 좀 더 이해하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는 베트남 말을 잘 못하지만, “너 오늘 술에 안 취하면 집에 못가~”는 표현을 한다든지 하면 너무 좋아하시고 저를 친숙하게 여겨주시거든요. 베트남 말로 정감을 띵깜(tình cảm)이라고 하는데, 언어가 완벽하게 통하지 않아도 서로 정감을 나누는 시간이 참 좋았어요. 


처음에 파견을 오면 다들 현지 사람들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잖아요. 한국요리를 소개하고 싶어서 김치볶음밥이나 된장찌개를 해주기도 하고요. 물론 좋은 의도는 이해하지만 음식이 현지 분들 입맛에 맞지 않아서 상황이 좀 애매해질 때도 있어요. 저는 정말 현장에 융화되고 싶다면, 그 나라의 문화를 알고 즐기기를 권유해요. 꼭 술이 아니더라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함께하는 문화를 느껴봤으면 좋겠어요. 


제일 자주 하는 혼잣말이 “아 좋다”라고 답하시면서, 김소연 시인의 시 일부분을 함께 보내주셨어요. 시의 어떤 부분들이 용석님의 상황과 맞닿아 있는지 궁금해요.

 

잘 지내요

그래서 슬픔이 말라가요

내가 하는 말을

나 혼자 듣고 지냅니다

아 좋다, 같은 말을 내가 하고

나 혼자 듣습니다

-김소연, <그래서> 중 


어제도 아는 분과 술을 마시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요. 국제개발 활동가들의 삶이 실제보다 좋게 포장되어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아요. 시골 마을에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주민들에게 다가가고, 그들의 마음을 열고, 큰 꿈과 비전을 품고 현장에 오고, 뭐 그런 거 있잖아요.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환상이 있다는 생각을 해요. 활동가의 삶이 그렇게 낭만적이어야 하는 것도, 낭만적이기만 할 수도, 혹은 활동적이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성격상 그러기 힘든 분들도 계실 테고요. 그런 것 치고는 이렇게 말하는 제가 너무 술과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긴 하지만요(웃음).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현장에 있는 활동가들의 생활이 언제나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고, 실제로는 외롭고 힘들 때가 있다는 거죠. 해외 생활이 길어지다보니 잘 지내긴 잘 지내는데, 방 안에서 ‘아 좋다’ 같은 말을 내가 하고 나 혼자 듣는 상황이랄까요. 특히 요즘에는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과 교류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아마 베트남에 남아있는 활동가들 자체가 많지 않을 거예요. 이럴 때일수록 잘 이겨내야지 하면서도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해요.  


말씀하신 것처럼 많은 활동가들이 코로나19 팬데믹 선언 이후 한국으로 돌아갔는데요. 용석님은 반대로 코로나19를 ‘한국과의 이별’이라고 표현하셨어요. 코로나19로 한국행이 미뤄진 건가요? 

한국으로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아직 베트남은 외국인 입국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일단 베트남을 나가면 다시 들어오는 게 어렵고요. 사실 지난 6년간 베트남에 있으면서 ‘언제 한국으로 돌아가지? 언제까지 베트남에 있을 수 있을까? 언제까지 기관이 나를 거둬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코로나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아, 한국으로 돌아가기 더 힘들어질 수도 있겠구나, 베트남으로 내 삶의 거점을 옮겨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 시작했어요. 한국에 돌아가면 뭘 할까, 했을 때 조금 막막한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에요. 한국과의 이별이라고 표현한 건, 말씀드린 것처럼 물리적인 이별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점점 멀어지는 듯한 느낌 때문이기도 해요.  


내년 이맘때 여전히 술을 마시고 계실 예정이라는 답변을 보며 참 한결같은 분이시구나 생각했습니다(웃음). 용석님에게 술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심보선 시인의 『눈 앞에 없는 사람』 시집에 실린 ‘시인의 말’을 인용해서 저의 대답을 대신하겠습니다.


“술*이여 너는 내게 단 한번 물었는데 나는 네게 영원히 답하고 있구나.” 

술은 저에게 한번 물었지만, 아마도 저는 술을 영원히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계속해서 답하고 있는 것 같아요. 

*원래는 時.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자유롭게 해 주세요.

혹시 술을 좋아하는 게 활동가의 덕목이라거나, 술자리에서의 대화가 사업에서 중요한 요소라는 의미로 비칠까 조심스러운 마음이 있어요. 어쩌다 보니 술을 좋아하는 저의 특성이 파견지인 베트남의 문화와 잘 맞은 것이지, 술을 즐기고 좋아하는 게 활동가의 지향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리고 제가 이렇게 술을 마시면서 신나게 놀 수 있는 건 남성이라서 가능한 것이라는 점도 인지하고 있어요. 술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술 이름에 먹칠을 하는 사람이 싫어요. 술 먹고 폭력을 행사한다든지, 말실수를 한다든지 하는 거요. 술의 무서움과 남성으로서 경계해야 할 부분들을 항상 생각하면서, 앞으로도 즐거운 음주생활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용석님과 모니터 화면이 아닌 얼굴을 마주했다면, 인터뷰 장소는 물어볼 필요도 없이 카페가 아니라 술집이었을 것이다. 알코올 한 방울 없이 토요일 낮에 나눈 술과 사람과 ‘혼자’에 대한 이야기들. 다음이 있다면 그땐 잔을 ‘짠’하고 부딪힐 수 있었으면 좋겠다. 푸짐한 베트남 해산물을 앞에 두고, “아 좋다”는 말을 우리 모두가 메아리처럼 화답하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