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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교회 교인들은 구원의 확신이 없는가?

[궁금했성경] 88화, 진짜 확신과 가짜 확신을 구분하는 법

by 허두영

한국교회의 간판을 올려다보라. 십자가는 높이 달려 있지만, 그 모습은 제각각이다. 잘못된 교리로 교인들을 미혹하며 지옥의 문 앞으로 끌고 가는 교회가 얼마나 많은 지 모른다. 특히 믿음에서 가장 중요한 구원의 확신을 흐릿하게 만들어 교인들을 종교 노동자로 만드는 교회들이 있다. 더 큰 문제는 “구원은 믿음의 본질이 아니라, 믿음의 열매”라고 주장하며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하게 하는 흐름이다. 이 말은 결국 “구원의 확신은 지금이 아닌 나중에”라는 메시지로 이어지고, 교인은 신앙의 열매를 따기 위해 끝없는 영적 노역을 하게 된다. 구원의 확신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1. 구원의 확신,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구원의 확신은 “나는 구원받았다”라는 믿음이다.(엡 2:8~9) 구원은 은혜로 받는 것이며, 하나님의 선물이다. 또한 구원의 확신은 “영생을 얻었다”라는 믿음이다.(요 5:24, 요일 5:13) 성경은 “영생을 얻을 것이다”가 아니라 “영생을 얻었고”라고 분명히 말한다. 미래형이 아니라 과거형이다. 그리고 구원의 확신은 무엇보다 죄사함 받았다는 믿음에서 시작된다.(골 1:4) 죄의 문제를 해결받은 경험이 없다면, 영생이나 구원의 확신은 아무리 애써도 붙잡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구원의 확신은 하나님의 구원 약속을 신뢰하는 믿음이다. 바울은 “누구도 그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라고 선언한다.(롬 4:21) 즉, 구원의 확신은 하나님이 나를 붙잡고 계신다는 믿음, 곧 사랑을 믿는 용기이다. (롬 8:38~39) 결국 구원의 확신은, 예수님이 완성하신 구원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믿음이다. 성경은 이 순간을 가리켜 ‘영접’이라고 부른다.


2. 진짜와 가짜, 당신의 확신은 어느 쪽인가?


구원의 확신은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진짜인가, 가짜인가’의 문제다. 그래서 분별이 필요하다. 가짜 구원의 확신은 형식에 의하여 얻은 확신이다. 세례를 구원이라고 믿는 것이다. 영접 기도, 행위의 변화, 지식, 신비한 체험, 감정과 느낌 등으로 갖게 되는 확신을 말한다. 이렇게 ‘수단’이 ‘본질’을 삼키는 순간이 온다. 이것이 가짜 확신의 길이다.


그렇다면, 진짜 구원의 확신은 무엇일까?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갈 3:2, 살전 1:5, 롬10:17, 엡 1:13), 예수님의 십자가 속죄를 믿음으로(엡 1:7), 성경의 약속을 믿음으로(롬 4:21), 하나님의 사랑을 믿음으로(롬 8:38~39),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롬 3:24) 얻은 확신을 말한다. 구원의 확신은 믿음에서 오며, 믿음의 대상은 오직 복음이어야 한다.


3. 믿음의 본질인가? 믿음의 열매인가?


구원의 확신을 믿음의 본질로 볼 때,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방식대로 믿게 된다. 이 관점은 이렇게 말한다.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진짜 믿음이 있다.”


복음을 듣고 믿는 순간, 구원은 시작된다. 그리고 그 순간 교인은 스스로 구원받았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에게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살전 1:4~5)라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가 거기에 있다. 구원은 애매하지 않다. 진짜 구원은 사명으로 이어지고, 복음은 흘러가게 되어 있다. 확신이 없다면 구원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구원의 확신을 믿음의 열매로 본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지금은 몰라. 심판대에 서봐야 해.”

“구원은 하나님만 아신다.”


이 논리는 역설적으로 이렇게 흘러간다.


“구원받지 않았어도 확신은 가질 수 있다.”

“구원받았어도 확신은 못 가질 수 있다.”


그러면 교인은 자연스레 행위와 성화를 근거로 자신의 구원을 확인하려 하고, 결국 믿음은 다시 ‘율법의 길’로 되돌아간다.


4. 구원의 확신은 믿음의 본질이다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롬 4:21)


구원의 확신은 믿음의 본질이다. 확신은 확실히 믿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코 믿음이 없이 확신이 있을 수 없다. 복음을 듣고 믿는 즉시 구원을 받기 때문이다.(행 2:47, 16:31~33)

십자가 옆에서 예수님의 한마디를 듣고 믿었던 우편 강도처럼(눅 23:43), 구원의 확신은 믿음의 결과가 아니라 믿음의 본질이다. 구원은 은혜로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엡 2:5, 8~9)


듣고 믿으면 누구나 영생을 얻는다.(요 5:24) 구원의 확신은 스스로 알 수 있다. 사도 바울은 불신자가 아니라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후 13:5)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을 얻는 것이다.(롬 10:10) 즉, 구원은 ‘느낌’이 아니라 ‘아는 것’이며, ‘행위’가 아니라 ‘믿는 것’이다.


5. 한국교회를 병들게 하는 잘못된 구원론


1) 안식교의 2단계 구원론 - 성화 없이는 천국 못 간다?


안식교는 구원을 2단계로 구분한다.


1단계는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며, ‘얻은 구원, 큰 구원, 첫째 구원’이라고도 부른다. 이 구원은 마귀의 권세에서 벗어나는 구원이며, 죄인이 믿음으로 얻고 의롭다 함을 얻는 구원이다. 이는 현세적 구원으로 상실할 수 있는 불완전한 구원이며, 성화로 유지되며, 소명으로 얻은 구원이라고 주장한다.


2단계는 ‘재림 시에 얻는 구원’인데, ‘얻을 구원, 영원한 구원’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재림 시에 얻는 미래적 구원이며, 행함으로 얻고 성화되어야 얻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성화를 구원과 연계하면 이단이다. 성화되어 천국 간다면, 세상에 누구도 천국에 갈 수 없을 것이다.


2) 기성교회의 위험한 이분법 - 1차 구원과 최종 구원


기성교회 내에도 구원의 확신을 믿음의 열매로 보는 잘못된 교리를 가진 곳이 있다. 그들은 예수를 믿을 때 믿음으로 얻는 ‘1차적 구원’, 천국에 갈 때 행위를 통하여 하나님께 인정 받는 ‘최종적인 구원’이 있다고 본다. 폴 오셔는 책 <확신>에서 구원의 확신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순간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행위를 통해 입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구원의 확신은 심어주지 말아야 한다고까지 언급한다. 분별없이 받아들이면 위험한 잘못된 교리다.


3) 성경은 무엇이라 말하는가 - 정통 신학의 답변


율법의 행위는 구원의 길이 아니다. 성경은 분명히 율법의 행위로 구원 받을 수 없다고 가르친다.(롬 3:20, 갈 2:16, 21) 인간의 노력으로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도 없다.(롬 3:20, 갈 2:16) 바울도 스스로 율법을 완전히 지키지 못함을 탄식했다.(롬 7:9)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있다면, 십자가의 구속은 필요 없게 되는 셈 아닌가.(갈 2:20) 성경은 인간이 현세에서 완전 성화가 될 수 없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왕상 8:46, 잠 20:9, 롬 3:10, 약 3:2, 요일 1:8, 갈 5:4, 고전 15:51) 한편, 성경은 한 번 얻은 구원은 결코 상실될 수 없다고 보증한다.(요 5:24, 요 3:36, 요 6:47) 사도 바울의 고백도 마찬가지다.(롬 8:35, 37, 딤후 1:12)


한국교회는 지금 ‘구원은 열매다’라는 목소리 쪽으로 기울고 있다. 영적 분별력이 사라질 때, 복음은 먼저 희미해진다. 그러면 교회는 하나둘 다른 복음의 길로 들어선다. 오늘 한국교회 앞에 서 있는 질문은 하나다. “복음은 아직 우리 안에서 살아 있는가?” 어쩌면 지금 필요한 것은 거대한 개혁이 아니라, 한 사람씩 다시 복음 앞에 서는 일인지도 모른다. 루터와 칼빈이 오늘 한국교회를 본다면, 과연 뭐라고 말할까?


허두영 작가


현) 인천성산교회 안수집사, 청년부 교사

현) 데이비드스톤 대표이사 / 요즘것들연구소 소장



인천성산교회 홈페이지: http://isungsan.net

인천성산교회 l 인천이단상담소(상담 및 문의): 032-464-4677, 465-4677

인천성산교회 유튜브: www.youtube.com/@인천성산교회인천이단

인천성산교회 고광종 담임목사 유튜브: https://www.youtube.com/@tamidnote924

인천성산교회 주소: 인천광역시 남동구 서창동 장아산로128번길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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