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가난은 거룩이 아니고, 부는 죄가 아니다
우리는 성경을 잘못 읽었다. "돈이 일만 악의 뿌리다"라고. 이 말을 의심 없이 받아들인 지 너무 오래됐다. 신앙이 있든 없든, 교회에 다니든 아니든, 이 문장은 속담처럼 굳어버렸다. 돈 이야기만 나오면 대화가 묘하게 도덕 재판으로 흘러가는 이유도 여기 있다. 돈을 많이 벌면 세속적이고, 심지어 적게 벌면 경건해 보이기까지 한다. 축적은 의심받고, 검소함은 영성처럼 포장된다. 그런데 이상하다. 성경은 단 한 번도 "돈이 악이다"라고 말한 적이 없다. 성경은 정확히 이렇게 말한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니."(딤전 6:10)
‘돈(money)’이 아니라 ‘돈을 사랑함(love of money)’이다. 문제는 돈이 아니라, 돈이 마음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교회의 상당수는 이 문장을 거꾸로 외워 왔다. 놀랍게도 이 오해는 단순한 문장 오류가 아니다. 그 뒤에는 천 년 넘게 누적된 문화, 신학, 경제의 왜곡이 스며있다.
중세 교회는 금욕을 미덕으로 삼았다. 수도원 운동은 노동보다 수행을 중시했고, 직업보다 수도를 영광스럽게 여겼다. 가난은 덕이 되었고, 검소함은 영성이 되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상업과 축적, 재정과 경영은 자연스럽게 세속적인 것으로 추방당했다. 문제는 이것이 신학이 아니라 문화였다는 것이다. 가난이 신학적으로 거룩하다는 성경 본문은 어디에도 없다.
가난은 덕이 아니라 사랑과 구제의 대상이다. 성경 어디에서도 부자가 되는 것 자체가 죄라는 문장은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다윗, 솔로몬은 부를 소유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부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 사명적으로 관리되었다. 그런데 중세 금욕주의가 교회 안에 언어와 정서로 눌러앉아 버렸다.
직업은 세속, 교회는 거룩이라는 이원론은 산업 시대에도 이어졌다. 그래서 돈에 대해 말할 때마다 죄책감과 긴장, 기복과 의심이라는 혼란이 혼재했다. 다시 말해,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가 돈에 대해 뚜렷한 신학을 갖지 못한 이유는 성경 때문이 아니라 중세 정서 때문이다.
이 문제는 더 구조적이다. 교회는 헌금은 잘 가르친다. 십일조, 감사헌금, 선교헌금… 그런데 정작 돈을 어떻게 벌고, 관리하고, 확장하고, 나누어야 하는지는 깊이 가르치지 않는다. 오히려 “주식투자 하지 말라” 등 잘못된 정보를 전하기 일쑤다. 성도는 일주일 내내 돈을 벌고, 쓰고, 저축하고, 투자하고, 기부하며 살지만, 그 모든 과정 가운데 성경적 기준은 흐릿하고 제각각이다. 그러다 보니, 경제라는 넓은 영역은 오히려 가장 비성경적인 방식으로 작동한다.
결과는 이렇다. 교회는 "돈을 사랑하지 말라"라고 했지만, 돈을 다루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다. 돈을 다루지 못하면, 두 가지 극단으로 흘러간다. 하나는 무분별한 축적, 다른 하나는 무기력한 금욕이다. 둘 다 성경이 말하는 청지기 재정 신학과는 거리가 멀다. 성경은 경제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선명하다. 성경의 재정 신학은 우리 생각과 정반대다. 성경은 돈을 죄악으로 여기기보다, 하나님의 자원을 청지기적으로 다루라고 명령한다. 성경에는 매우 선명한 경제 질서가 있다.
① 생산: 일하라(일 = 예배)
② 축적: 준비하라(요셉의 7년 저장)
③ 관리: 운영하라(잠언의 지혜)
④ 확장: 불려라(달란트 비유)
⑤ 분배: 나누라(에베소서 4:28)
여기에는 탐욕이 없다. 방종도 없다. 죄책감도 없다. 오직 지혜, 책임, 사명만 있다. 요셉은 7년 동안 곡식을 쌓았다. 그 축적은 탐욕이 아니라 국가적인 삶의 구원이었다. 개미의 저장은 게으름이 아니라 지혜다(잠 6:6~8). 예수님은 달란트 비유에서 유지한 자를 책망하고, 확장한 자를 칭찬하셨다. 놀랍지 않은가? 성경은 축적과 확장을 금하지 않는다. 오히려 늘리지 않은 것을 죄로 본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신 자원을 묻어두는 것은 소명 포기이기 때문이다. 부는 사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역을 위한 자본이기 때문이다. 자원을 불리는 것이 욕망이 아니라 청지기적 책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경제학이 아니라 구속사적 신학이다.
성경은 돈을 악으로 보지 않는다. 악은 돈이 아니라, 돈이 주인이 되는 상태다. 예수님은 재물 자체를 우상으로 본 것이 아니라, 재물을 마음의 주권자로 섬기는 인간의 태도를 우상으로 보셨다. 그래서 문제는 규모가 아니라 관계다. 돈은 소유할 수 있지만, 돈이 나를 소유할 수는 없다. 돈은 도구이지만, 도구가 나의 삶을 지배하고, 방향을 결정하고, 우선순위를 뒤집는 순간, 돈은 죄가 아니라 우상이 된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마 6:24)
핵심은 단순하다. 부는 문제가 아니다. 주인이 누구냐가 문제다. 왜 이 진리가 중요한가? 우리가 "돈은 악이다"라고 오해하면, 돈을 벌어야 할 자리에서 움츠러든다. 치명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직업을 예배로 보지 못하고, 경제를 사명으로 보지 못한다. 축적을 탐욕으로 오해하고, 확장을 죄악으로 오해한다. 그러나 성경은 정반대다. 축적은 미래 사명을 준비하는 지혜이며, 확장은 하나님 나라 확장이고, 분배는 나눔이 아니라 선교이며, 경제는 탐욕이 아니라 청지기적 탁월함이다.
성경은 돈을 미워하라고 하지 않는다. 성경은 돈의 주인 자리를 하나님께 남겨두라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가난을 미덕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가난은 영성이 아니라 사랑과 구제의 대상이다. 돈을 악마화하면, 우리는 결국 하나님 나라의 가장 넓은 사명을 잃게 된다.
디모데전서 6장 10절은 이렇게 말한다.
"돈이 일만 악의 뿌리가 아니라, 돈을 사랑함이 악의 뿌리다."
성경은 부를 금지하지 않는다. 성경은 축적을 죄악으로 보지 않는다. 성경은 직업을 세속으로 보지 않는다. 성경은 말한다. 돈은 악이 아니라 사명이다. 문제는 돈이 아니라 마음이다. 돈은 시험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책임이다. 경제란 탐욕이 아니라 소명이고, 부란 사치가 아니라 사명 준비이며, 축적과 확장은 세속이 아니라 순종이다.
오늘 우리의 신앙이 회복해야 할 것은 가난의 영성이 아니라, 청지기 영성이다. 돈을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돈을 다루는 법은 반드시 배워야 한다. 그리고 이 문장을 꼭 기억하자. 돈이 악이 아니라, 돈이 주인이 되는 것이 악이다. 이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성경이 말한 재정의 자유를 얻게 된다.
허두영 작가
현) 인천성산교회 안수집사, 청년부 교사
현) 데이비드스톤 대표이사 / 요즘것들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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