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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나그네 윤순학 Oct 17. 2021

우리 골목의 이름을 찾아줘


세계의 유명한 공항에는 유독 정치인의 이름을 딴 곳이 많은데 미국에는 뉴욕의 존 F. 케네디 공항을 비롯해 조지 부시(휴스턴), 로널드 레이건(워싱턴), 에이브러햄 링컨(스프링필드) 공항이 있다. 프랑스 파리의 샤를 드골 공항, 수카르노-하타(자카르타), 니노이 아키노(마닐라), 피어슨(토론토), 아타튀르크(이스탄불), 인디라 간디(뉴델리) 공항도 있다.     


우리도 신공항을 추진 중인 가덕도 공항에 대통령의 이름이 오르내리긴 하지만 정치논쟁이 또 훤하게 예견되어 잘 모르겠다. 광주는 컨벤션 시설인 ‘김대중센터’가 있다.     


     

시내 거리를 걸으며 문득 떠오른 단상     


세계인을 끌어들이는 명물거리. 세계의 도시에는 도시를 대표하는 유명한 거리가 많이 있다.  

   

고풍스러운 건물, 명품 패션 브랜드샵과 노천카페로 어우러지는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 풍광은 세계인의 로망 스케치다. 예술문화의 거리 상징인 뉴욕 브로드웨이, LA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는 전 세계 스타 지망생들이 미래를 꿈꾸는 거리이다.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 거리는 영국의 대표 문화거리. 재즈음악의 상징하면 당연히 뉴올리언스의 버번 스트리트를 떠올린다.       


세계 금융의 메카 하면 뉴욕 월스트리트. 그 거리 한편에 우람한 황소상의 뒤태를, 또는 앞태를. 사실 안 가본 이도 이미 가 본 듯 익숙한 장면이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쇼핑, 상업의 중심지는 도쿄 긴자, 오사카 도톤보리, 상하이 난징(남경)으로, 싱가폴 오챠드 거리가 있고 홍콩의 침샤츄이, 몽콕 야시장거리도 손에 꼽힌다. 우리도 명동, 종로, 을지로라는 대표 거리가 있다. 거리를 상징하는 이름은 그 자체가 상징이 되고 도시의 핵심 브랜드가 된다.              



전국 곳곳의 거리에는 유명인의 이름을 딴 거리골목들이 많다     


종로에는 어르신의 거리라 불리는 ’송해길‘이 있고 수원에는 한국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인 ’나혜석 거리‘, 제주 서귀포애는 천재 미술가 ’이중섭 거리‘가 조성되어 생전 문화예술에 대한 그들의 열정과 발자취를 담고 있다. 강원도 양구군에는 탤런트 ’소지섭 거리‘가 있는데 나로서는 글쎄(?)올시다. 양구군의 열정은 이해하지만.     

스포츠스타의 거리도 있다. 수원 망포동에는 축구 스타 ’박지성 거리‘가, 인천 중구에는 ’류현진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군포시는 피겨스타 ’김연아 거리‘를 추진하다가 자진 취소하는 수모를 겪었다. 유명 스타나 연예인을 활용한 관광마케팅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거리 이름을 한번 붙이면 쉽게 바꾸거나 뗄 수가 없기에 조금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대구 방천시장 뚝방길옆에는 ‘김광석길’이 지역의 명물거리가 되었다. 주말마다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며 활기를 띤다. 이를 본떠 분당에는 ‘마왕’이라 불리던 ‘신해철 거리‘가 생겨나 그를 추모하는 팬들의 발길이 잦아들고 있다. 평범한 거리가 두 뮤지션의 음악과 향수가 가득 묻어나는 음악의 거리로 재탄생한 것이다. 낙후된 지역의 재생을 위한 지역 주민의 소망도 기인한다.     

     

이름을 얻는 순간 품격을 갖추어야 하고 지속 가능한 생명력을 지녀야 한다. 이름을 갖는 순간 ’존재의 이유‘가 생긴다.          




전국 30여 곳의 ‘~ 리단길’ 원조 경리단길     


경리단길은 서울의 핫플레이스중 하나다. 코로나에 젠트리피케이션이 심화되어 지금은 최악의 암흑기를 거치고 있지만 수년 전엔 전국 ‘리단길’ 열풍을 가져온 주인공이다. 경리단이란 이름은 예전 육군 부대 예산의 집행, 결산을 맡아보는 중앙 경리단이 이곳에 있던 유래에 경리단길이 붙여졌다. 이곳이 유명세를 타면서 전국적으로 대략 30여 곳의 아류 ~리단길이 생겨났다.        

 

서울의 아우 리단길 망리단길송리단길중리단길용리단길     


망원동의 망리단길은 한때 핫(hot)한 지역으로 떠오르다 스르르 가라앉은 곳이다. 일찌감치 부동산, 임대료가 상승해 일부 주민들이 명(名) 거부 서명운동까지 벌인 탓에 지금은 유야무야된 케이스다. 서울역 고가도로의 도시재생으로 탄생한 서울로 7017 끝자락은 만리동, 중림동에 이르는데 예쁜 점포와 가게가 들어서며 자연스레 중리단길이 탄생했다.       


잠실 석촌호수 인근에는 송리단길이라 칭해진 거리이름이 공공표지판과 안내도에 당당히 등장한다. 누가 봐도 그곳은 잠실, 아니면 석촌이라는 오랜 명명이 있는데도 생경한 단어가, 어디 많이 본듯한 어휘가 보란 듯이 나타났다. 용산역 일대에는 고층 주상복합 아파트 단지와 아모레퍼시픽 사옥 등이 들어서며 뒷길에 카페와 맛집들이 들어서며 용리단 길이 등장했다.      


경리단길을 비롯해 서울에만도 ‘리단길 5형제’가 생겨난 셈인데, 평생 서울에 살던 나도 이쯤이면 의아하고 헷갈려진다.          



부평 평리단길수원 행리단길광주 동리단길전주 객리단길    

 

인천 부평에는 평리단길이 있다. 커튼 가게들이 많아 커튼 골목이라 부른 전통시장이 젊은 상인들이 들어와 분위기가 살아나면서 평리단길로 발전했다. 수원 화성 행궁 인근에는 행리단길이 들어섰다. 부평 커튼거리, 화성 행궁길이 내겐 훨씬 더 귓가에 와닿는데 말이다. 굳이 리단길을 붙인 이유는 뭘까?   

  

광주에는 동리단길이 있다. 구(舊) 전남도청 인근 동명동에 분위기 좋은 카페와 가게들이 생겨나며 새로운 지역 명소로 뜨는 동네이다. 전주에는 전주 객사+~리단길을 붙인 객리단길이 있다. 역시나 ‘~리단길’의 비슷한 뉘앙스만 풍길뿐이다.          



경주 황리단길대구 봉리단길울산 꽃리단길부산 해리단길범리단길     


경주에는 황리단 길이 있다. 황남동은 황남빵으로 유명한데, 한옥지구거리가 새롭게 젊은 분위기로 바뀌며 자연스레 불리고 있다. 대구에는 봉리단길이 있댜. 맛집거리로 유명한 대봉동 주변에 맛집 골목이 봉리단길이 되었다. 김해에도 같은 이름의 봉리단길이 있다. 봉황동에 있는 이 거리에는 유독 점집이 많아 ‘신의 거리’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차라리 리단길이 아닌 ‘신의 거리’가 훨씬 부르기 쉽고 인상적인데...  

       

울산에는 해안가 꽃바위 부근에 맛집들이 자리 잡으며 ‘꽃리단길’이 나타났다. 지역에 이국적인 음식점, 분위기 좋은 해물포차 거리가 있어 바다 풍경을 가득 담은 명소 거리를 만드려고 하는 의도였을 것이다. 


부산에도 해리단길, 범리단길이 생겨났다. 옛 해운대역의 폐로가 철거되면서 생겨난 곳에 아기자기 가게들이 들어서며 해리단길이 생겨났고, 부산 범어사 주변 상권도 리단길의 아류 범리단길로 불려진다. 과연 이곳 지역주민들이 진정 원하는 것인지 단순히 상업적 의도에 의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젠 너무도 흔해져 버린 로데오거리.         


사실 ‘~리단길’보다 더 먼저 전국적으로 공통적으로 이름 붙인 거리가 있다. 패션, 의류가게들이 즐비한 거리를 지칭하는 ‘로데오거리’이다. 원조는 압구정 로데오거리이다. 90년대 서울 강남의 최고 핫플레이스로 부러움을 사고 명성이 자자했지만, 신사동 가로수길과 청담동에 밀려 지금은 맥을 못 추고 있다. 그렇다 해도 20여 년간 로데오거리의 열풍은 전국을 강타했었다.    

 

전국에는 너무나도 많은 로데오거리가 있다.     


문정 로데오거리. 가리봉 로데오거리. 천호 로데오거리. 일산 로데오거리. 목동 로데오거리. 건대 로데오거리. 수원역 로데오거리. 의정부 로데오거리. 구월동 로데오거리. 동성로 로데오거리. 해운대 로데오거리. 산본 로데오거리. 광주 로데오거리. 진주 로데오거리, 춘천 로데오거리....      


사실 대부분 이름 존재의 의미가 사라진 지 오래이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부를 때, 이름은 ‘존재의 이유다. 한번 명명되면  수년 아니 수십 년을 따라가기에 그 지역의 개성과 특색을 담을 고유한 이름이 더 의미 있지 않을까?      

‘내가 너의 이름을 부를 때 너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꽃’에 나오는 유명한 시구가 떠오른다. 이름은 존재의 이유를 알려준다.     


해당 지역을 명소로 발전시키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남들이 부르는 이름보다는 지역 주민의 아이디어와 지혜를 모아 독창적이고 고유한 이름을 갖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바야흐로 도시도 경쟁의 시대이다. 2등, 3등이 아닌 1등이 독식하는 시대이다. 하물며 오랫동안 지역민과 방문객, 관광객에게 불려질 이름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따라 하지 말고 ~ 우리 골목의 이름을 찾아줘”        


  

■  황홀한 골목을 위.하.여 -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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