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이 갑자기 어머니를 향해 두 눈 부릅뜨고 화를 내시며 다그쳤다.
"아니 민식이 오면 준비하라고 하면 되지 않아? 왜 며느리가 해야 되냔 말이야"
당황한 어머니가 잠시 아버님을 보시고 잠시 숨을 추스르며 느닷없이 큰소리치시는 아버님에게 심각하지만 별일 아닌 듯 침착하게 "당신 말이 맞아요. 단지 민식이가 늦게 퇴근하면 좀 피곤하니
집에 있는 며느리가 미리 준비해주었으면 해서 했던 말이라고요"
이상하게 어머님은 아버님의 느닷없는 분노에 그다지 대꾸를 못하시고 저녁 약속시간보다 약간 늦게 퇴근해서 들어온 민식 씨를 보고 말씀을 하시는데 순간 집안 분위기가 이상해져 버렸다. 오늘은 민식 씨 생일이라 우리가 결혼하고 시부모님이 거의 2년 만에 아들의 생일을 축하도 해주고 갓 돌을 넘긴 손자도 볼 겸 오신 건데 물론 밖에서 서로 편하게 외식하자는 것을 내가 굳이 그럴 필요 없다며 우리 집으로 초대한 거였다. 민식 씨는 이 상황을 예상이나 한 듯 바쁘게 안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온 후 내가 미리 만들어놓은 음식을 주방과 냉장고에서 하나하나 가져다 식탁 위에 올려놓고 소파에 앉아있는 시부모님을 불렀다.
난 안방에서 자고 있는 아이가 아버님의 큰소리에 놀라 잠이 깨어 울지나 않을까 걱정했지만 별일이 없어 다행이었다. 아버님은 준비한 음식이 잘되었고 맛있다며 어떻게 요리솜씨가 그리 좋은지 칭찬도 해주시고 민식 씨가 가사를 많이 도와주냐고 나에게 묻기도 하고 직접 민식 씨에게 여자가 애를 낳고 키우면 그 스트레스가 크고 힘드니 직장일이 힘들더라도 함께 애를 돌봐야 되고 집안일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어머님은 조용히 식사를 하시며 아버님 말씀을 듣고 별말이 없으셨다.
물론 어머님도 당신 아들 생일상을 잘 차렸고 잘 먹었다고 하셨지만 하고 싶은 무언가의 말을 하시려는데 굳이 내가 그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옆에 있는 민식 씨에게 아이에게 먹일 젖병에 분유 좀 넣어 아이 좀 먹이라고 하고선 여태 먹었던 음식들을 치우려고 일어서 버렸다.
12월이면 본격적인 추위가 올 것이라 아이 건강을 잘 챙기라고 나에게 말씀하신 후 민식 씨에겐 밖에 다닐 때 운전 조심할 것을 걱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어머님은 부탁하셨다.
아무튼 식사 후 바삐 일어선 시부모님을 배웅하고 돌아오자 막 설거지를 끝낸 민식 씨가 쓴웃음을 짓고 그 이유를 말해주는데 이것저것 할 것 없이 부부라면 모든 일에 남녀 구별 없이 함께 해야 하고 혹여 우리 아버지가 밖에서 일하시고 들어와 잠시 쉬고 있으면 하는 일도 멈추어버린 어머니는 또 그런 모습을 보고 어떻게 남편하고 똑같이 행동하고 남편 위에서 놀려고 하냐는 할머니의 큰소리에 당당하게 "어머니 나도 밥상 엎을 수 있어요. 왜 여자만 부엌에 있어야 하는 법 있어요?"
기분 상하지만 틀린 말도 아니어서 아버지는 조용히 듣기만 했고 며느리의 호된 반박을 듣고 기가 막혀 말문이 막힌 할머니를 보고 옳고 그름을 떠나 시어머니에게 함부로 대든 버르장머리 없는 처에게 이렇다할 말 한마디도 못한 당신을 탓하며 할머니에게 죄송스러워했을 아버님은 수십 년을 삵히고 삵히고 있다가 이제야 본인이 그 시어머니가 되어 자기 아들의 고생을 걱정하며 며느리에게 당시 할머니가 했던 아들을 위한 비슷한 요구에 대해 불같이 화가 났던 것이다.
이제야 아버님의 어머님을 향한 분노가 이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