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대머리 Nov 13. 2024

남자의 일생

카테고리 - 남자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남자는 일합니다. 이것저것 마다하지 않고 궂은일 싫은 일 어려운 일 처 자식을 위해 일합니다.

그리고 즐거운 주말이 다가왔습니다. 남자는 일주일의 수고와 피곤함을 해소하기 위해 벼르고 벼르던 잠을 잡니다. 토요일 늦은 오전이어도 실컷 잡니다.

여우 같은 마누라가 도대체 이 꼴을 볼 수 없어 깨웁니다. 산에 가자고 깨웁니다. 40대이니 운동을 해야 한다면서 말입니다. 남자가 아무리 발버둥 치고 가려면 혼자 가려고 해도 기어이 일으켜 세웁니다. 등산복을 주섬주섬 갈아입고 귀찮은 동네 뒷산 산행을 합니다. 그렇게 1 쉼터 2 쉼터 3 쉼터...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했지만 기어이 약수터까지 가야 한다며 등을 밀어댑니다. 평소땐 예뻐 보이던 와이프의 엉덩이를 뒤쫓아 가노라니 죽을 맛입니다. 나의 건강은 내가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데 왜 굳이 나를 데리고 가려는지 화가 나지만 말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오는데 노을이 지고 저녁이 돼버렸습니다. 이렇게 토요일은 지나가버렸습니다.

일요일은 실컷 잘 수 있을까...

일요일 아침이 되었습니다. 곤히 자고 있는 남자의 이불을 경고한 마디 안 하고 걷어버립니다.

거칠게 들고서 발코니 쪽으로 가지고 가 탁탁 털더니 건조대에 힘차게 들어 올려 걸칩니다.

남자는 침대 패드라도 둘러싸고 좀 더 자려고 기를 써보지만 헬리콥터 소리의 청소기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침대를 쿵쿵 치고 다닙니다.

더 이상 참지못하고 화가 나서 아내에게 짜증을 내려고 벌떡 일어났더니 어린 아들이 놀이터에 가자고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남자는 화가 나지만 표현을 하지 않고 아침도 먹지 않고 어린 아들을 데리고 근처 놀이터로 왔습니다. 놀이터 벤치에 앉아있노라니 햇살이 좋고 공기도 맑아 오히려 더 좋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들이 노는 모습을 보며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다는 생각을 할 즈음 핸드폰 벨소리가 울립니다.

방청소 다 끝났으니까 아들 데리고 집으로 들어오라고 명령합니다.

남자는 짤막하게 “알았어” 한마디 하고 터벅터벅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향합니다.

더 놀고 싶은데 놀지 못해 풀이 죽은 아들을 보니 참 이놈의 미래도 나와 같을까 하는 생각에 쓴 웃음이 납니다.

아내는 어디를 가려는지 이미 옷을 갈아입고 준비를 하고 있었고 나에게 간편한 옷을 입으라고 합니다.

보나 마나 근처 대형 마트가 목적지입니다. 아들과 대충 편한 복장의 옷을 입고 20분 거리의 대형 마트로 향했습니다. 카트 기사가 되어 졸졸졸 따라다니다 보면 어느샌가 끝이 나고 집으로 향하는데 늦은 오후가 돼버립니다.

이렇게 토요일 일요일은 지나갈듯합니다.

남자는 편히 쉴 수 없는 존재인가 라는 자조 섞인 푸념을 와이프가 절대 듣지 못할 소리로

해봅니다. 호주머니 속 담배를 꺼내 들고 밖으로 나가려니 아내가 나가지 마라며 큰소리칩니다.

이웃에게 피해를 준답니다. 아내가 남자에게 피해를 준 것은 전혀 개의치 않나 봅니다.

아들 방에 들어가 인터넷 바둑이나 두려고 컴퓨터 책상으로 가려는데 그것도 이미 아들이 자리 잡고 앉아있습니다.

TV 역시 아내가 소파에 앉아 보고 있어서 이도 저도 못한 꼴이 돼버렸습니다.

남자는 서재로 가서 평소 읽지도 않은 책을 꺼냅니다. 껄껄껄 웃으며 책 표지를 읽어봅니다.

기드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입니다.

남자는 두어줄 엉성하게 서서 읽어보다 다시 서재에 집어넣어버립니다.

그리곤 두리번거리며 서재 책들을 찾더니 허먼 멜빌의 백경이라는 책을 힘차게 꺼냅니다.

넓고 거친 바다에서 거대한 고래와 싸우는 사람이 바로 자기라고 마음속으로 외칩니다.     

작가의 이전글 시아버지의 분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