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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홀랑 Mar 27. 2024

5. 라이프 스타일

서른 프로젝트







서른 프로젝트, 서른을 맞아 지금의 나를 기록하










5. 라이프 스타일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내가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들로만 모은 나의 라이프 스타일을 세겨보겠다.





나는 최근 자취를 시작했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같이 살지 않고 나 혼자 산 적은 처음이다.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부모님과 같이 살았고, 5년간 친구들과 기숙사에서 살았다. 드디어 서른 가까이가 되었을 때 혼자 방을 얻어 나오게 되었다.

사실 기숙사에서 2년 정도 더 살아도 다. 하지만 기숙사 사감과의 잔잔한 불화가 나를 귀찮게 했고, 무엇보다 결혼 전에 꼭 혼자 살아보고 싶은 마음도 컸다. 혼자 사는게 별거 있겠느냐마는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로 이루어진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사실 자취 후 처음 몇 달은 조금 혼란스러웠다. 혼자 살기엔 비교적 큰 집인터라 내가 가져온 가구 몇 개로는 집이 채워진 티도 나지 않을뿐더러, 텅 비어보이는 느낌을 지워버릴 수 없었다. 그전까진 큰 냉장고를 갖고 싶다는 것 말고는 인테리어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기에, 이 집을 진짜 나만의 공간으로 꾸밀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다.

그래도 몇 달 지나니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히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내가 좋아하는 느낌으로 하나 둘 모으다 보니 콘셉트이라는 게 생기기 시작했다.













1. 내가 좋아하는 것들








누군가에게 애정을 주고, 그 애정을 돌려받는 일을 좋아하는 나는 식물 키우기를 좋아한다. 식물들은 언제나 올바른 사랑을 길 기다리고 있고, 받은 사랑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돌려준다. 잎이 반짝이고, 새잎이 돋고, 자구가 생기고, 덩치가 커지며...

이들을 지켜보다 보면 따뜻한 계절엔 소중한 성장의 시간이 오고, 추운 겨울엔 죽지 않고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다는걸 새삼 느끼게 된다. 식물들은 정말 멋지다.





처음 식물을 키울 땐 잎이 풍성하고 예쁜 화분이 좋았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내 옆에 오래 있어주고 묵묵히 자라주는 식물에 더 애정이 간다.

보통의 경우 내게 식물관리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간혹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땐 이 수많은 식물들이 부담으로 여겨지는 순간들도 있다. 그럴 땐 책임감이 나를 누르는 느낌도 받는다. 하지만 그런 생각들을 이겨내고 하나 둘 관리를 하다 보면, 어느새 무겁던 마음이 사라지면서 마음이 평온해지곤 한다.

정말 식물은 멋지다.










또 나는 요리하는 걸 좋아한다. 자취를 결심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비이이이싼 주물 냄비를 산 일이었다. 식기류 만큼은 평생 쓸 좋은 것들로 사고 싶어서 고심을 하며 하나씩 모으고 있다. 이제 거의 다 갖춰져 아주 만족스럽다.

그리고 온갖 식재료를 모으고 있다. 태국음식을 좋아해서 온갖 태국 시즈닝은 구비해 두었고, 조금 독특하다 싶은 소스는 한 번쯤은 써보고 싶어서 최저가를 기웃거리다가 하나씩 집어오곤 한다. 

퇴근 후 좋은 식재료로 만든 완벽한 저녁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2. 제로웨이스트의 꿈




 



우리 집엔 물티슈, 세제, 섬유유연제가 없다.



휴지 대신 손수건 쓰기

물티슈 대신 걸레 쓰기

세탁세제 대신 소프넛과 구연산, 천연오일 쓰기

아빠가 제배한 수세미와 설거지 비누

샴푸바/클렌징바 등 비누 쓰기





내가 소소하게 실천하고 있는 제로웨이스트를 향한 꿈의 일환이다. 언젠간 구가

  "언젠간 정말 좋은 세상이 왔을 때, '내가 거기 있었노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길."

라고 했는데, 그 말이 머리에 박혀 내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실천하는 것의 중요성..! 집에서 만큼은 쓰레기를 줄이고, 환경에 해를 덜 끼치는 삶을 살길 바란다.

그럼에도 장을 볼 때마다 잔뜩 쌓이는 PET와 비닐을 보며 나는 노래한다. 난 매일 한 봉지의 쓰레기를 만들지~♪







난 신소재공학/화학을 전공했고 과학과 환경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화학물질이 세상에서 어떠한 미신적인 존재로 자리를 잡았는지, 샴푸나 물티슈 같은 분해되지 않는 계면활성제/플라스틱이 일상 속에서 어떤식으로 말도 안 되는 '청결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는지, 이것들이 어떤 식으로 물과 땅을 오염시키고 얼마나 불필요한지에 관심이 많다. 또 옷/물건/음식 등 요즘 우리가 소비할 수 있는 대부분의 것들은 사치품이고 소비 지향적인 풍토를 바꿔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이런 생각들이 집에 투영되어 이곳저곳에 묻게 되었다.















한때 보여지는 것에만 집중하곤 했지만, 지금은 어것이든 나의 주관을 갖고 선택하여 꾸며가는 삶에 집중하고 싶다. 이런 지금의 라이프 스타일을 선택한 이유는 몽골에서의 경험 덕분이었다.





2016년도에 몽골에서 1년 동안 살았던 적이 있다. 유목민족인 몽골사람들은 게르라는 방 하나로 이루어진 독특한 집에서 산다. 게르는 해체하고 다시 만드는데 성인 4명이서 몇 시간 안에 끝나는, 유목민들에게 적합한 집의 형태이다. 그 공간에 많게는 대여섯 명의 가족들이 함께 모여 산다.  






내가 처음 게르에 들어갔을 때 신기했던 점이 하나 있다. 대여섯 명이 사는 게르임에도 옷장이 단 하나뿐이었다는 거다. 집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대체로 120cm 정도 되는 작은 옷장 한두 개가 전부이다. 처음엔 대여섯 명이서 사계절동안 필요한 옷이 그 옷장 하나에 들어간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나는 그 당시만 해도 옷에 꽤 많은 돈을 쓰곤 했기에 더 놀랐다. 이 간소한 옷장들을 보며 내가 그때까지 가져온 많은 옷, 큰 옷장, 옷방에 대한 환상 같은 것들은 생존을 위해 실질적으로 필요한 게 절대 아닌 100% 사치품이라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은 그저 '표준'이라 불리는 라이프 스타일이고, 필수가 아닌 옵션이라는 당연한 것을 배운 순간이었다.






모든 것들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된다는 걸 깨달은 순간부터 나는 나만의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왔다. 물론 위생 관념이나, 에티켓에 관련된 최소한의 것들은 선을 넘지 않도록 해야겠지만, 그 외의 것들은 내가 선택할 수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쌓이다 보니 지금의 형태에 이르렀고, 나의 생활에 만족한다. 내가 선택한 것들로 꾸린 공간에 자부심이 생기기도 한다. 혼자 살게 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내가 선택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 나의 공간이 있다는 건 나의 자존감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나를 위한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건 정말 중요한 것 같다고,

서른 즈음의 나는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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