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개월의 개인 작업 기록
190102 <키즈리턴> 작업일지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정도밖에 쓸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결과물이 별로인 것보다 더 큰 문제는 그걸 본인이 마주하지 않는 것이다. 마주하고, 인정해야 한다. 난 고작 이 정도밖에 쓸 수 없다는 것을.
190103 <키즈리턴> 작업일지
아직 시나리오 쓰는 기술도 부족하고, 연출적인 훈련도 부족해서, 시나리오가 만족할 만큼 안 나오는 건 사실이다. 이제 대망의 만남씬까지 왔으니, 이 부분부터 지금 했던 것처럼 쭉 브레인스토밍하며 씬리스트를 채워가보자. 이 스탠스가 맞는 건가 또 연애처럼 흘러가고 있다.
190104 <키즈리턴> 작업일지
매일 아침과 저녁. 지난날에 썼던 설정이, 이야기가, 정말 이야기할만한 것인지 회의감이 든다. 이런 회의감이 들지 않는 이야기를 언젠가 준비했으면 좋겠다. 완성 후 더 이상 손을 댈 수 없을 때까지는 아마 끊임없이 이런 고민과 함께 싸워야 할 거야.
190116 <키즈리턴> 작업일지
차곡차곡 벽돌을 쌓듯이. 심기일전. 주사위는 던져졌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오늘 중간 점검을 해보고서 이야기가 풀리면 1월까지 시나리오 준비하는 거고, 안 풀리면 내일부터 접고 다른 우선순위에 매진한다. 진지하게 임하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고, 보여주고 싶은 것에 욕심이 많아도 이야기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0121 <키즈리턴> 작업일지
명확한 씬리스트도 없이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이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은데. 결국 쓰다가 막히든지 좌절하든지 어떻게 될 것 같은데….
트리트먼트를 처음 시작할 때든, 시나리오 초고를 시작할 때든 긴장한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쓸 때는 나도 모르게 떨린다. 마냥 좋기만 한 것이 아닌, 어떤 긴장감이 느껴진다.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장편 시나리오이기 때문에 2주를 소요해도 부족할 수도 있다. 그래도 50페이지 트리트먼트를 2주 만에 끝났으니, 시나리오는 그보다 덜 걸릴 수도 있다. 일단 시작해 보고, 멈추는 건 언제든 할 수 있으니. 시작부터 하자. 오늘 시작만 해도 반 이상은 성공한 것이다.
190127 <키즈리턴> 작업일지
대충 예상했듯이, 결국 어제 2막 1장을 완료하지 못했고, 오늘도 벌써 오후 5시가 넘었는데 미드포인트부터 쓰기는 개뿔. 이렇게 쓰면서도 재미없는 지경이면 다른 사람도 재미없을게 분명하다며 자책하고, 그러면서 완성은 해야겠기에 꾸역꾸역 시간만 보내는 그런 느낌. 과연 이 시나리오를 누군가에게 당당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190128 <키즈리턴> 작업일지
- 오늘의 스케줄 및 작업 방향
오늘부터 8시간씩 작업할 것. 글이 안 써져도 무조건 8시간씩 앉아 있을 것. 일단 2막 초반 넘어가야 되고, 이 부분 넘어서 글 제대로 써지기 시작하면 스케쥴링 다시. 오늘 무조건 미드포인트 앞까지 간다. 씬으로 다 작성 못하더라도, 트리트먼트 형태로 씬 나눠서 무슨 내용 들어갈지 정도는 나와야 함. 그러면 내일 미드포인트까지 다 쓰고, 수요일까지는 3막 앞까지 쓸 수 있을 것.
- 며칠째 막히고 있는 (그래봤자 토요일, 일요일 막힌 것이 전부) 2막 초반에 대해서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말자. 완벽하지 않다고 자꾸 물러서지 말자. 쫄지말자. 정말이지 나는 너무 조급해하고 있다. (머리맡의 달력을 떼어내 버려야겠어) 원래 생각했던 대로, 일단 써 내려가고 추후 수정하는 것으로. 그냥 재미있게 원래 생각했던 그대로 쓰기.
- 작업 5시간 경과
지금까지 6장 썼다. 다행히 1막에서 2막으로 넘어가는 건 쓰다 보니 풀렸다. 얼마나 다행인지. 근데 미드포인트까지 갈 때까지 사건이 아직 덜 나왔다. 이걸 좀 더 아이데이션 해서, 미드포인트 앞까지 정리해고 내일 마저 쓸 것.
190124 <키즈리턴> 작업일지
빚을 내서 획득한 시간이 어느새 기한이 다 되어가고 있다. 며칠 전에는 이 <키즈리턴> 작업에 대한 회의가 극에 달해서 한참을 우울해했고, 달리기를 하러 나간 후에 결국 그게 눈물로 터져 나왔다. 이렇게 빚을 내서 얻은 시간으로 글을 쓰고 있는데 내가 생각해도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고, 흠도 너무 많아서 이걸 이렇게 시간과 돈을 버리면서까지 해내야 하는 의미가 있나 싶었다. 이렇게 하고 나서 아무 성과도 없으면? 이 작업을 하느라 시간을 소모해서, 돈을 벌 수 있는 다른 우선순위의 작업이 잘 안 되면? 다 하고 나서도 3월이 돼서도 아무것도 되는 게 없으면? 그땐 어떡하지? 막막했다. 캄캄하고 아찔한 절벽을 향해 달리는 기분.
걱정해 봤자 소용없다고 결론을 냈다. 빚을 낸 것은 이미 어쩔 수 없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기로 한 것은 내가 결정한 것이다. 노래 가사가 도움이 많이 되었다. '빛이 있으리, 한 치 앞의 절망에, 두 치 앞의 영광을 믿고서.' 시간이 부족해서 어제까지만 해도 발을 동동 굴렀는데, 오늘에서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17년부터 지금까지 나는 항상 생산성과 효율성 위주로 움직였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내게 제대로 쌓인 것은 별로 없었다. 원하는 사람에 따라 바뀌는 결과물들은 결코 내 결과물이 되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스스로가 부족하더라도, 다음 주까지 소모하더라도, 이 시나리오를 완성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작업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끝맺음. 매듭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마무리 짓지 못하면 <키즈리턴>은 아마 영영 완성하지 못할 것이다. 다시 들춰보면 들춰볼수록 약점이 너무 많이 드러나서 아마도 영영. 이 시나리오를 놓치고 싶지 않다. 정말 딱 노래가사와 맞아떨어지는 행보다. 두 치 앞의 영광을 위해서는 한 치 앞의 절망을 향해 돌진해야 한다. 그런 식으로 멘털 관리를 하기 시작했다.
만약 이 이야기가 계속 앞부분에만 맴돌았다면,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정을 바꿀 결심을 했고, 그게 아직 삐그덕 거리지만 풀렸다는 건 이 이야기가 세상에 나설 준비가 어느 정도 되었다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꼭 써야겠다고, 이건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고, 혹은 내가 꼭 그렇게 만들고 싶은 이야기였다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다음을 상상하고 싶었고, 지긋지긋해서 버리고 싶은 게 아니라 어떻게든 그리고 싶었다. 그래서 이 일에 집중하고 싶은데 시간이 너무 부족해서 초조했다.
다시금 정리하자면 돈을 이미 빌린 거고, 그 돈으로 벌어놓은 시간을 어떻게 쓰든 그것은 내 자유다. 3월에 아무것도 확정이 되지 않는다면, 일을 구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여하튼, 시나리오를 쓰자. 차근차근히. 벽돌을 쌓듯이. 한 문장 한 문장. 한 씬, 두 씬. 그렇게 120분을 쌓아가자.
190130 <키즈리턴> 작업일지
드디어 오고 말았다. 1월의 마지막 날을 하루 앞두고 있다. 시나리오는 중반에 접어들었으나 여전히 뭔가 암담한 느낌이다. 정말 꾸역꾸역 썼다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 뒷부분도 마찬가지. 여자버전 트리트먼트에 12월부터 1월 중순까지 설정을 고치고 또 고쳤다. 구조를 보고 또 보고 질릴 대로 질렸고, 인물들의 감정이 나를 지치게만 만든다. 글쓰기에는 속전속결이 중요한 것 같다.
어젯밤에는 잠들기 전에 눈물이 찔끔 나올 만큼 힘들고 외롭고 암담했는데 이상하게 잠을 자고 일어나더니 뭔가 기분이 좋았다. 정확히 무엇이 원인인지 모르겠지만, 자고 일어나니 기분이 좀 나아졌고, 잠이 참 달았고, 배가 고파서 장 보러 나가는 길이 상쾌했다. 지긋지긋하고 앞날이 없다고 느껴지지만 그래도 난 이 생활이 꽤 좋은 것 같다.
이제는 내가 보낸 이 시간들이 아깝지 않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회사를 다니면 노력은 돈으로 환산된다.
돈은 내가 생활하고 즐기는데 쓰인다. ‘소비된다’ 하지만 내가 시간을 들여 만들어 낸 글을 당장은 영상화가 되지 않더라도, 지면 위에 하나의 세계로 존재한다. 그게 무엇보다 내게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제는 그런 생각도 했다. 뭐. 시간 못 지키면 어쩔 거야. 공모전? 못 내면 어쩔 거야? 바쁘면 안 하면 그만이지. 그냥 하루 만에 하고 안되면 버려. 중요한 것만 남기고 안 해도 돼. 중요한 것도 미뤄도 돼. 지금 하고 있는 것도 접어도 돼. 도대체 뭐가 문제야? 그렇게 생각하고 잤더니 괜찮아졌던 것 같기도 하고.
190201 <키즈리턴> 작업일지
가족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않을 거야. 비난받는 것을 감수하고 가는 길인걸. 나를 비난할수록, 내가 절박해질수록 효율이 오를 거야.
190202 <키즈리턴> 작업일지
감정선이 엉키고 꼬여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건 아이데이션이랑 감정 연결 때문에 돌아버릴 것 같다. 마인드 컨트롤하고 차분하게 하나씩 해결하자. 어차피 내일까지만 하면 끝난다. 앞으로 꼴도 보기 싫으면 안 봐도 된다.
어차피 내일 다 못 끝내고 중간까지 하고 끝낼 거잖아? 그럼 그냥 행복했던 때까지 쓰면 돼. 뭘 굳이 장례식까지 써. 어차피 내일까지인데 뭘 오늘 다 해치우려고 난리를 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거야. 이건 아무도 기다리고 있지 않아. 이 시나리오는. 아직 시간이 한참 남았다는 뜻이야.
190209 <장편> 작업일지
답답하고, 아이디어도 생각 안 나고, 글도 쓰기 싫을 때, 영화를 보면 다시 뭔가 써보고 싶은 마음이 셈 솟는 것 같아. 결국 내 안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돈이고, 기회고, 결국 내가 올해 두 번째로 완성하게 될 시나리 오니까. 완벽한 기획 영화처럼 될 수가 없다. 특색이 있되, 내 안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여야 한다.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차근차근하게 그리고 꾸준히 생각해 보자.
엄청 현실주의적으로 끌고 가고 싶다가도, 판타지가 있으면 좀 더 편할 것 같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 어떤 스토리 라인을 따라가고 싶은 건지.
190211 <장편> 작업일지
어쩐지 굉장히 막연한 기분. 내가 글을 쓸 줄 알았던가. 내가 이야기를 만들어낼 줄 알았던가. 부옇고 희미하고 믿기지 않는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좋은 아이디어는 지면 위에 펼쳐져야만,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보일 때 의미가 있다. 그전까지는 ‘꿈’이나 ‘가능성’에 불과할 뿐이다. 지면을 이야기로 채워가는 일이 늘 이렇게 두렵고 떨린다면 앞으로 내가 채워가야만 하는 수많은 백지들은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어찌 감당해야 한단 말인가.
190212 <장편> 작업일지
가끔, 세상의 많은 요소들이 내가 생각해 낸 아이디어를 향해 달려드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어. <해피>를 쓸 때도 그랬지. 전시를 볼 때도, 길을 걸어갈 때도, 아무 생각 없이 SNS를 보거나, 신문을 봐도 뭔가 계시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뭔가 그런 식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즐거우면 좋을 것 같아. 뭔가 그때도 이런 날씨였던 것 같아. 그랬지. 봄이 오고 있었어.
그런 장면들을 좀 살려보면 좋을 것 같아. 이번 시나리오에서도. 마법적인 우연. 우리의 삶이 한때 우리에게 신비한 것이었으며, 놀라움의 연속이었으며, 사랑스러운 것이었다는 것. 그것을 다시 일깨워주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190213 <장편> 작업일지
어제부터도 생각했지만 지금 정말 어이없는 게, 정말 어이없는 아이디어를 잡아놓고 다 잘될 거라고, 글자 한자 적지도 않았으면서 긍정하고 있는 이 현실. 솔직히 말하면 이 아이템 외에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냥 이 아이템이 그나마 지금 단계에서 내게 가장 작업할 의욕이 나게 만들고, 재미있다고 느끼는 소재라고 생각한다. 아직 구체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으나, 다양한 재료를 찾아보면서 즐거운 마음이 든다.
190220 <라스트선샤인> 작업일지
어제부터 시작된 시놉시스 작성. 마라톤 완주하듯이 페이스 유지하며 꾸준히 오래 달리기.
1. 즐겁게 쓸 것
2. 심플하게 쓸 것
3. 페이스 유지하며 꾸준히 오래 쓰기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글을 쓰는 거야.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요즘 신비로운 감각을 느낀다. 직장을 그만둔 후 본격적으로 글을 쓰고, 장편 영화를 준비하면서 내가 재미있게 봤고 감동받았던 걸 비슷하게 써내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면 너무 신기하다. 이래도 되나? 내가 정말 써도 되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얼떨떨한 감각이다. 내가 이런 판타지, SF 설정 소재를 쓸 줄 상상이나 했겠어? 하지만 앞으로 많이 쓰게 될 거야. 지금은 너무 부족하지만, 점점 현실로 다가올 거야. 그래 이게 바로 흩어진 구슬을 실로 꿰는 감각인지도 몰라.
190224 작업일지
제작사에 제출할 시놉시스를 완성하고 나서 하루 정도 회의에 빠지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에는 내 안에서 길어 올린 주제와 지금 당장 끌리는 소재를 선택해서 아이템을 잡았다. 현재 상업영화에서 잘 볼 수 없는 소재이긴 했지만, 그랬기 때문에 내게 새롭고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익숙한 소재를 더 이상 답습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기왕 상업영화인데 작은 이야기로 매몰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욕심이 있었고, 모험을 하고 싶었고, 그것이 내게 강한 자극을 주는 동시에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기가 되어주었다. 뭐 어쩌라고 싶었다. 용기도 생겼다. 항상 위대한 창작자들의 놀라운 상상력과, 그 상상력을 밀어붙이는 용기와, 재능을 바라보고 부러워하고 질투하기만 했다. 단 한 번도 내가 한번 시도해 보겠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이번 <라스트 선샤인> 작업이 의미가 있었던 것이 앞선 작업일지에도 언급한 바 있듯, 내가 10대 때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원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만화로 그릴 수 없으니 글을 썼고, 그걸 이미지화하는 것이 영화라고 생각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구체화하는 것에 실패했고, 비평을 받았고 나 자신은 아주 아주 작아졌다.
업계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지금 배우는 것, 지금 읽고 있는 책, 지금 깨닫게 된 생각,
이 모든 것을 대학 시절에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은 너무 늦은 것이 아닐까 하고. 왜 나는 이제야 창작으로 향하는 진정한 지도를 얻은 것일까. 보물 찾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에 보물 지도를 얻게 된 것이 아닐까. 왜 이제야 걸음마를 떼게 된 것일까. 이제 스스로를 온전히 다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되는 나이인데. 그런 패배감을 많이 느꼈다. 작업을 끝낸 후에도 회의감을 느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번 작업이 비록 아이템을 잡는 순간까지 괴로웠고, 이 아이템으로 기획비를 따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긴 했지만, 어쨌든 재미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평가가 좋지 않다고 해도, 결국 일이 어그러진다고 해도, 괜찮진 않을지 모르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이 아이템을 잡았을 것이 분명하다. 마치 계시처럼 나에게 날아들어온 이 아이템이 아니었다면, 2주 만에 작업을 끝마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꿈이 점점 현실화되어 간다. 내 손에 잡히기 시작한다.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에 이런 말이 있다. 창조성은 재능이 아니라 ‘용기’에서부터 나온다는 것. 그리하여 그림자 아티스트에서 실제의 아티스트로 거듭나는 것. 완벽하지 않지만 나는 내 작업에 만족한다. 이번 아이템도 그렇지만 <키즈리턴>도 나에게 너무 고통을 줬다. 시간의 압박과 빌린 돈 값만큼 쓸만한 것을 생산해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극심했다. 그렇지만 2월을 마무리하고, 돈을 다시 벌면서 다시금 작업에 임하면, 분명 다시 잘 해내게 될 것이다. <키즈리턴>은 내가 너무 사랑하는 이야기기 때문에 반드시 완성하고 싶다.
190228 작업일지
이제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는 것이 매우 익숙해졌다. 많은 것을 완성하지 못했지만, 12월의 다짐 이후 1월 2월을 원 없이 글 쓰고, 아이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서 행복했다. 사실 시작한 지 이제 고작 2개월 조금. 한두 번의 고사로 풀이 죽어있을 틈이 없다. 이제 걸음마 단계일 뿐이다. 방향성을 정한 것에 흔들리지 말자. 아무리 남들이 안된다고 할지라도, 한 번이라도 내가 그런 말에 굴한 적이 있었던가. 30세 평생 안된다고, 힘들다고, 하지 말라고 하는 말에 한 번도 굽힌 적이 없었다. 나는 결국 길을 찾아냈다. 애초에 되고 안되고를 누가 결정하는가? 운은 계속 도전하는 사람에게 찾아올 것이다.
시나리오를 썼고, 단막극을 써서 냈고, 아이템을 제안해 봤다. 피드백도 받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바로 어딘가에서 일을 시작했더라면, 작업물이 하나도 남지 않았을 거고, 이야기에 대한 어떤 피드백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세 개나 창조했다.
오늘 미팅도 큰 기대는 하지 않지만 분명히 상대에게는 괜찮은 제안이리라 생각한다.
190303 작업일지
* 아티스트 웨이 발췌
'당신이 정말 형편없는 작품을 만들었더라도 그것이 다음 작품에 꼭 필요한 디딤돌이 된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창조성은 간헐적으로 성장하며 미운 오리 새끼와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비평에 대한 유일한 치료제는 창조뿐이다.'
'안톤체호프. 예술가가 되고 싶거든 인생에 충실해지라. 이 말은 자신을 표현하려는 사람은 누구나 우선 표현할 자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아티스트로서의 가치란 바로 나 자신과 신, 그리고 내 작품 속에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다시 말해, 내가 쓸 수 있는 시가 있다면 팔리든 안 팔리든 간에 그 시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창조되고자 하는 어떤 것을 창조해주어야 한다.'
* 나를 괴롭히는 말들 몇 가지.
"글은 잘 쓰는데, 넌 작가는 하지 마라. 창작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창작 외에 다른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영화 속 인물이 자의식이 너무 강하다. 보이기 힘들다."
* <키즈리턴> 작업일지
정말 원하는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는 이번 씬 플랜이 매우 중요하다. 플랜만 잘 짜지면 시나리오는 아마 금방 쓸 수 있게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결국 이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처음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너무 다크 해지기 싫어서 이런저런 껍질이 필요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항상 솔직하고 항상 심플하게 생각해야 한다. 내가 어둡다면, 내 어두움이 내 무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지고 싶지 않다. 네가 그 길을 가기엔 무리야.라고 말하는 이야기에 반박하고 싶다.
190305 작업일지
<키즈리턴>의 설정 자체가 매우 빈약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여기서 멈춰버리면, 완결을 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인가. 완결은 해내야만 하는 목표인데, 그 완결이 그저 끝맺음뿐만 아닌, 조금이라도 더 좋은 시나리오가 될 수 있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결국 수정을 해야 할 것을 알면서 쓰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적어도 이 설정의 한계 속에 최선을 다해야만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 이번주는 다시 작업을 시작하는 것에 의의를 두어야겠다. 당장 모든 걸 끝낸다고 생각하지 말고, 설정과 계획을 다시 점검하고 적어도 다음 주에 끝까지 시나리오를 써낼 수 있는 준비단계다. 설정만 다시 마음에 들게 점검을 한다면, 일주일 정도면 시나리오를 완성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시나리오가 어떤 운명을 맞이할지는 나중 일이고, 다음 아이템도 두 개나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까 이 하나에 사활을 걸 필요도 없으며, 동시에 이 하나를 끝내야 다음이 있다. 내가 무엇을 가장 잘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나의 강점을 찾는다는 생각으로 집필을 이어가자.
190313 <키즈리턴> 작업일지
시간의 중량이 다르게 느껴진다. 1월과 2월에는 하루하루가 가는 것이 아깝고 견딜 수 없었는데 그래서 매일매일을 새겨나갔었는데, 3월의 시간은 마치 종이가 타올라 바람에 날리는 것처럼 순식간에 재가 되어 사라지는 느낌이다. 그 격차가 너무 커서 혹시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닌 건지, 이를테면 보름가량 시간을 태워왔다는 것에 대해 탓하는 건 아닐지, 아니면 앞으로 더 고되고 힘든 일이 많이 일어나는 건 아닌지 불안한 마음이다.
어제 새벽에 잠깐이긴 했지만, 시나리오를 쓰면서 그 즐거운 감각을 떠올렸다. 별로여도 돼. 내겐 이번 작업은 하나의 생각에서 비롯된 이야기를 100장짜리로 완결하는데 의의가 있다. 마음에 쏙 들진 않더라도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한에서는 최선을 다한 이야기로 매듭지을 수 있도록 용기를 내야 한다. 장면 장면이 모두 최고일 수 없다. 허투루 쓰이는 씬이 있더라도 일단은 차곡차곡 벽돌을 쌓아서 집을 한 채 지어보자.
계속 비슷한 장면에서 맴돌고 있었기에, 오늘은 꼭 1막까지는 지금 대충 계획만 휘갈겨놓은 것처럼 써보고 싶다.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물론 제일 좋은 것은 2막 진입 25페이지까지 가보는 것이지만. 처음부터, 한 번에 최고의 장면을 쓸 생각을 하지 말자. 어차피 지금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 이상 최고의 것은 나오기 쉽지 않다. 그냥 떠오르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쓰는 행위를 즐겨봤으면 좋겠다.
떠오르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써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평소의 소양이 중요하지 않나 싶다. 어쩌면 계획대로 안 되는 것은 인생뿐만 아니라 시나리오도 마찬가지일 지도. 그래. 잘할 수 있다. 오늘 꼭 1막까지, 25페이지까지는 쓰자. 어떤 곡 고를지 고르는 데까지만 하면 될 것 같다. 1막에서 2막 넘어오면서 음악과 함께.
190314 작업일지
중요한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출근일이 확정되고 출근날까지 2주도 내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그동안 어떻게 되었든 시나리오를 완성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부터 쓰기 시작해서 어떻게 해서든 3월에 시나리오를 완성할 생각이다. 그래야 4월에 새로운 곳에 출근해서 일에 바로 투입되어 단편이든 장편이든 아이템 준비할 수 있을 것 같다. 해내자. 이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자. 어딘가 여행을 떠나는 거보다 내게 중요한 일은 시나리오를 마무리하는 것.
190326 <키즈리턴> 작업일지
아직 한 고비가 더 남았지만, 이제 점점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12시…. 두 시간 반 정도까지 쓰면 2막을 끝낼 수 있을까? 2막 끝내고 그 후에 3막 뒷부분 내용 트릿 형식으로 대충 준비한 다음에 바로 작성할 것. 그럼 네시반쯤까지 가능하지 않을까? 가능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갔다 와서 또 쓰면 되니까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정말 벽돌 하나하나 쌓아 올리듯. 한 글자, 두 글자, 한 페이지, 두 페이지 늘어나는 것이 사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이제 80페이지 육박했다는 것이.. 시나리오 자체의 재미를 떠나서 정말 이 감각은 다르다. 생각만 하는 거랑 쓰면서 톱니바퀴 맞추는 거랑 정말 천지차이다.
190401 작업일지
그동안 참 많은 일을 해왔는데 여전히 새로 시작하는 일은 불편하고 신경 쓰인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며칠 전 완성한 초고가 아른아른하다. 뭔가 유의미한 결과물이 나온 것에 만족을 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뭔가 계속 그런 생각이 든다. 아쉽다, 그런 느낌일까. 조금 더 함께 있고 싶었는데 이제 제발 떠나 달라고 몰입했었는데 끝나고 나니 허전한 것일까. 내 이야기 속 아이들이 잘 지내고 있을지. 그들이 나와 함께 보낸 시간들이 정말 즐거웠었는지. 그런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커버 사진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L'Eclis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