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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고운 Sep 30. 2022

내 가슴에 잠든 딸아이

부모는 지식의 주검을 가슴에 묻는다고 하는 말이 있다.


 

  어버이날 밤, 늦은 저녁을 먹다가 문득 뉴스가 궁금해서 TV를 켰다. 큰 글자 자막으로 세월호 희생자 아버지 권 모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내용이 보였다. 세월호에서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자신의 생일날인 5월 8일 어버이날에 세상을 버렸다고 했다. 이혼해서 어머니와 같이 살던 아들이 어버이날에는 카네이션을 들고 아버지를 찾았었는데, 올해는 기다리던 아들도 없고, 혼자서 생일이며 어버이날을 보내다가 아들 생각이 더 간절해 상심 끝에 마지막 수단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뉴스를 보다가 TV를 꺼버렸다. 가슴에 가득 치밀어 오르는 아픔으로 더는 지켜볼 수 없었다. 그리고 수저를 놓았다. 뭉클하도록 치밀어 오른 어떤 덩어리 같은 것이 가슴을 막아서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많은 국민이 이 뉴스를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래도 목숨을 끊는 것은 지나친 일이라는 생각, 아들 생각이 사무쳐 순간적으로 극단적인 수단을 감행했을 것이라는 생각 등등. 하지만, 차분하게 생각해보면 권 씨의 가슴은 이미 하얀 재만 남은 빈 가슴이 되었음을 짐작한다. 몇 해 전에 부인과 이혼하여 부인이 아들을 양육하고 있어서 특별한 날에나 아들을 만날 수 있었던 그때부터 권 씨의 가슴은 검은 숯이 되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아들을 보는 게 삶의 유일한 즐거움이었을 귄 씨. 그렇게나마 꿈에 보듯 만날 수 있는 그 아들을 지난해 4월에 진도 앞바다에서 잃었다. 58세의 권 씨에게 아들은 유일한 희망이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제 어머니와 살고 있었지만, 아들이 장성하면 아버지를 자주 찾을 것이라는 기대로 흐르는 세월조차 아쉽지 않았을 터이다. 어쩌면 아들을 잃은 그때부터 권 씨는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었는지 모른다.      


 자식은 부모를 땅에 묻지만,  부모는 지식의 주검을 가슴에 묻는다고 하는 말이 있다. 가슴속의 자식은 시도 때도 없이 울컥울컥 깨어 일어나 타버린 가슴에 새로운 상처를 새긴다. 내 가슴에도 세월이 갈수록 더욱 날 아프게 하는 딸아이가 묻혀있다. 군에서 제대하여 시골에 몇 달간 근무하면서 아내를 만나, 그 아이가 생겨서 결혼하게 됐었다. 새콤한 과일을 찾는 아이 엄마를 위해 퇴근하면 전주에 나가 한 아름 과일을 사다가 열심히 먹였다. 교통이 불편하던 시절이어서 버스를 타고 어둑어둑한 시간에 구이면 염암 마을 앞에서 내려, 손전등을 비추며 해발 300미터 높이의 ‘소금바우재’를 넘어 20리 가까운 길을 걸어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어쩌다 일행이 있으면 좋지만, 대개는 혼자 산골짜기 오솔길을 넘으며 짐승들의 파란 눈빛을 만나기도 여러 번이었다. 종일 근무한 뒤에 털털거리는 버스를 타고 전주에 나갔다가, 높은 고개를 넘어오려면 힘이 다 빠지기도 했지만, 단 한 번도 과일을 사 나르는 일이 싫지 않았었다.      


  과일만 먹고 태어나서인지 모르지만, 딸아이는 곱고 부드럽고 총명했다. 그런데 아이가 돌을 지날 무렵부터 뭔가 힘들어하고 심장 뛰는 소리에 다른 소리가 섞여 들리기 시작했다. 여러 병원을 전전한 끝에 아이의 심장 좌우 심실 사이에 미세한 구멍이 뚫려있고 심실을 여닫는 판막이 제대로 막히지 않는 선천성 심장병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지금의 의술이라면 쉽게 수술로 완치될 수 있는 병이지만, 당시에는 남아공의 버나드 박사가 최초로 심장 수술을 했지만, 얼마 살지 못했다는 보도가 있었던 때여서 우리 기술이나 내 형편으로는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 의사들은 아이가 무사히 잘 자라서 의술이 뒷받침되기를 기다리는 길밖에 없다고 했다. 아이가 자라면서 조금만 걸어도 힘들어하고 손톱이 파랗게 되고 입술이 파래졌지만, 학교에 가기 전부터 글씨를 배워 초등학교 1학년 때에는 제법 훌륭한 일기를 쓸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몸이 따르지 않아 2학년이 되기 전에 학교에 나갈 수 없었다. 외국에서는 가끔 심장 수술에 성공했다는 보도가 가끔 나왔지만, 나로서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2학년이 되는 나이의 몹시 추운 겨울에 아이는 저세상으로 갔다. 그 어린것이 한 줌 재로 흩어지던 날, 차라리 내가 그 불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아이의 작은 몸은 하얀 가루로 섬진강 물에 하얗게, 하얗게 떠내려갔다. 그렇게 그 예쁘고 글 잘 짓던 어린아이는 내 가슴에 깊은 구덩이를 파고 잠들었다. 아이를 보내고 나는 보름 동안 밥알 한 개도 입에 넣지 않고 술 만 들이키며 살았다. 취하면 잠들고 깨면 또 마셨다. 그러다가 죽어버렸으면 좋으려니 싶었다. 아이가 떠난 뒤, 아이의 물건을 챙기다가 일기 노트 3권이 나왔다. 초등학교 1학년이 쓴 글이 아니라 중학생이 써도 그런 적절한 표현을 쓸 수 있을까 싶도록 조리에 맞는 글을 보며 나는 통곡했다. 내가 정말 아까운 아이를 죽였다는 자책감이 더욱 날 가만두지 않았다. 아이는 시시때때로 내 앞에 나타났다. 내가 괴로움에 방황하고 있을 때, 시름을 잊겠다고 낚시터에 앉아 있을 때, 아이는 불쑥불쑥 나타나 날 비웃기도 하고 위로하기도 했다. 아름다운 꽃 속에도, 불타는 저녁노을에도, 고운 노래 속에도 아이는 색동저고리에 토끼털 배자를 입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기쁜 일에도 불쑥 나타났고, 잘 못 된 일에도 아이는 나타났다. 때로는 책망하고 때로는 응원을 하면서 아이는 60년 세월을 내 가슴에서 잔다.     


  고등학교 2학년인 아이들을 허망하게 잃어버린 세월호 희생자 부모들의 마음은 나보다 몇 곱절 더했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배가 기울어지는데 선실에서 동요하지 말라는 한마디에 차분하게 기다리다가 수중고혼이 된 아이들.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날벼락을 맞은 부모들의 마음은 당사자가 아닌 누구도 알지 못한다. 사건의 진상을 알아보자는 부모의 마음을 물대포와 차벽으로 밀쳐내는 이 나라 위정자와 당국자들. 그런 여러 가지 원인이 세월호 희생자 부모들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을 것이다. 도대체 나라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나라, 속임수에 능한 자가 성공하고 거짓말을 잘해야 높은 자리에 오르는 대한민국이다. 내일이 없는 나라에서 그나마 희망이던 자식을 잃은 권 씨의 죽음은 그 혼자만의 죽음이 아니다. 상위 1%에 속하지 못하고 별다른 희망도 없는 사람들의 죽음일 수 있다. 앞으로 제2, 제3의 권 씨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나이 들어 어렴풋하게 저세상의 길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일찍 보냈던 딸아이는 점점 더 내 가슴에서 살아나고 있다. 오래지 않아 제 엄마를 만나고, 또 나를 만날 수 있다면 그때는 그 아이가 본디처럼 예쁜 모습이 되어 셋이 환하게 웃을 수 있을까? 

 (20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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