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설렘 없이 여행하기 1
정말 설레지 않아.
여행을 앞둔 몇 주부터 나는 반복해서 말했다. 아마 아내는 이런 나를 보며 기가 찼겠지.
하지만 사실이었다. 팬데믹 이후 첫 여행이라고 하기엔 중간중간 한국도 오갔고, 작년 여름엔 그리스 Corfu로 여름휴가도 다녀온 터였다. 그 여행들은 이제 여기 나이로 세 살이 넘어선 아이와 함께였고, 당연히 아이로 지구의 회전축이 이동한 뒤였다. 우리의 세상은 이제 아이로 수렴하고 있다.
작년 이직 이후로 정신없이 지내는 아내 역시 크게 다르진 않아 보였다. 정말 영국에서 일하는 것 같지 않게 새벽까지 일하고 가끔 종종 밤을 새우려는 모습까지 보이던 아내는 반년이 지나서야 겨우 여유를 찾았다. 그럼에도 둘 다 1월 한국에서 돌아온 뒤로 바쁜 회사 일에, 육아에 딱히 미리 예약해 놓은 비행기 티켓을 계속 생각하기 어려웠다. 삶은 점점 분주해지고 있다. 웃기게도 영국에서도 우린 무게감보다 여전히 상대적으로 느린 삶을 살아가고 있다.
영국에서 7년 째를 넘어가는 생활도 그렇다. 얼마나 여기에 있을까 준비하지 않은 채 살다 보니, 어느새 7년이라는 머리에 자라는 새치만큼 낯설다. 반면에 7이라는 숫자가 주는 익숙함이라는 부담은 느끼며 살아간다. 어쨌든 유럽이라는 곳에 7년을 있었다는 것이 이곳에서의 무언가를 새롭게, 신기하게 느끼는 것을 촌스럽게 만든다. 한국에 살 때 홍대에서 화려한 건물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던 여행객들의 모습이 뭔가 요란스럽게 느껴졌던 것처럼, 어쩌면 우리는 소소하게 솟아오르는 감동들을 애써 밀어내고 있을지 모른다. 7년 째라는 이유로.
왜요?
아이는 바르셀로나로 가자는 우리의 말에 묻는다. 아직 우리는 그의 질문이 귀여운데, 말투도 귀여울뿐더러 왜요를 묻는 표정에 정말 모르겠다는 궁금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내게 있는 몇 안 되는 룰이 아이의 왜라는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해주기임에도, 나는 이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왜 바르셀로나일까. 우리는 왜 여행을 가는 걸까.
10년 전 갔던 람블라스의 풍경이 떠올랐다. 같이 갔던 형과 서로 감정이 상해서 말도 안 하고 한 시간 반을 걸어 올라갔던 몬주익 언덕 (언덕이라기보다 산에 가까운)도 생각났다.
이오니아 해 어느 바닷가에서 재미있게 노는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고 데려갔던 Corfu의 바닷가에서 물에 대한 공포로 모래놀이만 일주일하고 돌아온 아이의 모습이 생각났다. 멋진 산과 자연에서 웃는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고 갔던 스위스에서 취리히에서 그린델발트로 가는 2시간 동안 울던 아이의 모습도 기억이 났다.
이렇게 저렇게 아이의 질문에 만족할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난감하다.
여전히, 먹고 마시며 걷기
집에서 가까운 히드로로 향한다. 여행 계획보다 히드로로 가는 가장 저렴한 경로를 찾는데 더 많은 시간을 쓴 듯하다. 이 모든 것은 히드로 공항이 출발하기 위해 공항에 들어오는 모든 차량에 5 파운드의 요금을 받기로 말도 안 되는 결정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집에서 히드로까지 32파운드였던 택시비가 (안다, 이조차도 말도 안 된다는 것을) 공항 세금을 고려하여 40파운드로 올랐다 (왜 32+5가 40인지는 모르겠다). 근데 또 5파운드 요금을 따로 부과한다(!). 덕분에 택시비가 전보다 30%가량 오른 관계로 나는 이를 아낄 방법이 무얼까 고민했다. 다른 회사 택시를 이용할까, 우버를 이용할까, 근처 parking을 이용할까, 버스를 타고 갈까, 아님 새로 만든 Elizabeth line을 탈까. 수없는 탐색 끝에 구관이 명관이라며 순순히 30% 오른 요금을 내고 택시를 탄다. 영국이란 이런 곳이다. 도둑놈들.
스페인은 EU의 백신 패스와 동등한 백신 기록에 한해 PCR 면제를 주고 있는데, 이럴 때 도움이 되는 NHS의 백신 패스를 들고 공항에 도착했다. 혹시 NHS 백신 패스가 안되면 어떡하지- 긴장감에 마주한 바르셀로나의 방역관리는 미리 3부를 프린트한 NHS 백신 패스를 아이의 장난감과 책으로 가득한 가방 속에서 끄집어내느라 분주한 내게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No go go go'를 외친다... 뭔가 허무한 자유가 밀려온다.
10년 만에 찾은 바르셀로나는 예전 모습 그대로다. 공항버스를 타고 바르셀로나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 빛바랜 건물들이 오랜 친구 같다. 스마트폰이 처음 생겼던 때의 여행과 달리, 우리의 가방은 간소해졌다. 필수품이던 가이드북 대신에 구글 맵과 아이패드에 저장된 여행기, 두툼한 복대에 넣어갔던 유로화 대신 내 Wise card. 특히 이 특별한 Wise card는 이번 여행의 경비를 줄이는 데 큰 몫을 했는데, 환전율을 wise.com 그대로 적용해주고, 필요시에 200 유로까지 0.5 유로 수수료만 얹어 아무 현금인출기에서 뽑을 수 있었다. 사실 현금 인출이 필요 없을 만큼 팬데믹 이후 카드를 받지 않는 곳이 없어서 현금 없는 여행을 했다. (이 정도면 wise에서 referral 수수료라도 줘야 할 거 같은데...)
람블라스 거리 근처에 예약해 둔 에어비앤비에 짐을 두고,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아내가 봤던 타파스 가게 두 곳 중에 줄이 적은 곳으로 갔는데, 늦은 시간이라 그런 지 쉽게 들어갔다. Viana Barcelona는 Plaça Reial 인근에 있는 수많은 식당들 중 하나인데, 이곳의 Head chef가 비슷한 레시피들을 가지고 여러 식당들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스탭들도 꽤 친절했고,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고른 Rioja 와인도 괜찮았지만 살짝 구운 가리비를 먹은 순간... 나는 여행의 이유를 찾았다. 혹자는 월미도의 조개 구이가 더 맛있습니다 하겠습니다만, 나는 그 2배의 가격을 준 영국 Weymouth의 은박지로 싼 수상한 생선요리가 생각이 났다. 아, 모든 영국요리가 그렇듯 맛은 더 혼란스러웠다. 그래, 미안하지만 경험은 늘 상대적이다.
그렇게 적당히 먹고 마시고 마주한 밤의 Plaça는 눈부시다. 모든 것이 Plaza와 Plaça로 연결되는 남부 유럽의 길은 밤이 되면 축제를 맞이한 것 같다. 연결된 모든 길에서 오가는 사람들. 중간에 작은 분수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낡은 바닥돌들을 빛으로 에워싼 건물들과 레스토랑에서 퍼지는 흥겨운 노래들. 아이들은 그 주변을 뛰어다니고, 그 엄마와 아빠들도 뒤를 뛰어다닌다. 아 그 사이를 누비는 각종 상인들과 소매치기들까지. 문득 이런 풍경을 본 일이 언제인지 생각하니, 5년 전 베니스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아 아득하다. 아이도 밤의 선선한 공기 속에 해맑게 웃어주었고, 우리는 신이 나서 람블라스를 조금 더 걸었다. 늘 그렇듯 여행 중 약간의 알코올은 더 걷게 만든다.
돌아보면 나는 늘 아내와 밤에 걷는 것을 좋아했는데, 어느새 우리는 교대로 걷는다. 누군가는 아이와 있어야 하고, 누군가는 홀로 걷는다. 아이가 nursery에 가고 둘 다 집에서 일하면서 점심시간에 함께 걷긴 하지만, 뭔가 빠진 느낌이다. 아이의 존재감은 없을 때 빛난다. 그래서 아이가 우리와 함께 즐겁게 걷는 일이 조금은 이 설렘 없이 시작한 여행에 특별함을 가져다주었다. 비록 5분 만에 아빠 안아줘를 시전 하심으로써 내가 그의 발이 되었다 하여도 말이다. 아, 다행히 와인을 두 잔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