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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묘진 Sep 25. 2017

이탈리아 Col delle Finestr

[라이딩코스]



이 날 라이딩 코스는 이탈리아의 Col delle Finestre였고, 나는 이 날 내 인생 절경 Top 5 리스트에 이 곳을 올리게 된다. 

Col delle Finestre의 절경을 1/10도 담지 못한..


내 인생 절경 Top 5
1. Col du Galiber - FRA
2. Col delle Finestre - ITA
3. Col du Agnel - ITA
4. Joefree Lake - CAN
5. 아직 없음 -_-;;

이 곳은 2005년, 2011년, 2015년 지로 디 이탈리아 산악코스에 포함되었던 곳이고, 가장 가까운 시기였던 2015년에는 20스테이지 코스로 지정되었었다.

(좌) 스테이지 우승을 가져가는 아루 (우) 종합우승을 확정 짓는 콘타도르


2015년  Col delle Finestre가 포함되었던 20 stage 우승은 아스타나팀의 아루가 가져갔고, 이 스테이지를 무사히 마치며 콘타도르는 2015년 종합우승을 확정 짓게 되었던 그런 코스.

국경 근처가 숙소니 마음껏 이탈리아로 넘어가는 코스를 잡아본다.

우리 숙소였던 브히앙송에서 국경을(Col de Montgenèvre) 넘어 이탈리아 토리노 동계올림픽 개최지인 세스트리에 스키장을(Col Sestrere) 넘어, 지로 코스인 Col delle Finestre를 다녀오는 약 120km 코스.
다들 "어 그래 왕복 120km. 딱 좋네" 이러면서 나갔다가 다들 탈탈 털려서 숙소에 기어 돌아왔다. 해발 2,000m 넘는 산을 5개 넘는 코스라는 것을 망각한 죄로다.. 

그 날의 스트라바 memo에는 "ㅆㅂ 죽다살아남"이라고 써있음.. 


숙소에서 이탈리아 국경까지는 10km다. 
검문소가 있기는 하지만 자전거 타는 사람은 검문도 전혀 없고(지나가도 쳐다도 안 봄. 신경도 안 씀.) 차량의 경우는 어쩌다 한 번 인사에 가까운 확인만 할 뿐. 다만... 숙소에서 나오자마자 국경까지 계속 업힐이다. 이름하야 Col de Montgenèvre. 역시 웜업은 업힐이지... 

국경을 넘어 길고 긴 다운힐을 마치고 (숙소 돌아갈 때 내려온 만큼 다시 올라가야하는데..크흑..)


국경을 넘어 드디어 이탈리아로 넘어가며 다운힐을 시작하는데 굉장히 길고 재미있게 다운힐 할 수 있는 길이다. 다운힐을 끝내면 이탈리아의 아기자기한 마을을 지나 바로 Col Sestrere-세스트리에로 올라가는 업힐이 시작된다. 건물이며, 꾸며진 꽃다리며, 잠시 멈추어 커피 한 잔 하고 싶었던 마을이다.

너무나 예뻤던 이탈리아의 마을길


개인적으로 이 날 업힐 중에 세스트리에 가는 업힐이 제일 힘들었다. 
실질적인 업힐 길이는 11km 밖에 안되는데, 당시 내 몸상태가 너무 안 좋았는지  마지막 1/4 지점부터는 정말 자전거에서 내리고 싶었다. (각이 쎄거나 힘든 업힐은 전혀 아니고, 그냥 11km 업힐일 뿐인데 당시 내 몸상태가 굉장히 안 좋고 아팠어서 그런거지, 누구든 다 오를 수 있는 업힐임을 밝힌다. 물론 같은 11km라도 해발 1,000m냐 해발 2,000m냐에 따라 데미지는 다르지만.. )

망할 놈의 세스트리에 오르는 길

망할 놈의 세스트리에 오르는 길(2)

가도가도 끝이 안 나는 상황에 "아 때려치고 싶다" 싶을 때 쯤 정상이 보이기 시작해서 희망을 걸었는데, 거기서부터 한참을 가야해서 마지막 남은 내 영혼을 쪽 빨린 기분이었다. 글 쓰다보니, 새삼 론알프스 업힐에 대한 빡침이 새록새록 살아난다..  

토리노 동계올림픽 개최지인 세스트리에 스키장


그렇게 끝이 안날 것 같던 세스트리에 정상에 도착했고, 난 여기서 보급을 안하면 움직이지 않을 심산이었다.  
너무 힘들었고, 보급은 둘째 치고 안장에서 내려와 쉬고 싶었다. (그리고 이쯤에서는 보급을 해줘야한다. 여기서부터 Col delle Finestre까지 가는 길에 보급할 지점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냥 지나쳤다가는 길에서 주저앉을 수도 있다.)

슈퍼마켓과 레스토랑이 있으며, 비수기인 여름에는 자전거 렌트샵이 자리잡은 세스트리에 정상


5년 전의 세스트리에 보다는 상점이 좀더 많이 생겼고 특히 자전거 렌트샵이 많아졌다. 겨울에는 스키장으로 붐빌 이 곳이지만, 비수기에는 한산하다. 5년 전에 왔을 때 갔었던 슈퍼도 들렸는데 그 때 있었던 삐까라는 강아지는 보이지 않았다. 흑...
대신 머리에 땜빵이 있는 다른 멍멍이를 만났다. 먹을거에만 반응을 하는 그 녀석은 너무 귀여웠다.

먹는거 외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땜빵이

먹을거 잔뜩 사서 처묵처묵. 배가 안 고파도 먹어놔야함. 나중에 고파질 테니.-_-

보급을 마치고 Col delle Finestre로 다시 출발한다.
여기서 다운힐만 하면 바로 Finestre 입구라서 그리 어려울 것은 없다. 다만...다운힐이 18km 정도인데 나중에 이걸 다시 올라와야 한다는 사실이 우리를 괴롭혔을 뿐... 다운힐이 길어질 수록 무거워지는 마음이란.. -_-;;

Col delle Finestre 입구


Col delle Finestre 입구가 눈에 잘 띄는 편도 아니고, 세스트리에 스키장에서 내려가다보면 길 건너편이 입구라서 자칫하면 놓치고 그냥 지나갈 수도 있다.  (우리도 살짝 지나쳤다가 다시 Back..)
이 곳을 놓치지 않고 잘 들어가려면 근처쯤 갔을 때 조금은 집중해서 길을 잘 살피며 달리기를 권장한다.

입구 안내판 : 차량으로 Finestre를 넘어서 토리노 쪽을 갈 때는 통행 가능시간이 따로 있다.(자전거는 제외)


업힐은 언제나 본인 페이스로.. 많지도 않은 5명의 인원이 4그룹으로 찢어져 달리게 된다. -_- 
Col delle Finestre는 11km 오르면 정상에 다다를 수 있는데 정상의 해발은 2,176m.
이미 2,000m급 업힐 두 개를 넘고 오르는 산이라서 육체적으로는 많이 힘들었지만, 사실 이 곳은 오르는 내내 풍경 보는 즐거움이 커서 힘든 것은 그닥 기억에 남지도 않는다.

이제 초입일 뿐인데도 눈을 뗄 수 없는 풍경이 시작된다.


반 쯤 올라와서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구간에 들어섰을 때, 같이 있던 3명이 동시에 와아! 하면서 멈추어 서버렸다. 정면에 자리잡고 우리를 내려다보던 이 산세에 압도당해 우리는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반 쯤 올라오면 숨막히는 col delle Finestre의 풍경이 우리를 반겨준다.


절경이다. 이 곳은 절경이다.
분명 내 눈 앞에 있고, 내 눈으로 직접 보는데도 현실 같지 않고, 그림을 보는 것만 같은 그 풍경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고개를 돌리면 펼쳐지는 또다른 절경


언제나 처럼 사진에는 1/10도 담지 못한 감동과 풍경.
고개를 돌리니, 정면에 있는 산세와는 또다른 풍경에 나도 모르게 아... 소리가 나왔다.
좌우 각기 다른 산새의 모습이 어마어마하다.. 올라가는 내내 몇 번을 멈추어서 바라보았는지 모르겠다.

마치 원래부터 자연의 한 부분이었던듯 달려가던 우리들


멈추어 서서 지나왔던 길을 돌아보고, 가야할 길을 올려보는데.. 
어느 방향을 보더라도 벅차오름에 터지는 깊은 숨을 참기가 힘들었다. 그 어떤 단어로도 그 곳의 감동을 표현 할 수가 없다. 자꾸 코 끝이 찡해졌다. 그 감동을 더 크게 울려주던 워낭소리가 어찌나 깊고 아름답던지 그 자리에 또 서버렸다.

산맥 구석구석 깊이 울려주던 워낭소리


지나간 길을 자꾸만 돌아보게 되는 Col delle Finestre.


풍경을 감상하며 서로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정상 근처에는 젖소들이 반겨 주고 있다. 새끼소들이 그득그득


비록 몸은 힘들었지만, 눈과 마음이 즐거워 오르는 내내 즐거웠던 Col delle Finestre.
엄청난 풍경에 이미 이날 하루 겪었던/그리고 "마저 겪을" 고생이 다 보상되던 시간이었다.


새하얀 구름으로 꽉 차있던 Col delle Finestre의 정상

그렇게 정상에 도착하니 산 아래로 가득한 뭉게구름이 반겨준다. 하늘과 숲과 구름의 색상은 어떤 채도/명도에도 아름다운 조합인것 같다.

정상까지 오르는 길도, 정상에 올라와서도 감동스러운 Col delle Finestre..


정상에는 지로 디 이탈리아를 기념하는 비석과 안내판이 있다.

돌아갈 일이 걱정이긴 했지만, 어차피 고생하는건 지금의 내가 아닌 나중의 나니까, 일단 즐겨. 느껴. 만끽해. 
55km 왔는데 누적 상승고도가 2,000m... 미친...

남쪽 방향의 Col delle Finestre

우리가 오른 길은 세스트리에 스키장에서 내려와서 진입한 북쪽 방향인데, 위의 사진은 그 반대 방향. 남쪽 방향이다.
지로 디 이탈리아에서 선수들이 올랐던 코스는 남쪽 방향이었다. 선수들 괴롭히는 험난한 길을 넣는 재미로 코스를 짠다는 지로 디 이탈리아에 걸맞게 -_- 업힐의 상당 구간이 거친 비포장도로이다. 

정상의 약수터...의 수질은 보장 못함. -_-


반대편 길은 우리가 왔던 길과는 또 전혀 다른 풍경이라는데.. 그 길을 오를 일이 앞으로 과연 있을까 싶다.
설사 그 기회가 없더라도 우리가 올라왔던 이 길에서 느낀 감동은, "앞으로 살아가면서 지칠 때 힘이 되어줄 원동력"이 되어줄 만큼 충분했다.

정상에 가득했던 오프로드 바이크와 라이더들

정상에는 오토바이 드글드글. 오토바이는 모두 남쪽 길에서 올라왔던데, 타이어만 보더라도 길 상태가 어떤지 짐작이 된다. 다 오프로드 타이어인것을 보면..ㅎㅎ 꼭 여기가 아니더라도... 나도 오토바이로 이 곳 론알프스를 다시 와야지.  

트래킹으로 왔어도 좋았을 Col delle Finestre


올라온 길을 계속 감상 중이다.


마음껏 아주 오랫도안 경치를 감상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돌아갈 길이 까마득하다.
행복했던 지금까지의 나는 이제 사라지고, 돌아갈 길을 걱정하는 현재의 나로 돌아갔다. 히밤... 다운힐을 내려가서 18km 짜리 업힐 하나와, 9km 짜리 업힐 하나만 넘으면 된다. 전혀 기운나지 않는 코스 분석..
모두들 한 숨과 함께 이제는 돌아가자며..다운힐..하는데 와아!! 여기 다운힐 정말 끝내준다. 개꿀맛. 급한 코너 거의 없이 계속 내려가는 길이 너무나 재미있어서 모두가 신나게 달려 내려갔다.
내려가며 감상하는 풍경은 또 다른 감동이다. 오를 때나 내려갈 때나 진짜 기가막혔던 곳. 지금 생각해도 다시 가고 싶은 곳이다.

혼자 다른 곳으로 다운힐 한 운주


Col delle Finestre를 거의 다 내려와서 운주가 혼자 다른 마을 길로 빠져서 끊임없이 내려갔다.
운주야아아아아으아아악!!! 아무리 불러도 돌아보지 않고, 혼자 다운힐에 심취하여 내려간 운주를.. 우리는 그냥 버렸다. 왜냐하면.. 넌 우리 중에 제일 잘 타니까.

'너 길 잘못 들었으니, 유턴해서 길 찾아 오거라'라고 카톡을 남기고 다시 출발...(역시나 운주는 숙소 돌아가는 길에 있는 첫 번째 18km짜리 업힐을 반도 오르기 전에 우리를 잡았고, 그마저도 먼저 올라갔다. -_-;; 역시 우리는 현명했어..)
숙소로 돌아가야한다는 일념 하나로 정말 열심히 올랐던것 같다. 돌아가며 시간을 봤는데 정말 9시쯤 숙소에 도착할 각이라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다들 대화도 없이 두 시간 가까이 달려서 드디어 다시 세스트리에 정상에 도착했다.

젠장할 놈의 세스트리에 정상


당분과 탄산이 필요했다. -_- 콜라를 사서 먹으며 제일 후미에 있는 재일오빠를 기다려야할지 어쩔지 의논하는데 역시 결론은 버리고 그냥 가자.. 해가 지면 밑에 마을에서 자고 오던지 알아서 할꺼야. 일단 우리라도 먼저 가있어야 차로 픽업을 가던 하니까 버리고 가자..로 결정하고 출발하려고 하니 재일오빠 모습이 보인다.
같이 가려했으나 모든 것을 내려놓은 재일오빠는 '제발' 본인을 버리고 가달라고 했다. 사람이 너무 털리면.. 진정.. 혼자이고 싶을 때가 있음을 알기에 그냥 버려줬다. 

아.. 이제 국경까지의 업힐만 하면 되는데... 아 아까 다운힐 겁나 길었는데.. 마음 접고 꾸적꾸적 오르니 생각보다는 짧네?

해가 지고 있는 국경. 오후 8시 15분쯤이었다.


먼저 업힐을 올랐던 운주는 정상에 없었다. 
분명 자전거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 바로 숙소로 갔을거다. 이해한다 그 마음. ㅎㅎㅎ
다들 아 ㅆㅂ 이제 다운힐만 하면 숙소다! 우리 살았다!!라며 각자 흐느꼈다.. ㅠ_ㅠ

해가 지고 있는 시점에 마지막 다운힐을 남겨두고.


해가 긴 프랑스의 특성으로 우리는 살아서 숙소에 도착했다.
아침 11시30분에 나갔는데 저녁 8시 30분에 집에 들어왔다. 뭐냐 이게 ㅋㅋㅋㅋ 근데 해가 길어서 아직도 밖이 밝다. 미친..

우리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저지를 입은 채로 고기를 구워먹었다.
뭐든 먹어야 했어서 냉장고에서 닥치는대로 꺼내서 음식을 먹었다. 우걱우걱  벌컥벌컥 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먹고 있는데, 국경에서 밤을 지샐 것 같았던 재일오빠가 좀비 상태로 숙소에 도착했다. 오빠도 역시나 저지를 입은 채로 식탁에 앉아 각종 시리얼과 우유를 입에 들이 붓고 흐느꼈다...
어쨌든 결론은 모두가 살아돌아왔다. 이것은 해피엔딩...

그리고 다음 날.. 
우리는 이 날의 털림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먹고/자고/싸고 이거 3개 외에는 한게 없었고, 다들 침대에서 반경 20m를 벗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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