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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균 여행기자 Oct 08. 2022

11월, 파리가 생각나는 시간

낭만과 고독 사이

11월의 파리는 쌀쌀하다.

소나기도 자주 내리고,

흐린 날도 더러 있다.

이러한 날씨마저 낭만적이다.

때론 고독하기도 하고.



벌써 10월이다. 코끝이 시려오는 계절. 그리고 본격적으로 추워지는 11월도 코앞이다. 11월이 다가오면 파리 여행이 계속해서 머리에 맴돈다. 파리의 11월은 제법 쌀쌀하고, 흐린 날도 많은데 이상하리 만큼 가고 싶다. 막상 가면 이러한 날씨가 파리 여행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른다. 오히려 몇 일을 지낸 후에는 화창한 날보다 오히려 더 분위기 있는 파리의 모습을 볼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촉촉한 파리

 때로는 한껏 고독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비가 오더라도 현지인마냥 우산을 안 쓰고 돌아다니게 된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이 비 내리는 파리를 동경하는 데, 괜히 그런 대사가 있는 게 아니다. 촉촉하게 젖은 파리는 낭만의 또 다른 이름이다. 


약한 빗줄기엔 우산도 필요 없다


그럼 어디를 걷는 게 좋을까. 유명 관광지 혹은 정해진 목적지 없이 그저 떠돌아도 좋은데, 감히 몇 곳을 추천해보려 한다. 우선 사크레쾨르대성당(Basilique du Sacré-Coeur)과 몽마르트르 언덕 근처다. 앙베르(Anvers)역이나 한 정거장 이전인 피갈(Pigalle)역에 내리면 된다. 구글 지도만 있으면 사실 도착지까지 가는 건 어렵지 않으니 일단 발 닿는대로 걸으면 된다. 워낙 유명한 곳이지만 성당 그 자체만큼 주변 거리 분위기가 제법 낭만적이다. 


몽마르트르 언덕 가는 길에 팔찌 채워주는 친구들이 많다던데, 이 날 비가 와서 그랬을까 한 명도 못 봤다. 아니면 이 길이 아녔을지도


피갈역에서 몽마르트르 언덕까지 올라가는 도중에 사랑의벽(Le Mur des Je t'aime)이 있다. 파란 벽에 다양한 언어로 '사랑해'가 적혀 있는 벽화다. 인스타그램 등 SNS에 단골로 올라가는 장소인데 막상 보면 별 게 없다. 그럼에도 프레임을 잘 잡아 사진을 찍으면 적당한 사진을 건질 수 있다. 한글을 찾는 재미도 있다. 좀 더 걸으면 거리의 화가들이 모인 테르트르 광장(Place du Tertre)이 나온다. 근처에 쉬어갈 만한 카페와 식당마저 제법 분위기가 있다. 초상화는 가격이 꽤 나가니 옵션이지만, 커피 한 잔 마시며 여유를 부려도 좋을 것 같다. 테르트르 광장에 도착하면 사크레쾨르대성당도 지척이다. 


멀리서 보면 막상 별 거 아닌데, 인증샷 찍기에는 괜찮을 것 같다<왼쪽>, 분위기가 묘한 두 사람


이제 목적지 사크레쾨르대성당. 이곳은  1871년 프로이센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한 후 가톨릭 교도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지어진 성당이라고. 1876년에 기공해 1910년 L.마뉴가 완성했다고 한다. 과거의 여러 성당 모양을 본뜬 절충적 성당으로 로마네스크풍의 파사드를 채용하는 등 비잔틴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이다. 역사적 사실을 알면 더 좋겠지만, 이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대성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서면 파리가 한 눈에 들어온다. 오밀조밀한 건물, 그리고 우뚝 솟은 몽파르나스 타워도 보인다. 파리의 과거와 현대가 조화를 이룬 모습을 볼 수 있는 셈이다. 근데 최근에 온라인에서 글을 보니 제주도 드림타워만큼 저 몽파르나스 타워도 파리 사람들이 경관을 망쳐서 싫어한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모르겠다. 반면 몽파르나스 타워 꼭대기 전망대에서 찍은 풍경들을 보면 정말 멋지긴 하더라.


생뚱맞게 우뚝 솟은 몽파르나스 타워
아래에서 본 사크레쾨르대성당


앙베르를 통해 몽마르트르 언덕을 오를 땐 푸니쿨라를 타도 좋다. 색다른 교통 수단인 데다가 편하게 올라갈 수 있다. 그 전에 아래에서 올려다 본 대성당의 모습도 빠트릴 수 없는 매력이다.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바로 앞 공원과 어우러져 하나의 풍경을 완성한다.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만한 공간이다. 


그래도 좋은 날의 파리 사진도 괜찮지. 레알에 있는 생뙤스타슈 성당

허기가 진다면 레알(Les Halles)로 가자. 우리나라로 치면 먹자거리가 있는 곳. 다양한 식당과 카페, 식료품점, 정육점 등이 모여 있다. 맛도 있고, 이야기도 담긴 가게를 찾는다면 스토레(Stohrer)가 딱이다. 1730년 오픈해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양과자점 중 한 곳이다. 그 전에 웅장한 생뙤스타슈 성당(Église Saint-Eustache)이 당신을 반길 것이다. 1532년부터 역사가 시작된 성당은 레알의 중심에서 광장과 함께 멋진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주말이면 아이들이 뛰놀고, 거리 예술가들이 모여든다. 종종 대형 비눗방울을 만드는 이도 있어 여러 아이가 몰려든다. 한 발짝 떨어져서 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훌륭한 여행이 된다. 마치 파리의 일상에 스며드는 것 같다.



저녁에는 화려한 곳이 좋겠다. 11월임에도 파리는 크리스마스를 향해 조금씩 전진하듯 거리 곳곳에 다채로운 조명이 걸린다. 백화점도 예외는 아니다. 이번 지하철역은 생플라시드(Saint-Placide)다. 목적지는 르봉 마르셰(Le Bon Marché)와 고급식료품점 라 그랑드 에피스리 파리(La Grande Epicerie de Paris)다. 


파리 신사와 숙녀


두 곳 모두 한 번 들어가면 빈 손으로 나오기 어려운 곳이다. 특히, 라 그랑드 에피스리 파리는 기념품으로 사올 만한 식재료와 와인이 가득하다. 또 식기와 액세서리 등이 많아 구경하는 데만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식문화에 관심이 많다면 빠트리지 말아야 할 명소다. 주변의 이름 없는 길도 여행이 된다. 


와인도 5유로 정도면 충분히 마실 만하다. 안주는 파테 앙 크루트

곳곳에 카페와 레스토랑, 베이커리가 있다. 붉은 조명이 매력적인 레스토랑들에 눈길이 간다. 왠지 모르게 파리다운 느낌이 가득하다. 하루 종일 걷느라 지쳤는가. 그렇다면 와인 한 병과 파테는 필수. 진한 육향이 매력적인 파테와 과실향 풍부한 레드와인을 야식으로 즐겨보자. 라면 물론 최고의 소울 푸드지만, 여기는 파리 아닌가. 아침, 점심, 저녁 그리고 야식까지 모두 현지의 맛을 듬뿍 느껴보는 건 어떨까.


빨간 차양, 파리의 밤을 빛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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