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은 칠흑 같은 밤을 가르며 하늘과 바다를 둘로 나눴다. 모처럼 빛나는 황금빛 초승달은 그 빛을 잘게 쪼개 검은 바다에 흩뿌려 두었다. 파도는 발치까지 차마 다가오지 못하고 일렁이며 물러났다.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규칙적인 파도의 음률이 일렁이며 귓가로 찾아들었다. 나는 오래 묵혀둔 상념마저 잊은 채 파도가 적셔둔 선을 따라 정처 없이 걸었다. 서쪽 검은 그림자 뒤에 숨어 그 잔해를 마저 불태우고 있는 태양빛의 조각을 발견했을 때, 나는 깨닫고 말았다. 내가 누구였는지. 확장하지 못한 자아는 얼마나 비대했는지, 무심한 일상에서 벗어난 감각은 얼마나 섬세해질 수 있는지, 그 순간 마주친 자연은 얼마나 경이로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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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이 잊어버릴 수 없는 단어라는 게 존재하는 법이다. Lethargic이란 단어가 그랬다. 무기력한. 영어 과외 수업 준비를 위해 보아 두었던 단어가 무심코 박혀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늘어나는 몸이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는 시작된다는 사실. 나는 매일 무한한 공백의 시간으로 던져졌다. 느지막이 눈을 뜨는 아침에도 이 하루를 어찌 채워야 할지 막막했다. 해야 할 일로 메워지지 않은 하루의 공백에 우울이 습습하게 스며들었다. 몸을 일으켜 움직이고 나가는 바지런함을 잊은 지 오래다.